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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te Gold Nov 09. 2020

의도치 않게 극복한 남편과의 권태기

임경선 작가님 감사합니다

임경선 작가의 엄마와 연애할 때’라는 에세이를 읽었다. 그중 작가가 자신의 엄마의 임종을 지키며 나눈 대화는 너무나 사실적이고 솔직해서 나도 그에 감정이입이 되어 엉엉 울며 읽었더랬다. 그리고 자연스레 나 혹은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다면 그 당시 모습은 어떨까 상상을 해 보았다.

(친정 엄마와의 이별은 상상만으로도 괴로워서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1. 남편에게 아마 미안한 마음이 가장 크지 않을까.

“미안해. 내가 더 잘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

둘 중 누군가 곧 세상을 떠날 것이라는 것을 아는 상태에서 남편과 대화를 나눈다면 열 마디 중 아홉은 미안하다는 말이 나올 것 같았다.     

에세이를 읽었을 당시 나는 육아와 살림,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많이 지쳐있었고, 나름 회사에서 고군분투하느라 힘든 남편도 매일매일 바쁘고 피곤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런지 당시 나는 “내가 더 힘들어” 단계에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매 순간 남편이 너무 밉고 원망스러웠었다. 이게 가족인지 원수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 남편의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가 듣기 싫었고, 같이 있는 것이 싫지만 또 남편이 아이들과 나만 남겨두고 야근을 하거나 주말에 외출하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함께 있어도, 따로 있어도 다 너무 싫은, 매 순간이 괴로운 시절이었다.       

권태기가 아닐 수 도 있다. 권태기는 서로에 대해 원망하는 감정 없이 감정 자체가 없는 상태일 것 같다. 다음에 검색해 보니 “부부나 연인 간에 서로에 대해 흥미를 잃고 싫증이 나는 시기”라고 한다. 그러니까 당시 내가 겪고 있던 것은 권태기라기보다는 원망기증오기     

엄청 미워하던 사람이 갑자기 아프거나 죽으면 미안한 마음이 가장 큰 것은 죄책감 때문이겠지.      



2. 그리고 두 번째는 고마운 마음.

“정말 고마워. 나랑 결혼해 주고, 한평생 나와 살아줘서. 내 옆에 있어줘서 정말 고마워.”     

이기적이고, 유아적이고, 게으르고, 감정 기복이 심한 나를, 나조차 내가 이해되지 않는 나를 이해하고 보듬어주어서. 나에게는 인연의 복일 지라도 어떤 순간, 어떤 기간에는 당신에게 나와의 인연은 복이 아닌 벌이었을 수도 있겠다고. 그래도 묵묵히 받아들이고 나와 함께 해 주어서 참으로 고맙다고 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스친 뒤 남편의 모습을 보는데 왠지 짠하고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리고 오징어보다는 잘 생긴 남편 덕에 몽글몽글 그 감정이 이어질 수 있었다.

이후로는 남편을 원망하는 마음도 점차 줄었고 건강하게 잘 살아주고 나의 아이들의 아빠로 있어주는 그가 그냥 고마웠다.      

남편이 예뻐 보이니 예쁜 말을 해주게 되었고, 나의 스트레스도 줄기 시작했다. 미워했던 것도 나고 원망했던 것도 나인데, 그것 때문에 가장 괴로웠던 사람은 남편이 아닌 바로 나였다.      



이 글을 쓰니 다시금 남편과 마지막 작별인사할 때가 상상이 되면서 미안함과 고마움이 차오른다.      

“남편, 미안해. 고마워. 감사해.”     

요즘도 아주 가끔 남편이 미워 보일 때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우리 부부를 상상하고 헤어짐을 준비하며 나눌 대화를 생각해본다. 그럼 눈앞의 갈등은 조금 작아지는 기분이다. 그리고 나중에 “미안하다”라는 말을 조금만 하기 위해서라도 “미안해할 만한 행동”을 조금 덜 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임경선 작가님의 에세이 덕에 남편과 사이가 더 좋아졌다.     


#남편원망 #임경선작가 #엄마와연애할 때 #권태기극복기 #남편미안 #남편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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