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집의 문은 닫혀 있었다. 출입구 유리문에는 오후 2시에 문을 열겠다는 작은 메모가 붙어 있었고 10분쯤 남았기에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다. 2시 5분쯤 가게 안쪽에서 출입문을 여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꽃 경매가 있어서 늦게 문을 열게 됐다는 사장님은 조금 숨이 차 보였다. “원하는 예쁜 꽃들을 꼭 낙찰받으면 좋겠어요”라고 나도 말을 보탰다.
이번 어머니의 칠순에 나는 꽃바구니 담당이 되었다. 예쁘고 풍성하고 특별한 꽃바구니를 안겨드리고 싶었다. sns로 요즘 트렌드의 꽃바구니들을 먼저 검색하고 동네 꽃집으로 향했다.
매장 안은 아직 졸업시즌의 꽃들이 포장 그대로 남아있어서 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포장지 위로 뽀얀 먼지가 내려앉았고 생화를 특수 보존 처리한 프리저브드 플라워는 매장의 낮은 조도 때문인지 시들해 보였다. 투명하고 둥근 물방울 안에 갇힌 비누꽃에서도 향을 맡기는 어려웠다.
작은 아이의 졸업식을 준비하던 때도 나는 이곳에 있었다.
3년 만의 대면 졸업식은 나에게도 무척 설레는 행사였다. 초등 졸업식과 중학교 입학식을 모두 zoom으로 끝낸 큰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했는데 올해는 졸업식에 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졸업식장은 가정마다 1명의 입장만이 허락됐지만 그마저 감사한 마음이었다.
졸업시즌이라 꽃값은 많이 비쌌다. 망설이다가 결국 3만 원짜리 꽃다발로 정했고 사장님은 여유 있게 주문했으니 원하는 꽃과 색감을 맞춰주겠다고 약속했다.
졸업식날 아침, 예약한 꽃과는 한참 달랐지만 행사 시간에 쫓겨 일단 사진만 찍어놓고 나중에 사장님께 자초지종을 들을 생각이었다. 무릎 위에 놓인 꽃 아래에선 물이 뚝뚝 흘렀고 하얀색 스토크는 끝이 심하게 쳐져 말라있었다. 급하게 꽃잎 몇 개를 떼어내고 보이지 않도록 아래쪽으로 꽃을 감췄다. 졸업식장에는 내 것만 빼면 모두 예쁘고 화사한 꽃다발 같아서 속이 더 상했다.
아이들의 졸업을 축하하고 기억하는데 집중하려고 마음을 다독였다. 처음 입학식을 하던 그 자리에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들이 꽃보다 환한 모습으로 웃으며 서 있었다. 잘 견뎌준 시간, 건강한 모습을 보니 어느새 속상했던 마음이 녹고 그 일은 그냥 내 마음에 묻기로 했다.
이사 와서 8년째 나의 단골 꽃집이었다. 봄이면 우리 집 작은 정원과 테라스에 꽃을 번갈아 심기 위해 부지런히 오고 갔다. 코로나 3년 동안 <만 원의 행복> 이벤트를 잊지 않고 챙겼다. 꽃을 가까이 두고 볼 수 있게 도와준 사장님께 감사했고 작은 보탬도 되고 싶었다.
만원의 행복
아이들은 꽃을 좋아하는 나에게 생일이나 결혼기념일마다 꽃 선물을 했다. 어느 생일날은 침대 아래에 숨겨두고 캠핑을 갔다가 내내 꽃의 안부를 걱정하는 날도 있었고, 결혼기념일에는 작고 오묘한 보랏빛의 수국을 안고 와서 나를 감동시켰다.
열 살 아이에게 만 천 원짜리 수국 포트 화분을 받은 날이 떠오른다. 설렜던 마음이 가라앉자 아이가 너무 큰돈을 주고 꽃을 샀다는 생각과 잔돈으로 내미는 여러 장의 천 원권 지폐를 보다가 마음이 심란해졌다. 5만 원권 지폐를 헐어서 모자란 수국 값으로 천 원을 치렀다는 얘기였다. 아이의 불안한 눈빛을 피하느라 더는 묻지 않았지만 그 밤 여러 고민에 뒤척였다.
물건에는 가격이 있고 수국 화분은 11, 000원였으니 아이도 사장님도 잘못이 없었다. 아이에게는 깊숙이 넣어둔 세뱃돈 5만 원권이 있었고, 엄마를 위해선 그 돈은 아깝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나는 “천 원은 이따가 자전거 타고 와서 그때 줘도 된다고”.... 아니, 살짝 나에게 문자로 잔돈을 귀띔해 주셨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며 혼자 서운해했는데 그건 다 내 입장이었다.
아이가 선물한 수국을 아끼는 토분에 넣어주었다.
엇갈리는 감정들은 다시 꽃 앞에서 수그러들었고, 어머니의 꽃바구니를 주문하러 나는 다시 꽃집에 갔던 거다. 이번엔 특히 실수가 없어야 했기에 꽃바구니의 크기와 가격, 꽃의 종류 등을 알고 싶었다. 사장님의 꽃집은 그 흔한 인스타 계정도 하나 없었다. 원하는 분위기와 예산, 수령 시간을 말씀드리고 제작 이미지를 보여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사장님은 그 과정을 꽤 귀찮아했다. 그냥 가격에 맞춰 잘해준다는 얘기였지만 지난번 졸업식과 같은 실수는 다시 하고 싶지 않아서 샘플 사진이라도 보고 싶었다.
겨우 두어 장 보여주신 핸드폰 사진의 꽃바구니는 맘에 들지 않았고 꽃들도 지금 계절과는 거리가 있는 것들이었다. 국화 종류와 천일홍, 장미가 풍성했지만 조화롭지 못했고 너무 흔한 꽃 들이라 다른 종류의 꽃들이 가능하냐고 말씀드렸는데 순간 안색이 좋지 않았다.
“다 알아서 해주는데, 까다롭게 하면 본인도 꽃바구니를 맡을 수 없다"라는 답변이 돌아왔고 나는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다. 아, 온몸에 찬물이 껴얹히는 순간이었다. 나도 이번엔 지지 않고 지난번 졸업식 꽃다발에 서운한 마음을 드러냈고 사장님은 그깟 2만 원짜리 꽃다발에 까탈을 부린다는 쪽으로 나를 몰아세웠다.
어이가 없었다. 졸업식날, 시든 꽃에 쏟아지던 엄마들의 불만은 남자 사장님이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도 사장님은 미안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졸업 꽃다발 사진을 나에게 요구했다. 내가 진짜 생떼를 쓴다고 생각하셨나 보다. 나도 물러설 곳이 없어 사진을 꺼내 보여드렸더니 2만 원짜리에 그 정도면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 이게 끝이구나... 예감했다.
내가 미리 예약한 꽃은 3만 원이었고, 그날 내가 받은 꽃은 2만 원짜리가 맞았다.
맘에 들었던 4만 원짜리 꽃다발을 만원 아끼며 양보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인연이라 이름 붙이며 8년을 드나들었던 나는 이곳의 단골도 아니고, ‘고객님’도 아니었다. 그저 사장님이 다루기 쉬운 물러터진 손님 중 하나였다. 그동안 고여있던 서운함과 괘씸함, 분노가 마음 안에서 걷잡을 수 없이 일었다. 사장님은 끝까지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오래된 ‘단골집’을 잃었다.
어머니의 칠순 꽃바구니는 화사하고 세련되고 예뻤다. 동네에 2년 전 새로 생긴 꽃집은 코너 전면이 모두 투명창으로 되어 있고 매장 안은 이국의 꽃들과 갖고 싶은 화병들이 선반에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꽃처럼 아름다운 젊은 플로리스트는 나의 취향과 선물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나의 꽃바구니를 위해 여러 번 다정한 글과 꽃 사진을 보내왔다. 그녀의 마음이 고마워서 비싼 이벳 장미를 추가해서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