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주도학습법 중 발췌
완성된 원고의 일부인데 수정을 거쳐 세상에 나올 예정이다. 언제쯤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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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수험생들이 보이는 실수는 맹목적으로 필기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적는 행위와 학습이라는 인지적 과정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 정규 교육과정에서 집단적인 교육을 위해 다양한 교수학습 방법을 활용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손쉽게 활용되는 방법은 무언가를 쓰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학습방법은 우리가 언어를 배울 때 글씨를 쓰는 것을 필수적으로 배우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익숙하고 친근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글씨를 쓰는 행위를 하면 그것 자체를 학습행위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기본적으로 공부는 주어진 학습내용을 머릿속에 익히는 과정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지하고 사고하는 것이다. 모든 학습방법론은 인지와 사고라는 정신적 작용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글을 쓰면서 공부가 되는 것은 글을 쓰는 행위가 학습이라는 인지적 작용을 매개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단지 글을 쓰는 것이 그 자체로 학습이어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그것이 인지적 매개행위로서 뚜렷한 효과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필기를 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학습내용을 인식하고 생각하는 것에 집중했다. 예컨대 외워야 하는 내용을 쓸데없이 손으로 적어가며 공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글씨를 쓰며 공부하는 것보다 더 경제적인 학습방법이 있기 때문이었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영어 단어의 경우에는 음성을 매개로 외우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발음과 강세 그 자체를 외우고 있는 것이 언어구사능력에서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소리를 듣고 따라하며 외우는 편이다. 한편 한자를 외울 때에는 각 문자를 그리는 방법을 외워야만 필요할 때 이를 재현해낼 수 있기 때문에 쓰면서 외우는 것이 적절한 방법이다.
쓰면서 공부하는 것이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은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기 전까지, 비교적 우수한 성적을 내는 다른 모든 과목에 비해 수학과목은 형편없는 성적이 나왔다. 이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에 대한 해결책이 바로 문제를 풀 때에 필기구부터 가져가지 않는 것이었다.
수학 문제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논리적 사고과정이 중요하다. 그런데 문제를 보고 먼저 필기구부터 가져다 대는 경우에는 손이 먼저 바빠져서 오히려 생각에 방해가 된다. 이를 깨닫고 수학 문제를 풀 때에는 가만히 문제를 먼저 보고 풀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습관을 들였다. 그 후에 단 1년 안에 큰 폭의 성적 상승과 문제해결능력의 발전이 있었다.
이는 비단 특정 과목에 국한되는 방법론이 아니다. 쓸데없이 글씨를 적지 않는 습관은 다양한 과목에서 학습효율을 높일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하였다. 다시 볼 일이 없는 내용은 절대로 공들여 밑줄을 긋거나 필기를 하는 데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의 철칙이다. 이는 무언가 꼼꼼히 쓰고 정리하는 것을 싫어하는 저자의(혹은 인간의) 게으른 본성과도 부합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다만 필기에 열중할 시간에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익히는 것을 한 번이라도 더 해보아야만 필기를 하지 않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저자는 ‘쓸데없이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서술형 시험을 준비하면서도 고수했다. 예를 들어 변호사시험은 줄글로 답안을 써내야 하는 사례형 및 기록형 시험의 비중이 매우 높은 시험이다. 가장 시험시간이 긴 과목은 무려 세 시간 반 동안을 내리 서술형으로 답안지를 채워야 한다. 저자는 업무와 학습을 병행해야 했기 때문에 학습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다. 이러한 제약적인 조건 하에서 시험을 준비하였기 때문에 가장 경제적인 방법을 찾아야 했다. 따라서 불필요하게 쓰면서 공부하지 않는다는 원칙 하에 시험을 준비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법학과목의 서술형 시험은 표준화된 시험관리와 채점시비 방지를 위해 키워드를 중심으로 채점하게 된다. 이는 결국 답안에서 요구하는 키워드를 정확하게 채워내는 것이 문장을 숙달되게 써내는 기술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법학과목의 서술형 시험을 준비하는 데에 오로지 직접 써보는 것만이 준비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내용을 숙지하고 있는 것, 무엇을 쓸지 키워드 위주로 외워두고 있는 것이 훨씬 중요한 출발이고, 고득점을 위해 숙달되게 써내려가는 훈련을 하는 것은 두 번째 일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학습 단계에 맞추어서 학습방법을 설계해야 하는 것이 맞다.
과감히 펜을 내려놓고, 머리가 해야 할 일을 손에게 시키면서 공부가 되고 있다고 믿지 않는 것은 경제적인 학습을 지향하는 저자에게 매우 중요한 학습방법이었다. 이는 평생의 학습지침으로서 더 적은 시간을 들여서 더 높은 학습성과를 올리는 방법으로 늘 실천하고 있다.
조금 더 논의의 평면을 확장해 보면, 쓰는 행위처럼 우리가 흔히 공부라고 착각하게 되는 여러 행위들이 있다.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공부는 아니다. 아무 생각 없이 인터넷 강의의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 공부가 아니다. 결국 인지활동을 통해 모르던 것을 새로 이해하고 기억해 저장하려고 노력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공부가 아니다. 공부를 할 때 흔히 함께 일어나는 현상이거나, 도구적으로 사용하는 매개행위에 불과한 것들을 공부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본질에 집중할 수 있다면 더 나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