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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예술 박기열 Jan 17. 2024

기업예술교육에 관한 제언

예술을 활용한 기존의 기업교육이 새로운 실습 체험을 통해 분위기를 환기하고 구성원의 마음을 이미지로 드러내 확인하고 다짐하는 정도의 수준이었다면 앞으로의 과정은 좀 더 전문적이고 섬세하며 면밀한 FT를 요구하는 과정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이유는 한 가지 큰 틀에 사람들을 끼워 맞춰 교육하던 시대가 끝나고 개인의 콘텐츠를 극대화시키고 스스로가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17년 간 미술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기업교육에 발을 디딘 지 4년 정도 되었습니다.

대학에서 오래 강의했던 저의 경험 때문에 예술대학에서 전공자를 대상으로 하던 프로세스가 기업과 어떻게 연결되느냐는 실용성에 관한 물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예술대의 강의실은 자신의 철학과 논리, 그리고 상상을 현실화하기 위한 필사적인 학생들의 PT(프레젠테이션)와 선생들이 던지는 FT(퍼실리테이션)가 불꽃을 튀기는 살벌한 현장입니다. 

그런 경험이 다양하고 즉각적인 질문과 대답이 번복되고 반복되는 다각적 실습이나 혁신적 사고 실습과 같은 예술을 기반으로 한 기업교육 프로그램에서 효과적으로 발휘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기업에 닥친 여러 가지 어려운 현실을 봤을 때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예술대가 아니라 유치원에서 사용하는 방식이라도 가져와야 할 판입니다.

지금까지는 당장 성과나 매출로 연결시키는 방법을 몰라서 많은 기업들이 교육에 예술을 활용할 수 없었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예술이 쓸모없던 시절은 단 한순간도 없었을 만큼 예술은 수천 년 동안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며 현대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기업교육과 연관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건 일정 부분 예술의 중요성을 일찍 알아차린 영민한 교육컨설팅 업계가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과거에 미술을 전공했거나 심지어 전공하지도 않은 CS강사나 컨설턴트의 예술교육 진행을 미학적인 연구와 이미지의 깊이를 다뤘던 예술가의 FT와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건 어불성설입니다. 

그림 속에 있는 건 그것이 점 하나라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크기나 모양, 색으로 드러나는 이유 안에는 평소에 말로 표현할 수 없던 잠재된 감정들이 내포되어 있는데 그런 부분을 전문가가 포착해 정리해줄 수 있다면 그림으로만 그려내는 나와 기업의 비전에 앞서 자기 자신의 욕망을 이미지로 읽어 스스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해왔던 드로잉 교육의 기존 목표보다 더 큰 성과를 거둘 수도 있습니다. 

예술가 또한 기업교육에 대한 이해와 현장에서 주로 쓰이는 언어나 매뉴얼을 익히는 등 산업 강사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을 갖추는 게 기본이겠지요.     

기업교육에 예술을 접목하는 것은 전쟁 중인 군인들을 모아 오케스트라를 꾸미는 것만큼 무척 어려운 일이어서 예술에 대한 의지나 이해가 부족한 기업에선 기분전환 이상의 용도로는 사용하기 힘듭니다.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기획자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예술의 이해도와는 관계없이 어느 누가 진행해도 되는 수준에 머물러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만큼 기업교육에서 예술의 깊이를 다루는 일에는 대부분 회의적입니다. 그렇게 예술의 껍데기만 만지는 경우는 예술교육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지 못한 것일 뿐만 아니라 반대로 얘기를 하면 예술가인 제가 리더십 전문가 몇 달 따라다니면서 요령만 익히면 리더십 강의도 할 수 있고 다양한 고민과 의문을 가진 기업 리더들의 물음에 즉각적인 솔루션까지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허황되고 현실감각 없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실습과정을 진행하면서 느낀 점은 어떤 회사는 클라이언트가 원해서 할 수 없이 진행하긴 하지만 그 어떤 아이디어나 예술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기존의 과정에서 벗어나는 그 어떤 것도 수용하기 힘들어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또 어떤 곳은 예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어떻게든 기업교육에 더욱 효과적인 방법을 찾기 위한 다양한 실험이나 도전을 마다하지 않고 끊임없이 클라이언트를 설득하기도 합니다. 같은 과정을 하더라도 그 결과물이나 피드백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교육에 예술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지 못하는 많은 이유가 존재하겠지만 결국 예술은 낯설지만 과감한 결정들을 통해 언젠가는 기업교육 안에 깊게 스며들어야 할 물이고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창조적인 삶을 살도록 배열된 DNA를 이미 몸속에 갖고 있고 그 누구라도 이 세상에 보통이 되기 위해 온 사람은 없으므로 구성원 모두를 특별한 그들로 만들어줄 더 진보적이고 창의적인 교육이 필요하기에 앞으로는 더 전위적이고 창의적인 교육의 소재를 예술분야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를 넘어서는 과정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 이에게는 무척 두려운 일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모든 컴퓨터 회사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애플이라는 회사에서 디자이너 조나단 아이브가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 코웃음을 쳤습니다.

외형에 신경 쓸 시간에 더 빠르고 간편하게 만들 기술력을 고민하라면서 말이죠.

이미 최첨단의 기술로 고객을 놀라게 해 줄 준비가 되어있는데 더 이상 그 어떤 장식과 꾸밈이 필요하냔 이야기였죠.

하지만 다른 회사와는 반대로 디자인 콘셉트를 먼저 정하고 거기에 맞춰 기술을 변화시킨 애플의 고집은 어디에도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OS를 갖게 했고 높은 제품 가격과 매출, 불편해도 쓴다는 고객의 충성도 등 모든 분야에서 경쟁 회사들을 가볍게 따돌리며 자신들의 철학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과오를 겪고 났으면 기업 한 군데 정도는 뼈 시린 각성을 통해 애플을 따라잡기 위한 현명한 노력을 실행해야 했는데 대부분의 회사는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립니다. 그저 애플의 외연만 보고 자신들도 디자인이 바뀌면 매출이 오를 것이라고 착각을 한 거죠. 

애플의 디자인 철학은 단지 겉모습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문을 기본으로 한 직관성, 단순함과 기본에 충실한 명료함, 그리고 첨단의 기술력을 내세우기보다 기계에 감정을 불어넣어 고객이 알아서 반응하게 하는 이용자 중심의 마케팅에 그 핵심 포인트가 있다는 걸 여전히 눈치 못 채고 있는 거죠. 소비자도 예전에 알아차린 것들을 세상의 온갖 석학과 박사 출신의 전문가를 보유하고 엄청난 자본을 투자해 연구소까지 갖춘 그 회사들만 알아채지 못했다는 게, 아니면 알고도 실행하지 못했다는 게 아이러니합니다.     

기업뿐 만이 아니라 가까운 우리의 주변에서도 비슷한 예를 찾을 수 있습니다. 

모두가 들어가고 싶은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귀농한 한 젊은이가 있습니다.

일류 대학 출신에 외모도 준수하고 게다가 직장에서 일처리도 스마트했던 사람이라 귀농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성공적으로 시골생활에 안착합니다. 능력을 발휘해 구식이었던 시스템도 새롭게 바꾸고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덧대 차세대 농업지도자로 선정이 되고 책도 쓰고 방송에도 출연하며 직장인으로 살 때보다 더 주목받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 그의 이웃에 또 한 명의 농부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날 때부터 농사를 배우며 살았습니다. 도시엔 가본 적도 없고 육십 평생을 농부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 농부는 농사를 짓는 사계절 동안 자연의 변화와 자신이 꾸준히 돌봐야 하는 작물들을 통해 선험적으로 자연의 섭리와 성실함을 몸에 익혔습니다. 중학교밖에 안 나왔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의 자식들은 좋은 대학은 물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사들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농부인 아버지의 한마디 한마디는 자연에서 배운 통찰과 몸으로 익힌 지혜로움에서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에 그 누구의 철학보다 견고하고 인생의 순리를 벗어나지 않은 것들이었으니까요.     

만일 누군가가 이 둘을 통해 교육을 기획한다면 어떤 스토리로 교육을 설계해야 할까요?     

일류대 출신 대기업 퇴사자라는 굴곡진 인생 스토리, 농촌에 있지만 도시의 세련됨을 유지하고 있는 귀농한 농부는 뭔가 특별해 보여서 잘만 만지면 괜찮은 상품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하면 태생 자체가 농부인 사람은 특별한 게 없어 어디에서 매력을 찾아야 할지 감이 안 옵니다.

귀촌한 농부는 직장인이라면 모두가 한 번쯤 꿈꿔보는 ‘성공적인 퇴사’라는 욕망을 상징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특별할 것 없는 태생이 농부인 사람은 자연에서 모든 걸 배우고 깨달은 삶의 철학자를 말하는 것이겠죠. 

우리의 교육은 전달하기 어려운, 혹은 불가능한 것들을 전달 가능하게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그 속에 숨은 진리와 깨달음을 얻게 하는데 그 목적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귀농한 농부의 인생은 굳이 교육 분야가 아니라 방송국에서 전달해도 충분합니다. 

몇 가지 장치만으로도 주인공을 빛나게 만들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대중 친화적이고 매력적인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태생이 농부인 사람의 지혜와 통찰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어떤 장치나 시각적인 요소만으로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치밀한 교육의 메커니즘을 통해 포인트를 찾아내고 대상을 분석해야 하며 그것을 현실에 대입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모듈을 개발해야만 전달 가능한 일일지 모릅니다.    

그런 관점을 기억한 채로 다시 예술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예술교육 강사의 기본적인 자격요건에 관한 위의 언급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현재 기업교육에서 예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 예술과정에 세심한 설계나 투자를 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들을 감안하더라도 예술을 전공한 사람 중에서도 강사의 자격은 더 세심한 구분을 필요로 합니다. 

예술을 통해 자신에게 오랜 시간 집중해 본 사람 중에서도 자아가 지나치게 강한 사람은 작가를, 모든 일을 논리적으로 따지고 분석하길 좋아하며 사리분별이 정확한 사람은 기획이나 사업을,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려 노력하는데 주저함이 없으며 측은지심이 있고 내 방법이 아니라 상대의 방법으로 자신의 의도와 생각을 전달하려는 마음과 실제 그럴 수 있는 센스가 있는 사람이 알려주고 전달하는 강사를 하면 됩니다.      


가끔 우리는 일반인의 특별함과 예술가의 평범함을 동일한 것으로 치부하곤 합니다.

결과가 비슷해 보이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누구의 삶이 더 가치 있는 삶이냐를 비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글에서 언급된 귀농한 농부와 농부로 태어난 사람의 차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현대 사회에 나타난 그간의 변화들을 지켜보면 오랜 시간 주구장창 기술과 공식만 알려주던 지난 교육이 더 이상 회사를 관두고 농부가 되는 법이나 짧은 시간 안에 농사를 짓는 특별한 방법이 아니라 모든 방법을 몸으로 터득해 어떤 역경이 와도 자신의 경험과 통찰로 극복할 수 있는 ‘농부의 마음’을 가르칠 때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술을 통해 기술이 아니라 ‘마음’을 교육하는 건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레벨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능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예술 전문가와 교육전문가의 꾸준하고 밀착된 협업이 있어야 가능한 일임을 끝으로 밝혀 둡니다.     


나름 20년 가까이 선생으로 살았던 것에 자부심을 갖고 큰 고민 없이 기업교육에 몸담게 됐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부족함을 더 많은 경험으로 채워나가야겠다고 다짐할 만큼 이곳은 전혀 다른 세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예술가로 살았고 지난 몇 년간 예술로 기업교육을 하면서 느낀 점이기에 기업교육에 예술을 접목할 아이디어를 찾고 계시거나 예술가들과 만나 협업을 하시려는 기획자 분이 계시다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부끄러운 글을 통해 조심스럽게 제언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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