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 되면 아기의 “엄마, 엄마” 하는 부름에 잠에서 깬다. 대부분은 잠에서 깨어 혼자 놀던 아기가 이제는 더 참아주지 않고 나를 부르는 소리다. 아침잠이 많아 더 자고 싶어 눈을 뜨는 둥 마는 둥 뒤척이고 있으면 아기는 “뽀뽀”라고 속살이며 내 얼굴에 침이 가득한 뽀뽀를 해준다. 그러면 오늘도 역시 짜릿해, 아기 뽀뽀라니! 하는 기분이 들어서 벌떡 일어나 아기를 안고 거실로 나선다.
아기를 안고 거실로 나오면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창밖을 향해 아기가 “아침”이라고 말한다. 어쩜 하루가 다르게 할 줄 아는 단어가 늘어나는 건지 그 발전이 신기하다. 머리며 볼이며 손, 어깨, 몸, 발에 뽀뽀를 하며 아기를 내려놓고 묵직한 밤기저귀를 갈아준다. 아기는 얌전히 내 어깨를 짚고 서서 보송한 기저귀를 입고 내복 바지를 착착 입어준다.
아기가 놀이방에 가서 드럼 장난감을 켜며 신나게 춤과 노래로 하루를 시작하는 동안 나는 아침루틴을 시작한다. 이제 화장실 문을 열고 일을 보는 건 당연하고 익숙한 일이다. 오늘도 아기는 변기에 앉은 나를 확인하고 양치하고 이 닦는 모습을 문가에 서서 바라본다.
아침 시간은 전쟁이다. 요즘 부쩍 편식이 심해지고 밥을 잘 먹지 않는다. 아침은 되도록 아기의 취향에 맞는 선에서 든든하게 먹이려고 노력한다. 어린이집에서 나오는 오전 죽을 아기가 썩 좋아하지 않아서 거의 거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유 있게 챙겨주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나중엔 어떨지 조금 심란하다.
아침시간이 전쟁인 다른 이유는 병원 때문이다. 내가 최근에 읽은 소아과 의사가 쓴 <소아과에 가기 전에>라는 책에서는 아기들은 원래 겨울에 감기를 달고 사는 일이 당연한 거란다. 심지어 그 책에서 말하는 겨울은 10월부터 3월까지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병원 방문을 위해 소위 똑닥팅이라 불리는 소아과 예약 전쟁을 거치고 오늘의 순위를 확인했다. 대기 13번. 이 정도면 9시 정도에 진료를 볼 듯하다. 얼른 아기를 데리고 병원 가야지 생각하는데 오늘 아침에는 아기가 응가를 두 번이나 했다. 심지어 다 챙기고 차문을 여는데 문이 안 열린다. 차키를 안 가져온 거다. 다시 아기를 데리고 올라갔다 내려왔다. 그러느라 오늘도 허겁지겁 소아과에 도착하니 대기 1번. 아슬아슬했다.
어린이집에 아기를 등원시키고 나면 진이 다 빠진다. 오전부터 지쳐버린 몸으로 집에 돌아오면 아침루틴으로 난장판이 된 집이 나를 반긴다. 아기 먹은 자리를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가습기를 세척하고 아기 반찬과 국을 만든다. 냉장고를 살펴보니 일주일간 출장을 간 남편이 출장 가기 전 채워놓은 냉장고에 식재료가 가득하다. 요즘 집들이를 했더니 그때 만들고 남은 식재료도 가득했다. 식재료가 상하기 전에 처리하기 위해 오늘은 아기 반찬 만들고 남은 두부, 집들이하고 남은 아스파라거스와 새송이버섯을 손질해 뒀다. 손질해 둔 재료들을 넣을 락앤락 뚜껑 실리콘에 이물질을 발견해서 분해한 뒤 박박 씻는 여분의 일도 늘 있는 일이다.
그래도 오늘은 점심 약속이 있었다. 근처로 출장온 직장 동료들과의 짧은 식사시간이었다. 한동안 이사며 님편의 잦은 출장으로 아기와 둘만 지내고 사람을 안 만났더니 내 우울이 깊어진 것 같다는 남편의 조언을 듣고 요즘 일부러 약속을 만드는 편이다. 그리고 기분을 끌어올리기 위해 매일 밖에 나가 산책도 한다. 2년간 육아를 하며 배운 점이 있다면 사람은 주기적으로 사람을 만나 교류를 해야 하고 자칫 일상에 지쳐 나를 돌보지 않을 때가 있으니 나를 점검하고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단 점이다.
점심 약속을 마치고 원래는 운동을 하려 했는데 생각을 바꿔서 연락한 지 오래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하면 늘 대화가 길어지고 내 지난 일상 속에서 놓쳤던 마음들을 되돌아보게 하는 친구다. 직장을 다니며 마음 맞는 동료를 찾기 어려운데 나는 운 좋게도 내 또래의 언니를 만나 서로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서도 안부를 주고받곤 한다.
그러다 보니 시간은 이제 아기 어린이집 하원시간. 전기밥솥에 새 밥을 하고 푸쉬카를 밀며 어린이집으로 갔다. 감기가 나아가는 시점이라 그런지 아기가 오늘은 어린이집에서 잘 먹고 잘 놀았단다. 그리고 역시나 오늘도 바로 집에 들어가긴 글렀다. 놀이터에서 한참을 놀고 춥다는 내 말에 설득되나 싶더니 자기가 푸쉬카를 밀며 가겠다, 저기에 비행기가 지나간다, 주차장에 있는 자동차 출차 경고등을 많이 보고 싶다 하며 이런저런 실랑이 끝에 이 한겨울에도 한 시간 만에 집에 돌아왔다. 이런 일은 흔하기 때문에 아기는 늘 완전무장을 한다. 내복에 융기모 상하복, 털신, 패딩, 귀 덮는 털모자는 필수다. 그런데 오늘 노는 걸 보니 앞으로는 장갑을 챙겨야겠다. 아무 생각 없이 흰 패딩을 입힌 건 실수였다. 한겨울에도 땅바닥을 기어 다닐 줄은 몰랐다.
집에 돌아와서는 옷을 갈아입고 손을 씻는다. 신발 벗는 법을 가르쳐주었더니 스스로 신발도 벗고, 패딩 지퍼도 스스로 연다. 아직 내 도움이 있어야 옷을 벗지만 손끝이 야무져진 게 느껴진다. 옷을 벗은 뒤에는 스스로 손도 씻는다. 이게 물놀인지 손 씻기인지 모르게 아주 오래 걸려서 문제지만.
이후에는 간식 문제로 약간 실랑이가 있었다. 밖에서 놀고 왔는지 허기져해서 간식을 찾지만 간식을 많이 먹으면 저녁밥을 거의 안 먹으니 벌어지는 일이다. 결국 우유 한잔으로 합의를 봤지만 그 과정에서 아기가 울음이 터지는 건 늘 있는 일이다. 손동작으로 ‘많이’를 표현하며 우는 아기가 귀엽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서 넘어갔다간 어제처럼 저녁을 거르고 넘어갈 수도 있어서 오늘은 바로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아기 저녁은 청경채나물에 두부강정, 닭무국이었다. 요즘 밥투정이 심해진 아기답게 몇 수저 먹고 손으로 ‘주먹밥’을 표현한다. 그래서 단무지와 김자반을 추가해 주먹밥을 만들어주니 주먹밥 속재료가 마음에 안 든다고 다시 뒤집어졌다. 그래서 밥이 마음에 안 들면 먹지 말라고 하이체어에서 내려주고 나는 저녁을 먹었다. 오전에 손질해 놓은 재료를 소금과 후추를 뿌리고 오븐에 구워서 먹으니 생각보다 맛있었다. 그러고 있자니 아기가 다시 슬금슬금 와서 다시 하이체어에 올려주니 이제는 불평 없이 식은 밥을 먹는다. 따뜻할 때 잘 먹지, 늘 저러다 식은 밥만 먹는다.
그래도 잘 먹었으니 칭찬해 주고 아기가 원하는 대로 딸기를 ‘많이’ 잘라주었다. 이제 내가 뭔가를 준비하면 보채지 않고 내 루틴을 하나하나 짚어주면서 즐겁게 기다린다 “(딸)기” “저시(접시)” “(포)크” 같은 말을 하면서 기대에 찬 환호도 지른다.
다 먹고 나면 아기는 손 씻기를 빙자한 물놀이를 하고 나는 저녁 먹은 자리를 정리한다. 오늘은 그래도 이 닦기에 협조적이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식사 후에 닦아주는데 대부분은 이 닦느라 난리법석이다. 손 씻으며 응가도 했는지 기저귀가 묵직하다. 엉덩이를 씻기고 바로 샤워를 시작했다. 이제는 어른처럼 샤워기를 고정시켜 물을 뿌리면 그 안에 들어가서 몸을 씻는다. 몸에 물을 적시고 손에 비누거품을 주면 목, 팔, 겨드랑이, 가슴, 배, 사타구니, 다리, 엉덩이, 등을 스스로 문지를 줄 안다. 손이 안 닿는 곳과 머리 감는 것만 내가 도우면 된다.
씻고 나서 로션 바르고 옷을 입고 저녁약을 먹이고 가습기에 물도 같이 넣고 놀이를 함께 하고 책을 ‘많이’ 읽어주고 나면 잠에 들 시간이다. 밤기저귀로 갈아주고 조끼를 입히고, 아기에게 사랑하고 소중하다고 꼭 안고 말해주면 잘 준비가 끝난다. 불을 끄고 안 자려는 아기에게 본인 침대에 가서 눕고 눈 감으라고 여러 번 말하고 나면 아기는 뒤척뒤척하다가 깊은 잠에 빠진다.
그러면 이제 드디어 육퇴시간. 식세기 그릇을 정리하고 거실을 치우고 아기 어린이집 가방을 챙기고 나면 겨우 내 시간이 찾아온다. 이제 이럴 날도 한 달 남았다. 곧 복직이 오면 이때가 여유로웠다고 느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