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람은 우주니까 Jul 08. 2019

[소개] 우주를 알아가는 길

사람을 향한 출발점에 서서

[2018년 8월의 야심한 밤, 브런치라는 서비스를 처음 가입한 후 제 근원을 생각하면서 적어본 글입니다(오그라드는 부분 주의). 그래도 제 씨앗을 날 것 그대로 소개하기에는 충분할 것 같아 표현 수정은 안 했고 약간의 구성 수정 + 내용 업데이트만 거쳐서 첫 글로 올립니다! 다시 읽어보니 고작 1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생각이 이때보다 좀 더 나아간 게 보여서 신기하기도 하네요 :)]




 어렸을 때부터 우주를 좋아했다. 왜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으레 어린아이가 무엇을 좋아할 때 그렇듯이 별 이유가 없었을 테다. 다만 기억나는 건, 로켓을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가는 우주비행사는 항상 내 동경의 대상이었고 그들 때문에라도 우주는 내 시선 끝에 있었다. 어쭙잖은 솜씨였지만 미술학원에서 자유주제로 그림을 그릴 때마다 내 화폭에는 우주와 우주선, 우주비행사가 머물렀다.


 지금도 우주가 좋다. 뚜렷한 이유를 말하긴 어렵지만, 내 성격을 고려해보면 아마도 매번 볼 때마다 새로워서일 것이다. 그러니까 밤마다 온갖 색다른 반짝임을 담은 커튼을 새롭게 내려주는 공간이라서. 구성요소 하나하나가 경이를 품은 채 한 번에 다 알아낼 수 없는, 또 다른 고유한 원리가 되는 공간이라서.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더욱 새롭고 신비하고 그래서 더 알아가고 싶게 만드는 존재라서 나는 우주가 좋은 것 같다.


 신기한 건 사람도 참 우주 같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고유한 빛을 품고 있으면서도, 알아가도 끝이 없는 미지 때문이다. 뭐, 억지일 수 있지만 그 때문에 사람도 우주처럼 이상적이다. 잡힐 듯한 매력에 반하고 더 알아가려 하지만 충분히 다가가지 못하는 그 간극. 눈에 아예 보이지 않는다면 모를까, 분명 보이는데 가까워지기는 어려운 그 미묘하고 오묘한 거리감은 우주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이상적인 존재로 규정한다.



 이상을 향할 때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적극적이다. 매일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우주로 나갈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눈부신 광경들을 눈에 차곡차곡 담을 것이고, 내 인생의 마지막 장면엔 저 어딘가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 함께이길 바란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을 향할 때도 못지않게 의욕적이다. 저들의 특색 혹은 매력은 무엇일까. 왜 저렇게 말하고 행동할까. 그 안에는 무슨 성격이 있고 어떤 배경이 있을까. 끊임없이 궁금해하고 알아가고 싶어 한다.




 서설이 길었지만 사람을 향한 관심이, 우주를 좋아하던 내 어렸을 적부터 내재된 씨앗 같아서 풀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좀 현실 이야기를 해보자면, 사람을 향한 내 체계적인 관심은 대학생활을 거치며 본격적으로 피어났다. 대학에 와서 전공탐색을 할 기회가 많았고 사람에 관해 알 수 있는 수업들을 찾아 들었다. 진화생물학, 심리학, 인류학, 사회학 등 인류를 다양하게 조명하는 시각을 경험했다. 그 끝에 첫 번째 전공으로 사회학을 선택했다. 결국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라는 생각에 동의하고 그 기반에서 어떤 한 사람의 생각도 결국 그 사람만의 온전한 생각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주로 집단, 상호작용 등 개인과는 다른 분석단위를 바탕으로 사람을 파악해가는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사회를 바라보는 눈을 갖추고자 했다.


 인생이 그렇듯이 예상치 못한 기회에서 내가 나아가던 길은 변곡했다. 새롭고 반짝이는 무언가에 흥미가 있기도 했던 나는 초심자도 게임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코딩 수업을 접했다. 리포트나 지필고사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오직 프로젝트와 개인과제만으로 게임, 영상, 사운드, 기획안을 직접 창조해 내는 신기한 연합전공의 입문 수업이었다. 항상 재미에만 이끌리지만 그 재미가 이어지기만 하면 곧잘 노력과 실력으로 연금해내는 축복받은 기질 덕분에 처음 접했던 코딩 수업도, 연달아 들었던 관련 수업들도 흥미를 잃지 않고 잘 마무리했다.


 그 학기가 끝나갈 무렵, 수업에서 느낀 재미를 꾸준히 이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인턴 자리를 찾아 나섰다. 내가 무엇을 특히 좋아하고 잘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비슷한 흥미만 느끼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아주 구미가 당기는 인턴 모집 공고를 발견했다.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융합과학기술'이라는 표현만으로도 충분히 끌렸다!)의 사용자경험연구실(UX랩)에서 7월 초부터 8월 말까지 연구실 생활을 함께 할 인턴을 선발하고 있었다. 대학원 전체 연구실에서 인턴을 선발하고 있었지만 유독 UX랩이 눈에 띄었고 나는 주저하지 않고 지원했다.


 사실 사용자경험이 무엇인지 몰라 지원서를 작성하기 전에 검색해서 찾아봤다. 대충 이해를 하고 나니 연합전공에서 기획한 모든 프로젝트가 각자의 사용자를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용자경험이라는 개념은 한편으로는 익숙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기왕 사용자경험연구실 인턴에 도전할 심산이라면 갖고 있던 문제의식을 날카롭게 벼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게 가장 강하게 자리잡힌 문제의식은 사회에 있었다.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보고 들었고, 학내 진보언론에서 기자생활을 하면서 간접적으로나마 접했던 취약계층 혹은 사회소외계층의 처지가 항상 눈에 밟혔다. 시혜적인 태도를 갖지 않는 것이 너무도 어려웠다. 나는 그들만큼 어렵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상황을 내려다보지 않을까 매번 걱정했다. 취재를 준비할 때도, 직접 인터뷰를 할 때도, 기사를 쓸 때도 그들과 나의 실제 거리는 잔인할 만큼 현실적이었다. 지나치게 객관적이자니 상황을 온전히 담지 못하고 그렇다고 그들이 겪은 헤아리기 어려운 고통을 모르는 나로서는 온전히 공감한 체 할 수도 없었다. 그들의 현실과 처지는 그만큼 복잡했다. 법과 제도, 사회인식을 짚는 데만 한세월이 걸릴 판이었다.


학내언론에서 사회부 부장을 하면서 참여했던 커버스토리. 세월호 참사 3주기를 앞두고 세월호 인양 전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


 이 고민과 두 전공을 연결하면서 문제의식이 자연스레 도출됐다. 권리를 위해 싸우기에도 바쁘기 때문에 그들은 실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요구하기 어려웠다. 표현이 이상할 수 있지만 충분히 상식적이다. 삶 자체를 세우는 작업이 더 중요하다. 삶이 탄탄하게 서야 그 삶을 더 편리하게 할 궁리가 가능하니까. 그래서였다.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를 부족한 상황을 상업성과 시장성 개념으로 자꾸 설명하는 이유. 지금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지금까지는 그들에게 서비스가 잘 가닿지 못했던 이유.


 내 초점은 그곳이었다. 취약계층의 사용자경험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들은 무엇을 불편하게 여기는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지 말이다. 아주 어려운 작업이라는 예상은 진즉 하고 있었다. 이미 그들을 취재할 때부터 내 상식과 선입견은 산산이 부서졌기 때문이다. 애초에 단순한 흥미로 잡은 목표는 아니어서 부딪칠 각오는 돼 있었다. 그런데 이런 방향으로 초점을 잡는 곳이 많이 없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이 초점이 일반적인 UX의 초점을 더 깎아나가야 가능하다는 점도 알 리가 없었다.


 어쨌든 그때 지원서에서는 소외계층을 고려한 UX를 강조했다. 무엇을 보고 뽑으셨는지 결국 끝까지 묻지 못했지만 인턴으로 선발돼 두어 달을 보냈다. 선생님께서 내주시는 인턴 과제를 하면서 경험에 관해 깊게 생각해보는 기회를 얻었고 실제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UX 연구 절차를 조금이나마 체험해볼 수 있었다. 솔직하게 일주일에 한 번씩 나오는 숙제는, 안 쓰는 근육을 써보면서 해야 하는 과제라서 프로젝트와 함께 하기에는 벅차기도 했다. 그냥 지나가던 주변을 더 꼼꼼하게 살피고 다양하게, 신선하게 묶어보는 작업을 해야 했다. 하지만 겪고 나니 풋내기 중에서는 그래도 경험에 관한 그럴싸한 이해도를 갖출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흥미로 지원했던 인턴에서 평생 재미를 찾았다. 나름 확신하지만 솔직히 평생을 다 살지 못했으니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사람들을 알아가면서도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제공할 수 있다는 건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조금만 더 공부하면 내가 목표로 했던 소외계층을 고려한 디자인(접근성 디자인, 유니버설 디자인 등)으로도 연결할 수 있다는 사실도 고무적이었다. 게다가 이 분야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필요로 하면서도 동시에 틀을 깨는 자유로운 사고가 힘을 얻는 영역이라는 점은 나와 특히 찰떡이었다. 나의 (내 다른 능력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인) 강점은 자연스레 체화된 논리적인 사고방식, 지향점은 경계 없이 유영하는 사고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내게 익숙한 사고방식과 내가 바라는 능력을 모두 필요로 하는 분야인데 어찌 끌리지 않을 수 있을까.


인턴을 하면서 이렇게 인사이트 정리하는 연습을 거의 처음 해봤다. 헬스케어 디바이스를 사용하는 내 모습을 인사이트로 정리했다.


 아직까지 실제 프로젝트로는 취약계층을 다뤄본 적이 없다(지금은 두세 개 정도 프로젝트를 겪어봤다). 학교 프로젝트 경험에서도 그다지 기회가 없었다(바로 저번 학기에 경험했다). 조급하지는 않다. 더 많은 경험을 하면서 사람에 관한 통찰을 얻고 그에 맞게 디자인하는 과정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무 구미가 당기지 않는 분야만 아니면 다양한 프로젝트를 해보려고 하고 있다. 아직 학교에서도 기획을 할 기회가 충분하다(이제는 없다ㅠㅠ). 늦게 찾은 진로지만 천천히, 확실히 가려고 한다.



바로 저번 학기에 섭식장애를 겪는 분들(혹은 위험군)의 기초적인 식습관 개선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간단한 화면...




 시작은 우주였다. 거창하게 우주를 운운하니 이건 또 억지라고 읽히려나. 그렇지만 어쨌든 우주였다. 내겐 사람도 우주였으니. 하늘을 보기 어려운 바쁜 세상에서도 꾸준히 하늘을 봐왔던 버릇이 우주를 내 모든 비유의 원천으로 끌어올렸고 결국 그 끝에서 사람도 우주가 됐다. 사람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서, 우주를 알아가는 첫 발자국을 내디뎠다. 이제 아스라이 빛나는, 동시에 아득히 깊은 반짝임을 순간순간 내 눈에 충실히 담아보려 한다.


                                                                                                                                        <2018.08.18>   W_U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