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림두두 Oct 22. 2022

천성이 게으른 자의 환경설정

정신승리 추가요.


무소속 6개월차.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이란걸 고작 3년 6개월정도 맛본게 내 생활에 뭐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할까라는 생각은 오만이었다. 나의 고정수입이 빠진 우리집 가계 지출은 휘청이고, 매달 사고 싶은 것 하나씩 샀던 여유 같은게 사라진지도 6개월이 되어버렸다. 고정 수입 외에 사이드잡이라고 할만한 수입들이 있었기에 이는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다. 월급의 달콤함이란게 나에게도 존재했었구나. 그걸 월급이 사라진 후 알게 되다니.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더니. 조상님들 리스펙.


월급의 타격은 예상치 못했지만, 다른 것 하나는 분명 예상했다. 하루종일 누워 있을 나란 인간. 늘 나의 동력은 천성이 게으른 나를 채찍질하기 위함에서 출발했다. 출근은 게으름을 채찍질하기에 가장 좋은 수단이었다. 3년 6개월의 출근생활을 제외하면 난 육아와 가끔 일상에 이벤트처럼 찾아오는 일을 하는 (말이 좋아) 프리랜서, 반백수였다. 일이 있을땐 몇날 며칠 밤을 새가며 일을 하곤, 마감 후엔 몇날 며칠 침대 안에서 보내는게 전혀 이상할게 없었다. 그러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같은 시간 일하는게 지루해 미쳐버릴것 같았다. 자전거타면 10분거리에 있는 곳으로 출근하면서도 매일 같이 생각했다. ‘와…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돼?’ 매일 지옥철을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 생각하면 배가 불러 미어터질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활의 리듬이 생긴 것에에 안정감은 확실했다.


퇴사 후, 나의 천성을 막기위해 침대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일들을 꾸준히 만들었지만, 일이 하나 끝날 때마다 긴장이 풀리면 또 며칠을 누워 지냈다. 당연히 미라클모닝도 해보았다. 아침을 누군가보다 먼저 시작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뿌듯함과 만족도를 가져왔다. 한달정도 지속했는데, 코로나에 걸린 후로는 절대 다시 못했겠더라. 심지어 그땐 어떻게 했었지 싶을만큼 더 못일어나게 되었다. 더군다나 퇴사한지 6개월정도 부터는 무언가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찾아올때면 그 불편함에서 잠으로 도망가기도 했다. 이것 또한 알고 있었다. 나의 회피는 잠이란걸. 어떤 날은 애를 보내놓고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가 애가 하교할때 일어나기도했다. “지금까지 잤어?” 라는 아이의 물음에 어찌나 창피하던지. 


긴장감이 필요했다. 그리고 마음의 안정을 위한 ‘따박따박 월급’도 있음 좋겠다. 월급의 금액은 큰걸 원하지 않았다. 그러면 오~래 일해야 되니까. 적~당~히 안정적인 상태와 긴장감 해소를 위한 월급. 딱 그정도. 


정말 오랜만에 알바 사이트를 들어가 적당한 일자리가 있는지 찾아봤다. 20살 이후로 처음인가. 나이 36살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본다는게 조금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제 그런 감정에 속지 않는다. 운이 좋게도 손님으로 자주 가던 좋아하는 가게에서 십수년만에 알바를 하게 되었다. 화/목 주 2회. 딱 좋다.


신기하게도 일주일의 중앙에 알박듯 콕 콕 박힌 알바 스케줄이 일주일의 긴장감을 가져왔다. 알바를 가기 위해 부지런히 하루를 시작했고, 가지 않는 날은 하루가 통으로 온전히 나의 것이기에 부지런했다. 작고 소중한 월급만큼의 안정감도 생겼다. 나의 예상이 적중했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들다가도 한번씩 현타가 뒤통수를 팡!팡! 때리곤 했다. 좋아하는 가게에서 일하면서 무언가를 배운다는 그럴듯한 이유로 정신승리를 해보았지만, 이러려고 일을 관둔거니? 라는 질문을 스스로 할때마다 그럴듯하게 할 대답도 없었다. 


그 해답을 우연치 않게 찾았다. 스맨파를 보다가 긴 팔다리로 춤추는 한 댄서가 어찌나 멋지던지. 금사빠인 난 바타라는 댄서에 반해 유튜브에서 그의 춤영상을 보려고 그의 이름을 검색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영상은 한시간 분량의 그의 인스타 라방 영상이었다. 


[Q&A] 댄서,안무가 되는 방법? 명문대 자퇴 이유? 춤 연습 방법? 댄서 수입? 안무가가 꿈인 사람들을 위한 진지한 토크, 현직 안무가가 알려주는 춤 잘추는 방법.


춤 잘추는 방법 같은건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지만, 오 명문대를 자퇴했어? 라며 제목에 자극을 받아(이걸 원했겠지) 영상을 클릭했다. 그리고 수 많은 댓글들이 하나같이 분야 막론하고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이라는 말에 그 한시간짜리 영상을 볼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우습게도 그 영상에서 나의 마음을 가장 움직인건 ‘춤 연습방법 1’ 이었다. 나를 믿지 말아라로 시작된 말은 내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설정하라는 말이었다. 본인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힘든 타입이라, 일부러 아침에 아르바이트를 잡아 알바를 하고 연습을 하러 갔다는 말. 알바 장소도 연습실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잡아 알바가 끝나면 곧장 연습실로 갈 수 밖에 없게 ‘환경 설정’을 한다는 말이었다. 


오. 환경설정. 바로 그것이다. 그럴듯한 단어를 찾았다. 

이것은 환경설정이오. 이렇게 또다른 정신승리를 추가 했더니, 알바에 대한 만족도도 높아졌다. 이렇게 하루하루 차곡차곡 쌓아가다보면 뭐라도 되겠지! 암. 그리고 훗날 뭐라도 된 나는 꼭 말하리라. 환경 설정을 하세요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일기를 낭독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