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 후 반년이 흘렀다. 이번달 월급이 생각보다 많이 찍혀서 무슨 일인지 급여명세서를 살펴보니 육아휴직복직합산금이 들어와 있는 걸 알게 됐다. 육아휴직을 하면 원래 받는 월급의 반도 안 되는 금액을 1년간 육아휴직수당으로 받게 되는데 그마저도 15%를 떼고 85%의 수당을 받는다. 남은 15%는 복직 후 6개월 차에 일시금으로 지급받기 때문에 아기가 두 돌이 지나 복직한 나는 아기가 30개월이 되어서야 이 돈을 받은 것이다.
그 돈이 집안 살림이 나아질만한 금액은 아니었지만 복직 후 반년이 지났다니 새삼 시간의 흐름이 느껴져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글을 쓸 여유조차 없이 흘러가는 내 삶 속에서 오래간만에 글을 써볼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하고 싶고 쏟아내고 싶은 것들은 차고 넘치지만 하루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는 시간들 덕에 짧은 일기처럼 쓰는 이곳도 마음의 짐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모처럼 복직 후 반년을 기념하는 기분으로 나와 아기의 이야기를 풀어봐야겠다.
나는 지난달부터 정신과에 다닌다. 직장 때문이었다. 왕복 100km의 자차 출퇴근, 나와 남편 직장 스케줄을 조정하며 이루어지는 아기 등하원, 폭탄 맞은 집안꼴, 복직하며 적응해야 하는 업무 같은 것들은 힘들기는 해도 각오한 일이기에 괜찮았다. 그런데 문제는 역시 사람이었다.
작년 인사 문제로 나를 궁지에 몰고 결국 재휴직을 선택하게 만든 관리자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발령 신청을 해서 이곳을 떠났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나에게 똥을 먹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인사규정을 본인 입맛대로 해석해 가며 매년 휴직과 퇴직을 하게 되는 팀을 주었고 이 직종에서 가장 기피업무로 꼽히는 곳의 부장 자리를 주고 떠났다. 둘 중 하나만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따지는 내게 그 관리자는 “그럼 본인이 복직해서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규정을 고치세요.”라고 말했다. 세상에 다양한 미친 상사들을 봤지만 그렇게 신박하게 미친 건 또 처음 봤다. 나중에 다른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모든 업무에 그런 식이었고 몇 달 뒤엔 감사과에 보고 해야 할 사항까지 생겼던 사람이었다.
어쨌든 부당한 인사라도 거부할 권한도 힘도 없는 노동자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새로 발령 온 관리자들은 업무적으로 합리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렇다고 내게 온 똥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지만. 내 직종은 팀 업무와 직장 전체에서 배분되는 업무 두 가지를 함께 해야 한다. 식당을 예로 들자면 나는 조리를 하는 팀에 있는데 회계 업무를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손님들이 있을 때는 조리를 하다가 브레이크타임에는 조리실 식재료 준비를 하는 것과 동시에 회계 프로그램도 돌려야 한달까. 그러다 회계감사를 받아야 하면 조리를 하던 중에도 일을 던져버리고 회계감사 준비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맡은 조리팀은 계속 사람이 그만두던 자리고 내가 맡은 회계업무는 무한 감사가 들어와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시스템인 것이다.
지난 관리자가 내가 조리실에 있으면 갑자기 상한 식재료를 가져다가 썩은 부분 도려내고 써보라는 사람이었다면 이번 관리자는 내가 회계감사를 받고 있으면 조리실에 본인이 대신 들어와 주는 사람이었다. 일단 그 덕에 좀 버틸 수 있었고 우리 팀도 다른 팀 사람들도 나의 힘듦을 알아주는 사람들인 점은 다행이었지만 문제는 어디에나 있는 진상들이었다. 내 정신과 담당의에 의하면 그런 사람들은 각티슈의 휴지 색깔이 검은색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며, 흰색이라고 말하면 불 끄면 검은색이라고 소리 지르는 사람들이라며 날 위로했지만 그런다고 진상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온갖 모욕과 감정적인 오물을 받고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모든 것들 속에서도 아기는 성장하고 있었다. 육아하는 사람으로서 나의 목표는 직장에서의 일과 아기를 대하는 일을 구분하는 것이었다. 어려운 순간도 많았지만 내가 병원을 다니고 약을 먹는 것도 나 자신을 지켜서 아기에게 영향이 가지 않게 하려는 노력이다.
지난 글 속에서 나온 배변훈련은 한 번 실패했다. 당시의 나는 배변훈련을 제대로 해줄 마음의 여유가 부족했다. 대신 아기 어린이집 방학 때 나도 휴가였기에 다시 제대로 도전했다. 아예 기저귀를 떼고 팬티를 입히기로 했다. 첫 4일은 아기도 나도 패턴을 알기 어렵다가 5일째에는 강아지 훈련법을 배우기로 했다. 성공힐 때마다 간식을 주는 방법으로 바꿨더니 성공 횟수가 늘었다. 아기가 소변 실수를 할 때 자기도 놀라서 한번 멈추는 것을 모르고 몇 번씩 나눠 나머지 쉬를 하는 패턴을 알게 되기도 했다. 한번 실수할 때 바로 변기에 앉혀주면 놀라서 멈춘 나머지 소변을 보게 되면서 실수가 줄었다. 그래서 방학이 끝난 뒤 어린이집에서도 배변 적응을 잘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어린이집 방학 기간에 우리 부부도 함께 휴가 기간을 가지며 밀착된 육아를 하니 언어가 확 트이는 경험을 했다. 즐거움, 행복함, 신남, 화남, 서운함, 무서움, 슬픔, 그리움, 부끄러움에 대한 감정표현을 언어로 할 줄 알게 되니 대화로 풀어갈 수 있는 폭이 넓고 깊어졌다. 기분이 좋을 때면 아는 동요를 흥얼거리며 놀이를 하기도 하고 인형에게 내가 자신에게 하는 애정표현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큰 기쁨이었다.
아이에게 보이는 모습이 나와의 관계에서 보이는 것도 큰 배움이었다. 아이가 나에게 부탁을 하거나 욕구 충족에 대한 요구를 할 때는 존댓말을 쓰는데 그때 그 친절한 말투와 어조에서 내가 아이를 존중하려고 노력했던 부분이 보여서 감사했다. 사랑해라고 안아주면 행복한 표정으로 마주 안아주는 것, 짜증 낼 때 친절하게 말해줘라고 하면 진정한 뒤 다시 어조를 고쳐 말해주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아이가 음식을 먹을 때 흘리는 것을 자꾸 가리고 자신의 몸으로 덮으려는 행동을 보일 때 내가 깔끔함에 대해 예민하게 굴었던 것이 아이에게 그런 방식으로 나타나는구나 싶어서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서 아이가 그럴 때마다 ”ㅇㅇ이는 아직 아기니까 실수하고 흘리는 건 당연해. 엄마도 실수하고 ㅇㅇ이도 실수해. 흘리는 건 치우면 되니까 괜찮아.”라고 여러 번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니 일부러 그러는 것과 실수인 것을 확인해 보고 그에 따른 내 반응을 물어보고 먹은 자리를 함께 치우며 아직 능력이 닿지 않은 부분은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아이의 어려움을 넓게 봐주는 법을 배웠다.
미안함의 감정을 아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오늘 저녁을 먹이다가 아이가 하는 말을 내가 알아듣지 못하자 아이는 울며 식사자리를 떴다. 아이가 진정하기를 기다리며 아기가 오늘따라 고기를 뱉어내는 것 같아 아이 식판의 고기반찬이 괜찮은지 집어먹었는데 아이가 갑자기 흥분하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아이는 내가 자기가 가장 좋아해서 아껴먹고 있던 식판의 샤인머스캣을 내가 집어먹은 줄 알고 화를 낸 것이었다. 내가 ”ㅇㅇ이거 허락 없이 먹어서 미안해. ㅇㅇ이에게 물어보고 먹을게. “라고 말하자 아기도 ”괜찮아. 고기 먹어도 돼. 미안해. “라고 내 사과를 받고 자기 오해도 미안하다고 말해주는 것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내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지만 아이 본인도 오해한 부분을 인정하는 마음은 어려도 가능한 거구나. 고맙다 내 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