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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Aug 24. 2018

시간이 없다고? 의지가 없는 거겠지

운동이든 뭐든 핑계 없는 무덤 없다


"운동? 나도 하고는 싶은데, 어째 시간이 안 나네."


입버릇처럼 무심히 내뱉은 나의 핑계에 언니가 한 마디 쏘아부친다.


시간이 없다고? 의지가 없는 거겠지.



가슴에 콕 박히는 한 마디

의.지.가.없.는.거.겠.지.


그 예리하고도 무자비한 지적질에 딱히 받아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랬다. 그 동안 언니가 운동 좀 하라고 아무리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해도 입에서 버릇처럼 나오는 말도 안 되는 핑곗거리는 얼마든지 있었다.



집 앞 공원에서 운동하려 했지만 미세먼지가 많아서 말야.

오늘은 미세먼지 없이 깨끗해서 나가보려 했는데 너무 더워서 쪄 죽을 것 같아.

날씨가 좀 살만해져서 운동 좀 해보려 했더니 오늘은 비가 오네.

헬스장 가서 하라고? 어쩐지 전자파가 걱정돼서.



말도 안 되는 구실들.

그냥 하기 싫다고 말하면 그 뿐인 것을.





나의 언니는 결혼, 임신, 출산을 경험하면서도 지금껏 직장 생활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워킹맘이다. 그 뿐 아니라 새벽에 무려 운동까지 한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헬스장 가서 운동하고 씻고 출근하는 자기관리 철저한 커리어 우먼이다. 심지어 워킹맘들이 흔히들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가사도우미나 등하원도우미, 베이비시터도 전혀 쓰지 않고 말이다.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는 신여성이다.


물론 언니도 처음부터 이런 완벽한 슈퍼우먼이었던 것은 아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인생의 큰 즐거움으로 삼는 형부 결혼한 후 서로 경쟁적인 속도로 먹어온 탓에 차곡차곡 살을 적립(?)했다. 그러다 '나도 한번쯤은 마른 인간으로 살아보리라'는 굳은 다짐으로 운동과 식이요법을 병행한 지 두 달만에 8kg이나 감량하는 가공할 만한 위력을 보여주었다. 꾸준한 운동과 식단관리로 현재까지 요요없이 유지중이다. 근육량의 증가, 체지방량의 감소를 상세히 기록한 결과지도 보여주며 나에게도 운동을 끊임없이 권해 왔다. 지금은 김종국 뺨칠 정도로 운동에 중독된 엄청난 집념의 소유자다. 나와 같은 핏줄 맞나 싶다.




나는 홈쇼핑 회사에 다녔다. 회사 생활을 하던 기간의 대부분을 밤과 낮,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생방송을 해야 했다. 새벽 출근 또는 새벽 퇴근도 예사였다. 출퇴근은 불규칙적이었고,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규칙적인 삶을 꿈꿨다. '나인 투 식스'는 바라지도 않았고 주5일 근무만이라도 하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직업이었지만 레귤러한 생활에 대한 바람은 그것과는 별개로 간절했다.


불규칙한 라이프 사이클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나의 직장생활 안에는 늘 동이 곳곳에 스며 있었다. 퇴근 후에 헬스장에서 한 두 시간씩 운동을 했다. 출퇴근 시간이 어중간했던 날은 점심시간을 쪼개 회사 앞 헬스장에서 짧고 굵게 운동을 하기도 했다. 들쑥날쑥한 생활 속에서도 오히려 절실하게 운동을 해왔고, 그 안에서 생활의 활력과 에너지를 찾았다. 시간은 그 때가 더 없었고 시간에 대한 간절함은 충만했다.



하지만 어느 새 나는 경력단절녀가 되어 있다. 결혼하고서도 쭉 일을 해오다가 첫 아이 출산 후에 육아휴직 기간을 두었고, 복직하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퇴사의 길을 택해 '백수'가 된지 어언 4년이 되었다. 그 후 나는 아직도 입에 잘 붙지 않는 '전업주부'가 되었고, 가사와 육아를 전업으로 하는 '전업맘'으로 살고 있다.


그래서 이제 나는 더 이상 규칙적일 수 없을 정도로 매우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아침이면 남편 출근시키고(사실은 혼자서도 알아서 잘 챙겨 나간다), 아이들 뭐라도 먹이고, 첫째 녀석 유치원 셔틀 태워 보내고, 둘째 녀석 어린이집에 들여 보낸다. 집안일 좀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 보면 어느 새 아이들 하원시간이 된다. 날씨가 좋으면 놀이터에서 좀 놀리다 학원에 들르거나 집으로 오고, 숙제 시키고 저녁 먹이고 씻기고 재우면 하루 일과가 마무리된다. 월화수목금 무려 5일이 특별한 일 없으면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참으로 규칙적이고도 규칙적이다. (어이구, 꿈을 이뤘구먼)




관건은 역시 의지의 유무다.


바쁜 언니도, 바빴던 과거의 나도 그랬던 것처럼 모든 것은 의지에 달려있다. 요즘의 내 생활에 내 시간이 많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없어 운동을 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운동이든 뭐든,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 동안은 시작하고자 하는 의욕이 거기까진 미치지 못했었달까. 


여기서 잠깐.

만약 강다니엘이 우리 동네 헬스장에 다닌다면?

간이 없긴 뭐가 없어. 잘 시간이라도 쪼개가면서 무슨 수를 써서든 다녔겠지. 


의지의 힘은 물리적인 시간의 차이를 초월한다. 시간이 더 부족했던 시절에 더 절박하게 지켜내고자 했던 것처럼. 앞으론 시간이 없다, 여건이 안 된다는 등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면서 내 인생을 낭비하지는 않기로 했다. 뭐든 시작부터 해야 훗날 후회가 없을 터. 


요즘은 백세시대라는데, 절반도 못 산 내 인생은 아직 전반전이니까.





2018년 여름,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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