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히 잠든 아들의 머리칼을 쓸어주며 생각했다. 오늘 하루를 살아내느라 얼마나 애썼을까, 대견하면서도 어쩐지 짠했다.
나의 아들은 '하필이면' 완벽주의를 좀 갖고 있는 것 같다. 한국 나이로 6세, 만으로는 5세인 어린 아이의 성향을 단정짓는 것 자체가 어쩌면 무의미할지 모르지만 일단 지금까지 낳고 기르며 보아온 바에 의하면 그런 편이다. 물론 아직은 아이라 허술한 부분도 많다. 대략적인 성향이 그렇다는 것이다.
스스로 완벽히 안다고 여기거나 확신이 생길 때까지는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 성격 탓인지 아들은 어릴 적 말문도 늦게 터졌었다. 하지만 문장 구사가 늦은 대신 발음은 시작부터 놀라울 정도로 완벽했다. 혼자 되뇌이고 연습이 충분히 됐다 여겨질 때까지는 섣불리 입을 떼지 않았다. 틀리는 게 두려운 것 같았다.
세 살 때였나 네 살 때였나, 뽀로로 의사놀이 장난감을 사준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의사놀이 가방이 네모반듯하게 잠기지 않고 약간 비뚤게 잠겨지는 것이었다. 어찌보면 넓은 의미의 불량품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여느 아이들이라면 그러려니 하면서 사용했을 미세한 정도였다. 우리 딸만 해도 그렇다. 그 가방이 잠기는 것 자체로 만족하면서 요즘 군말없이 사용한다. 어쩌면 비뚤게 닫힌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당시 아들는 그걸 정확히 각이 잡히게 똑바로 닫아달라고 얼마나 나를 보채고 귀찮게 했는지.
요즘도 그렇다. 유치원에서 내주는 숙제 중에서 그림책에 색칠을 해오는 게 있다. 가끔은 양이 좀 많은 편이라 선생님도 완전히 다 안해도 되니까 할 수 있을 만큼만 해도 된다고 하셨던 숙제다. 안 해가는 친구들도 많다던 반자율적인 것이었다.
- 엄마, 색칠하는 것 좀 도와줘.
나는 주방일을 하는 중이었고, 중하지 않은 과제임을 알았기에 약간은 귀찮기도 했다.
- 선생님이 그거 너무 많으니까 적당히 해도 된대. 다 못하겠으면 하는데까지만 하고 둬. 네 숙제니까 네가 할 수 있을 만큼만 하면 돼.
- 안돼 안돼, 다 해가고 싶어. 그러니까 엄마가 조금만 도와달라고.
빈 칸으로 남아있는 부분이 도저히 못 견디겠는지 주방에 있는 나에게 간절히 매달린다. 어쩐지 딱하다. 그래서 난 잠시 고무장갑을 벗고 같이 색연필을 잡는 일이 많다.
한편, 둘째인 딸은 아들과 정반대의 성격을 지녔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아무렇게나 시도해 보고 부딪쳐 보고 도전해 본다. 성공하면 기쁘고 실패해도 슬프지 않다.
그렇기에 담대한 것인지, 담대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첫째보다 훨씬 배짱이 두둑한 것만은 분명하다. 둘째로 태어나 첫째의 시행착오를 어깨너머로 보아온 데서 기인한 여유일까. 그 나이의 도전은 실패로 이어지더라도 어떠한 책임도 불러오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가 빤하게 안다. 그래서 더욱 뻔뻔하고 자신만만하며 의욕이 넘친다. 한 뱃속에서 나온 남매도 성향차가 이렇게 극명하다.
어미인 나는 아들의 완벽주의 성향이 안타깝다. 본인에게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살지 않아도 되는데, 조금 더 내려놓고 릴렉스해도 되는데. 그게 스스로가 편할 수 있는 길인데.
완벽을 추구한다 해서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완벽주의 성향의 사람은 완벽으로 다가가기 위해 자신을 혹독하게 담금질하고, 실패하면 좌절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물론 성공의 희열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분골쇄신의 고통이 영영 사라지지는 않는다. 엄마인 나는 우리 아이가 여유를 갖고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
아이가 부족함의 가치, 미완성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때가 오면 스스로를 조금은 자유롭게 풀어줄 수 있을까.
요즘 나는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작은 수첩에 조금씩 적어놓는다. 지금 당장 말로 하면 잔소리가 되어버릴, 하지만 훗날 언젠가 우리 아이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나의 노파심 같은 것.
오늘은 이렇게 적는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도 괜찮아.
반드시 '무엇'이 되지 않아도 괜찮아. 아무것도 '완성'되지 않아도 괜찮아. 그 과정속에 있는 너가 아름다웠고, '어떻게' 달려왔는지는 너 자신이 아니까 그걸로 충분해.
틀려도 괜찮으니 두려워 말고,
실패해도 괜찮으니 도전해 보렴.
엄마는 항상 네 편이야.
2018년 늦여름,
어쩌면 이건 나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