세상 모든 날것들의 성장기
남편이 회사 행사 준비로 약 한 달여 혹독한 야근에 시달렸다
야근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주말을 포함하여 귀가 시간이 매일 12시가 넘었고
심지어 어느 날은 새벽 4시에 들어와 옷만 갈아입고 나간 적도 있다
연일 이어지는 행사준비로 남편이 지칠 대로 지쳐
흡사 좀비처럼 흐물거리자
둘째 아이가 나에게 조심스레 다가와 질문한다
"아빠도 수능 봐요?"
며칠 전 사촌언니가 올해 수능을 봐서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은 풍월로
아빠가 너무 힘들어하니 나온 질문이었다
바버라 내터슨 호로위츠의 <와일드후드>를 읽어보면
캘리포니아 연안에는 백상아리들이 우글거리는 죽음의 삼각지대가 있는데
이곳을 주기적으로 진입하는 동물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청소년기의 해달"이라고 한다
직관을 거스르고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며 수백 마리의 백상아리가 헤엄치는
차갑고 삭막한 죽음의 삼각지대 안으로
돌진하여
스릴을 즐기는 부류는 바로 "사춘기의 해달"
물론 무시무시한 상어 이빨에 순식간에 피의 소용돌이와 함께 목숨을 잃는 해달도 있지만
그 "10대" 해달들은 죽음의 삼각지대를 무사히 건너
피가 되고 살이 될 값진 경험과 새로운 자신감을 얻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의 보호 아래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바다 물정에 밝은
독립적인 청년기 해달로 성장 한다고 한다
오늘은 감히 그 귀하고 값진 청소년기의
무려.. 12년의 시기를
다만 숫자로 판가름하는 수능날이다
오래전 이를 겪어본 선배로서
수능이 인생의 전부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 한 번으로 인생에 무한한 꽃길이 펼쳐진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왕지사 지금까지 들인 노력의 시간을
어이없는 실수로 아쉬움을 남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 수능이 끝나면
죽음의 삼각지대를 질주할 만큼의
마음속 뜨거운 것을 토해낼 수 있는 시간을 그리고 도전을 새로이 품었으면 한다
이 또한 다른의미의 백상아리가 아닐까
염세주의자들이 말하는 "어차피 인간은 다 죽잖아"의 끝이 아닌
죽음의 삼각지대를 넘어 값진 경험을 일궈낸 해달들처럼
기성세대인 우리보다
훨씬 더 바다 물정에 밝은 독립적인 청년기 해달로
혹독하지만 가치 있는
캘리포니아의 죽음의 삼각지대로 당당히 떠날 당신을
우리는 항상 응원합니다(갑자기 존칭)
품 안에 있을때 한번 더 보듬어 안아줄껄
그리고 지구 청소년이 걸어온 6억 년 동안의 발자취도 응원합니다
(지구야 미안해 깨끗하게 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