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지지리 궁상'이 될 줄이야
나는 체질적으로 더위를 많이 타지 않는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올 여름에게 뒤통수 맞기 전까지는.
가마솥 더위가 기승을 부려 한낮에 바깥에서 아이들과 돌아다닌다는 것은 아직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등하원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잠깐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무조건 지붕이 있는 실내로 들어와 있어야만 한다.
'띠리링'
하원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에어컨부터 켠다.
당연하게도 아이들이 하원 후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집안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주야를 막론하고 에어컨과 선풍기가 쉴 새 없이 돌아간다. 전기세 걱정에 머릿속이 복잡해져도 행여나 아이들이 더위라도 먹는다면 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므로 어쩔 도리가 없다.
어릴 적부터 친정엄마는 줄곧 말씀하셨다.
"작은 돈은 줄여도 큰 돈은 못 줄인다"
그렇다. 눈에 띄는 큰 지출 중에서 줄일 곳은 없다. 집이나 자동차에 들어가는 고정비를 비롯해 매달 납부하는 보험료와 아이들 교육비 등 비교적 큰 금액의 생활비는 내 의지대로 줄이기가 참으로 어렵다.
그나마 '내 의지대로' 줄일 수 있는 것은 '나 혼자만을 위한 지출'이라고나 할까.
'혼자 있을 땐' 에어컨 대신 선풍기로 버티기,
'혼자 있을 땐' 커피 사먹지 않고 집에서 내려 마시기,
'혼자 먹을' 디저트나 간식 쟁이지 않기,
......
여기서 중요한 것.
마인드 컨트롤은 필수, 세뇌는 선택.
덥지 않다. 덥지 않다. 덥지 않다.
이정도면 선풍기로도 충분하다.
...
아예 덥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견딜 만은 하다.
조금 덥지만 이 정도쯤은 아직 괜찮다.
...
땀은 나지만 명색이 여름인데 이 정도가 대수랴.
적당한 계절감각은 피부로 느껴줘야 제맛이다.
...
작년보단 힘들다. 예사 더위가 아니다. 하지만 도저히 안될 것 같기 전까지는 선풍기 바람도 제 역할을 하긴 한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한편으론 몹시 궁상맞다. 그런데 이런 궁상이 비단 나 혼자만의 습관일까?
많은 엄마들이 혼자 있는 집에서의 빵빵한 에어컨 가동을 주저하고 있을지 모른다. 가족들과 함께 영위하고 싶은 작은 행복이기에 나 혼자만의 사치(?)는 잠시 자제하는.
올 여름은 에어컨 없이 보내는 나만의 시간이 예년에 비해 다소 힘들었지만, 인중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지언정 마음은 그렇게 산뜻할 수가 없다. 대단한 경제적 절약을 이루어 낸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
엄마가 되면서 시작된 나의 이런 '자발적 희생'은
어쩌면 자신의 식욕을 가족들의 입 속에 양보하며 짜장면이 싫다고 한 그 때 그 시절 어머니들의 습성과 참 많이 닮아 있다.
어머님은 에어컨이 싫다고 하셨어.
2018년 8월 중순의 어느 밤,
뿌듯하게 선풍기 바람을 쐬며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