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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 KIM Dec 13. 2020

돈의 본질을 대하는 태도

인플레이션은 물가가 오른다기 보다 내가 약해진다고 생각하는 게 낫다.

9월 어느 날 나는 부자는 자기 절제와 희생이 있어야만 달성할 수 있는 거고 대를 이어서 저축과 인내가 이뤄졌을 때 소비를 하더라도 쌓인 부가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부가 형성된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글: 부자는 대를 이어서 노력해야 만들어진다.)


한편으로는 서글픈 기분도 든다. 오늘날 돈이라고 하는 것은 종이에 불과한데, 이 종이가 없으면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다는 게 어이가 없기도 하다. 심지어 이 종이는 물에 젖으면 쉽게 산산히 부서지기도 한다. 이런 종이가 대체 뭐라고 그리고 중요하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은 내 생명과 자유를 지킬 수 있는 필수 도구이다. 돈이 없다면 식료품도 구할 수 없고 대중 교통 이용도 하지 못한다. 집에서는 쓰는 물과 전기, 인터넷도 모두 돈이 있어야만 사용 가능하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이 중요한 사실을 학교에서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진 않는다. 돈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을까?


돈의 본질은 희소하고 아무나 만들 수 없는 존재이다. 광물 중에서도 흔하지 않으면서도 아무도 만들어낼 수 없고 누구나 다양하게 쓰일 수 있는 실용 가치가 있는 것이 바로 금과 은이었고 그래서 돈의 역할이 가능했다. 다만 금과 은은 부피가 크고 무겁기에 거래할 때마다 들고 다니기에는 불편했고, 금과 은을 보관해두었다는 보관증을 교환하면서 종이가 거래 수단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보관증으로만 거래하면서 실제 금과 은의 양보다 몇 배 많은 보관증이 시중에 유통되었고 사고가 생기다 보니 오늘날의 중앙은행에서 쉽게 찍어내는 화폐가 자리잡았다. 그래서 종이 화폐는 사실 돈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 돈은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에서 손쉽게 화폐를 만들어 내는 것이 오늘날 자본주의 시스템인데, 결과적으로 인플레이션이 필연적이다. 인플레이션은 시중에 화폐가 많이 풀려서 물건 가격이 오르는 현상인데, 정확하게는 화폐의 구매력이 약해지는 현상이다. 그래서 가격이 비싸진 물건을 안 산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열심히 일해서 모은 화폐의 구매력이 약해져 내가 살 수 있는 총량이 감소한다. 열심히 저축을 하더라도 화폐 유통량이 증가해서 내가 모은 10,000원의 구매력이 약화되므로 부자가 되는 건 정말 적지 않은 고통과 인내가 요구된다. 이자가 있어서 부자가 되는 시간은 점점 짧아지기도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그 과정에서 계속 방해한다. 부자가 된다는 건 그래서 어렵고 아무나 이루지 못한다.


모든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은 더 많은 화폐를 가져오는 사람에게 판매한다. 예를 들어 여러 요리에 쓰이는 양파를 생산하는 농가는 올 한해 재배한 양파를 판매하려고 할 때 더 많은 화폐를 지불하는 사람에게 판매한다. 평소에 천원에 양파를 사가던 누군가는 어느 순간 이천원을 가져온 사람이 나타남으로써 이제 동일하게 이천원을 지불해야 양파를 얻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화폐를 많이 가진 순서대로 물건을 확보하게 되는 셈인데, 양파 스스로 더 비싸지려고 맛과 품질이 변한 게 아니라 단순히 화폐를 더 많이 가진 사람이 나타난 것만으로 양파의 가격이 상승해 버린다. 내가 가진 화폐 구매력은 이런 영향들이 모든 재료와 물건, 서비스들에 쌓이고 엮이면서 자동으로 약해진다.


인플레이션은 이렇게 더 많은 화폐를 가진 누군가로부터 발생한다. 많은 화폐를 가진 누군가가 나타나서 내가 가진 화폐는 약해지고 열심히 현재의 소득과 소비를 유지한다고 해서 내 화폐 구매력 약화를 피할 수 없다.


저축을 해서 인플레이션보다 더 빠르게 더 많은 화폐를 확보하지 못하면 우리 모두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가난해진다. 중앙은행은 경제가 계속 돌아갈 수 있도록 화폐를 계속해서 발행해야만 하기에 모두를 가난하게 만드는 걸 멈추지 않는다. 통상 인플레이션은 매년 2~3% 정도로 이뤄진다고 보는데, 이를 감안하면 우리가 모아둔 통장의 10,000원은 다음 해가 되면 9,700원이 된다. 그리고 그 다음 해가 되면 9,409원이 된다. 상당히 빠르게 가난해지는 느낌이 오지 않는가? 심지어 국가는 우리의 모든 행위에 세금을 부과해서 화폐를 뺏어간다. 인플레이션과 세금까지 생각하고 나니 부자가 되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화폐의 구매력은 도대체 얼마나 약해질까? 만약 30년간 연평균 물가상승률이 3%라고 가정하면, 천원의 구매력은 나중에 400원으로 약해진다. 한국은행 소비자물가지수 통계를 보면 2000년부터 연평균 2.42%가 상승했다. 2015년 이후로는 연평균 상승률이 1%대로 낮아지긴 했지만 매년 내가 가진 화폐의 구매력은 1% 이상 낮아졌다. 열심히 일을 했고, 온갖 스트레스를 꾹 참고 버티면서 화폐를 얻었는데, 이렇게 힘들게 얻은 화폐가 은행에 있으면서 점점 구매력이 낮아진다는 게 너무 화가 나는 일이다.  성실히 살아온 나의 수고는 상온에 노출된 얼음처럼 녹는 것이다.


저축을 할 수밖에 없지만, 저축은 화폐 구매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은행은 내가 예금한 돈에 대해 이자를 준다. 하지만, 이자에 대해서도 15.4%의 이자소득세가 있고, 또 은행은 나의 예금액을 이용해서 시중에 화폐량을 증가시킨다. 결과적으로 화폐 구매력은 다시 약해진다. 저축을 하는데 그 저축으로 인해 나의 화폐 구매력이 더 약해진다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여기에 더해 내가 저축을 하지 않더라도 저축을 하는 다른 사람들로 인해 또 나의 화폐 구매력은 약해진다. 빠져나갈 수 없는 고통을 계속해서 받는 시지프스의 형벌이 이런 느낌일까?


그래도 통화 기반 자본주의 구조를 이겨낼 수 있다. 저축액이 크면 클수록 이자는 크고, 어느 순간 화폐 구매력이 약해지는 것보다 더 많은 화폐를 이자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종이 화폐를 다른 물건으로 바꿔놓으면 인플레이션만큼 나의 자산 크기는 자연스레 커지기 때문이다. 그게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인플레이션만큼 자동적으로 자산 크기도 커지는 구조 위에서 저축을 병행하면 더 빠르게 화폐를 많이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양파를 미리 사놓으면, 나중에 화폐를 가장 많이 들고 오는 사람에게 양파를 넘기고 화폐를 확보하는 셈이 되는 거다.


돈의 본질은 가치가 있는 무언가이지 화폐 그 자체가 아니다. 그래서 화폐를 부지런히 저축하면서 동시에 가치가 있는 실물 자산을 확보해야 한다. 화폐 인플레이션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실물 자산 확보는 필수적이다. 그리고 나서 발생하는 화폐로 소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화폐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소비를 우선하면 끊임없이 화폐 자체를 얻기 위한 일을 계속해야 한다. 소득이 적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면, 이걸 명심해야 한다. 부자가 되는 건 이런 고통의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지만 단순하다.


화폐를 저축하고, 저축한 화폐로 실물 자산을 확보하고 발생하는 화폐로 소비하는 것이 돈의 본질을 이해한 사람의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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