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폴 KIM Sep 02. 2020

부자는 대를 이어서 노력해야 만들어진다.

놀고 싶을 때 놀려면 숙제를 먼저 해놔야 한다. 아이든 어른이든-

2019년 9월 마지막 주의 날씨가 너무 좋았다. 낮에는 살짝 더운 느낌도 있었지만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하고 청량한 기분이 드는 그런 날씨였다. 한강을 바라볼 수 있는 풍경 좋은 까페에서 샌드위치와 커피 한 잔 하면서 여유롭게 오전을 시작하고 싶고, 커피를 반쯤 마셨을 때 어느새 내 다리 옆에 있는 여행용 가방을 끌고 공항으로 출발하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 무엇이든 아름다워 보이고 할 수 있을 것만 같던 그런 날, 나는 집 앞 까페에서 맥북으로 한강 이미지를 확대해놓고 커피를 마시면서 창 밖 6차선 도로를 바라봤다. 트럭부터 크고 작은 자가용, 버스로 가득했다. 그 차들은 뒤섞여서 신나면서도 힘겨운 듯한 육중한 엔진 소음을 내며 매연들을 내뿜었다. 나도 모르게 기침을 할 뻔했다. 


매연 적은 나라로 여행을 갈 수 있을까 싶어서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2,169,501원이 있었다. 절약하면 두 달 정도 지낼 수 있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 하지만 이 좋은 날씨에 여행을 떠나기엔 약간 부족한 돈이라고 느껴졌다. 적지 않은 돈인데, 왜 나는 여행조차 쉽게 떠나지 못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저 도로의 차들처럼 누군가는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있을 텐데 나는 왜 떠나지 못할까? 


지금까지 일을 하지 않고 쉬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군대를 제대한 그 날 이력서를 써서 제출했고, 그 다음날 면접을 보러갔고 면접 본 다음날 건강검진을, 그리고 이틀 뒤 출근했다. 그렇게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 지금까지 스타트업 도전과 이직을 위해 3개월 쉰 것을 빼면 계속 해서 어디선가 일을 했다. 15년 조금 넘도록 월급을 받았으나 아직도 여행 한 번을 마음 내키는대로 가지 못하는 내가 비정상인가 생각했다. 창 밖 도로의 차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자가용들은 경쾌하고 신나보였고, 트럭과 버스는 힘들어도 일해야 한다는 것처럼 무거운 신음이 실린 육중한 엔진소리를 내며 둔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내 숨소리가 버스 엔진소리처럼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커피 한 모금도 유달리 쓰게 느껴졌다. 


저축액에 소대지 않고 놀고 싶을 때 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계속 떠돌았다. 처음에는 여행 한 번 빠르게 다녀올 방법을 고민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여행을 여러번 다니면서 계속 놀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하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노는 건 아무리 놀아도 질리는 일이 없지 않던가?! 그렇다면 계속 노는 게 최고의 상태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계속 놀 수 있을까? 창 밖 도로 갓길 그늘에 주차된 자가용이 편안해 보이기 시작했다. 깔끔하게 세차된 그 차는 나도 놀 순 있는데, 지금은 자고 싶어서 자는 거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나도 그런 상태가 되고 싶었다.


계속 놀려면 과연 얼마가 필요할까? 한 달 주거비 50만원, 각종 공과금 20만원, 교통비 20만원, 식비 60만원, 각종 보험료 20만원, 각종 용돈으로 60만원, 여기에 최소 저축 50만원을 더하니 280만원이다. 나 혼자 필요한 한 달 비용이 너무 과도한가 싶었지만, 저축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 하는 성격이라 저축액까지 포함시켰다. 때에 따라서 저축액을 조절하면서 생활하면 가끔 가구나 물건도 교체할 수 있을 터였다. 이렇게 열두 달이면 3,360만원이다. 어떻게 하면 일 년에 3,360만원이 생겨날 수 있을까? 도로 위에 달리고 있는 차들은 자동차 회사, 기름회사, 정부에 계속 돈을 입금하고 있을텐데 어떻게 걱정 없다는듯이 저렇게 돌아다닐까? 나도 걱정없으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생각했다. 


지금 내가 가진 현금이 나에게 입금해주는 건 얼마인 지 계산했다. 2,169,501원의 일 년 이자는 (계산하기 쉽게) 3% 라고 설정하면, 일 년 이자가 65,085원이다. 필요한 3,360만원의 0.194%였다. 너무 적은 금액이었지만 마치 마티즈가 있는 힘껏 역정내면서 언덕길을 힘겹게 오르듯이 무거운 마음으로 계산을 계속 했다. 최종적으로 11억 2천만원이면 3,360만원을 일 년 이자로 받을 수 있다. 물론 여기서 은행 이자에 대한 세금 15.4%와 2천만원 초과 이자 수익에 대한 금융소득종합과세를 추가로 감안하면, 약 13억 3천만원이 있으면 된다. 잠깐이지만 세금이 부자가 되지 못하게 하는 물귀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 세상은 세금이라는 물귀신 손 안에 있는 수중도시인 건 아닐까?


도대체 저 돈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과연 모을 수가 있을까? 평범한 직장인이 월급 소득만으로 13억 3천만원이라는 종자돈을 모으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사회에는 이만한 돈을 가진 사람이 많다. 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돈을 가지게 됐을까? 이 찰나 부자는 대대로 만들어 지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태어날 때는 한 푼도 없이 태어난다. 흔히들 부잣집을 보면 부모를 잘 만나서라고 부자가 된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럼 그 부모 역시 부모를 잘 만나서 부자가 된 걸까? 그 어떤 부잣집이어도 태초 조상으로 가보면 무일푼으로 시작했을 거다. 세상에 태어날 때는 누구나 무일푼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부모의 부모의 부모든- 그 집안의 조상 중 한 사람은 엄청난 노력 혹은 희생을 해서 돈을 안 쓰고 모았을 거다.


부자란 희생을 토대로 형성된다. 조상 중 누군가가 10,000원을 모으고, 그 자녀가 또 10,000원을 모으고, 자녀의 자녀가 또 10,000원을 모아야만 여행을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는 여유를 만들 수 있다.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대대로 성실함과 희생이 이어져야 하고, 중간에 누군가가 사치스럽거나 도박을 하는 등의 가산을 탕진해버리면 부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래서 현실에서 부자가 적은 것 아닐까? 또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부모에 대한 공경이 더욱 큰 것 아닐까?


느리지만 분명히 부자가 되는 방법은 있다. 한 세대에서 특별한 재능으로 큰 돈을 벌어들이지 못했다고 해서 결코 포기할 필요가 없다. 그저 묵묵히 대대로 저축하면 된다. 사고 싶은 것 안 사고, 먹고 싶은 것 참아가며 대대로 모아가면, 먹고 싶을 때 먹어도, 사고 싶을 때 사도 자산이 줄어들지 않는 순간을 맞이한다. 물론 이 희생을 이제 시작해야 하는 사람은 안타깝게도 희생과 인내만 하다가 정작 많이 쓰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소득을 더 높여서 희생의 시간을 단축시키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이 인내의 시간을 겪지 않으면 경제적 여유란 평생 느껴볼 수 없다. 이 생각까지 왔을 때 도로에서 매연을 들이마신 것처럼 나도 모르게 기침이 나왔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돈은 커지면 커질수록 커지는 속도가 빨라진다. 이자는 원금에 동일한 비율로 쌓이기 때문이다. 10,000원의 2% 이자와 100,000,000원의 2% 이자는 비율은 동일하지만 액수는 다르다. 따라서 10,000원을 모으는 노력과 시간 등등의 비용은 모으면 모을수록 점점 줄어든다. 그러니까 처음이 제일 힘들다. 오늘 내가 여행을 가지 않고 저축하기로 마음을 먹은 인내의 크기가 제일 큰 순간이 바로 오늘이라니...... 이것만으로도 좋은 것 아닌가? 신호등에 멈춰선 차들도 출발하는 순간 부아앙 무거운 엔진 소음을 내지만, 일단 출발하고 나면 소음을 줄인다. 차들도 출발이 제일 힘든 걸꺼다.


물론 놀고 싶을 때 노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다. 내가 어느 시점에 해야만 하는 일이 없어야만 한다. 주중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 해야만 하는 것은 나는 아직 진정으로 자유롭지 못한 거다. 정해진 시간에 주인에 의해 가고 멈추는 창밖의 차들과 내가 다를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쓴 웃음과 함께 나온 낮은 신음이 마치 나라는 차의 엔진소리 같았다.


하지만, 머릿속이 상쾌해진 기분이다. 긴 생각을 하고 나니 피곤해졌지만 지금 당장은 못 놀더라도 나중에 놀려면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명확해졌다. 마치 얼른 숙제를 끝내고 밖에 나가 놀고 싶어하는 아이가 된 기분이다. 어렸을 때 놀고 나서 숙제를 한 것은 비밀이다. 파란 불을 기다리는 차들의 엔진소리가 경쾌하게 느껴진다. 저 차들도 얼른 달리는 숙제를 끝내고 놀고 싶지 않을까? 나도 숙제를 빨리 끝낼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커피가 다 떨어졌다. 나에게 파란불 신호가 켜졌다.


지금 쌓인 부가 없다면 내가 부를 쌓기 시작하면 된다. 처음은 힘들지만 점점 쉬워질 거다. 부는 대대로 쌓이는 거다.

작가의 이전글 조직에서 말하는 성과란 무엇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