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이야기 (프롤로그)
#동전노래방 #코인노래방 #첫이야기
처음 (노래다운) 노래를 부른 기억은 고등학교 2학년 같은 반 친구인 Y와 함께 간 동전 노래방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노래했다고 말하면 너무 늦게 경험한 거 아니냐고 하던데, 사실 별 이유 없이 부르고 싶은 노래가 없다던가, 노래방 안에 에코가 너무 울려서 불편하다는 이유를 대며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굳이 노래를 불러야 할 필요도 느끼지 못해 고등학교에 올라가고도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본 적 없었다. 헌데 왜 내가 동전 노래방에 가게 되었냐면은, 당시 유행하던 UCC 영상 <오디션 박스>에 홀딱 빠져버려서이다.
#오디션박스
외형을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 같은 (문을 닫아도 이게 방음이 되긴 하나 싶을 정도로 문틈 사이가 벌어져 있는) 1평 남짓 방. 설치된 노래방 기기에 200원을 넣으면(500원에 3곡을 부를 수도 있었다) 반주 한곡이 흘러나오는 작은 공간. <오디션 박스>는 동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오락실 노래방 부스에서 노래한 영상을 인터넷에 업로드한 영상이다. 자기가 찍은 노래를 인터넷에 올리는 것도 신기했지만, 그때 당시 영상이 유명해진 건 몇몇의 실력자가 부른 노래 영상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영상 속 실력자의 노래 실력은 엄청났다. 마치 TV 속 가수가 부르는 듯했다. 음은 얼마나 높게 올라가던지 혼자 부르려고 만든 것 같은 소찬휘, 김경호의 노래도 완벽하게 소화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완전히 열광했고, 거기에 나도 발 빠르게 동참했다.
어떻게 저렇게 노래를 잘할까?
사람이 목에서 저렇게 높은 소리가 나지?
아니 애초에 이 사람들은 왜 가수를 안 하지?
내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노래 실력을 감상하면서 내 성대도 같이 움찔거렸다.
멋지다! 저렇게 한번 불러보고 싶다!
드디어 18년 인생에 노래욕구가 생겨났다. (돌이켜보면 이때가 음악가로 살게 된 첫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내 노래 인생의 첫 번째 고민이 바로 찾아왔는데 바로 미친듯한 뻘쭘함과 쑥스러움이었다. 이게 혼자서 시작하려니 쑥스러움이 온몸에 퍼지는 느낌이라 이거 참 난감하고 뻘쭘했다. 아무래도 혼자서는 도저히 못할 것 같더라. 결국 같은 반 친구 중에 한 명을 꼬셔보기로 했고 그 친구가 바로 Y였다. Y는 반에서 노래를 못한다는 소문난 친구로, 평소 노래하길 좋아하는 터라 그 소문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렇게 18년 만에 새롭게 찾은 노래욕구를 어떻게든 해소하고 싶은 나와 노래 수련을 통해 소문을 잠재우고 싶은 Y의 뜻이 한대모여 우리를 하교 길 동전 노래방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하교 길. 언제부터 존재했을지 모를 동네 오락실로 들어서자 일열로 쭉 나열된 동전 노래방이 보였다. 노래방에 들어가기 전 오락실 한쪽, 동전 교환기에서 오늘의 도전에 사용할 동전을 (무려 그 당시 거금 2000원을 다) 교환했다. 바지 주머니든 든 동전 더미를 만지작거리며 신중히 고민한 끝에 노래방 한 곳을 골라 문을 열고 들어갔다. 드디어 첫 동전 노래방 입성이다. 가장 먼저 20인치 정도 되어 보이는 브라운관 TV에서 재생되는 그 시절 뮤직비디오가 보였다. 바로 밑엔 여러 가지 버튼들이 네온사인처럼 빛이 났다. 영상에서 본 것처럼 두 사람이 앉아도 가득 찰 만큼의 작았다. 우선 각자 안쪽에 있는 작은 스툴 의자 끌어다 앉았다. 노래방 안을 두리번거리다 TV 옆에 노래방 책자가 꽂혀 있어 손으로 집어 빼내서 무릎 위로 가져와 펼쳤다. 무수히 많은 노래가 동요, 민요, 70-90년대 댄스, 트로트 메들리와 가, 나, 다 순으로 정렬된 표가 비닐랩 안에 꽂혀 있었고 한 장 한 장 넘겨보면서 선곡할 노래를 신중히 골랐다.
"이거다!"
선곡할 노래를 발견하고 노래 번호를 기기의 숫자판을 눌러 입력했다.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 김동률
TV 화면 상단에 뜬 노래 제목을 확인하고 집게 모양의 고무 거치대에서 다이내믹 마이크를 빼 들었다. 잠시 숨을 멈췄다가 긴 날숨과 동시에 노래 '시작'버튼을 누르니 화면 가득 노래 제목과 곡정보가 뜨고 반주가 흘러나왔다. 긴장한 채 두 손을 마이크를 꼭 쥐고 처음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마(마)치(치) 어(어)제(제) 만(만)난(난) 것(것)처(처)럼(럼)
잘(잘) 있(있)었(었)냔(냔) 인(인)사(사)가(가) 무(무)색(색)할(할) 만(만)큼(큼)
마이크를 타고 들어간 목소리가 스피커로 흘러나오며 그 뒤를 웅장한 잔음들이 뒤따랐다. 오-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좋은데? 빵빵한 에코 덕분인지 노래방에 퍼지는 목소리가 무척 따뜻하게 느껴졌다. 비록 반주에 맞지 않는 음을 내거나(사실 거의 대부분 음이 그랬지만) 박자가 자주 엇나가긴 했지만 천천히 흘러나오는 반주에 맞춰 가사를 읊조리고 변해가는 전개에 맞춰 감정을 담아갔다. 재미있다. 정말 재미있었다. 이상하다. 나는 분명 노래를 부르는 걸 싫어했을 텐데 왜 이렇게 재미있지? 비록 클라이맥스에 다달했을 때 삑사리를 신명 나게 쳤던 기억은 아찔했지만 분명 노래를 부르면서 큰 재미를 느꼈다.
그날 가지고 있던 지폐를 모두 잔돈을 더 바꿔 동전 노래방에 탕진했다. 그날 이후부터 더 많은 노래를 듣게 됐고, 더 많은 노래를 더 잘 부르고 싶었다. 1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마음을 간직하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