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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Aug 09. 2018

오늘도 엄마가 미안해

근데, 나도 처음인걸 어떡해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어린이집 하원길에 방금까지 내 눈 앞에서 킥보드를 타던 녀석이었다. 아차 싶었다. 곧게 난 아파트 안쪽 길이라 잠시 방심했나보다. 이제 고작 24개월짜리의 킥보드 타는 실력이 빠르면 얼마나 빠르다고, 내 걸음으로 대략 다섯 발자국이면 따라잡을 수 있는 사정권 내에 있었던 터라 아이의 실종은 꽤나 당황스럽다. 시야에 들어오는 작은 모퉁이길이 어림잡아 서너 개는 되어보인다. 어느 방향 먼저 향해야 하나.


순간.

소리쳐 아이의 이름을 불러볼까 말까 찰나의 고민이 있었다. 한 순간에 놓친 것처럼 또한 한 순간에 눈앞에 아이가 짠 하고 나타날 것만 같아서 섣불리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행동을 하는 것이 망설여졌다. 순식간에 찾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한편으로는 길에서 딴짓을 하다 아이를 놓친 불성실한 엄마가 되는 것 같은 시선이 적잖이 부담스러웠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알 수 있을 것 같은 동네 사람들이 내가 길에서 아이를 잃어버리는 순간을 목격해버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 긴박한 상황에도 알량한 자존심과 뭔지 모를 창피함이 아이를 찾는 것보다 순간적으로 우선해버린 것일까. 참 무책임한 보호자 같으니라고.


두돌 짜리 아이가 아파트 안의 작은 풀숲 사잇길로 들어가면 눈에 잘 띄지 않을 테니 내가 걷던 그 길 양쪽의 골목길도 샅샅이 뒤졌다. 비슷한 옷차림의 아이들이 오늘따라 너무나 많다. 


만삭의 임산부인 내 발걸음모터를 달아 더욱 속도를 낸다. 그야말로 동공지진이다. 끊임없이 시선을 움직여 아이의 동선을 파악해보려 하지만, 방금 전까지도 내 시야에 있던 아이는 킥보드와 함께 사라져버리고 없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킨다.


이쯤되면 슬슬 보일 때도 됐는데, 이상하다.



왜 아직도 눈에 띄지 않는 거지.





3분.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 흘렀다. 이젠 더 이상 타인에게 내 모습이 어때 보일지 따위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동동거리며 이쪽 저쪽 살피는 모양새가 곗돈 들고 튄 계주 쫓는 계원이 따로 없다. 누가 봐도 영락없이 아이 잃은 엄마의 모습이다.


쓸데없이 일찍 킥보드를 사준 내가 미친년이지, 하며 나를 원망했다.

쓸데없이 일찍 킥보드를 가르쳐준 남편도 원망스러웠다.

데없이 빨리 발달한 아이의 운동신경도 미웠다.

킥보드 위에 서서 나보고 끌어달라고 하던, 그 귀찮았던 때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다시는 킥보드 태우나 봐라, 애꿎은 킥보드 탓을 했다.



선우야! 어딨어?


소리쳤다. 의도했던 것보다도 훨씬 하이톤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엄마."


한번에, 그것도 생각보다 너무나 가까운 곳에서 아이의 대답이 들렸다. 내가 처음 아이를 놓친걸 알았던 그 자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풀숲 모퉁이였다.


쪼그리고 앉아 비온 뒤 갠 땅에 올라온 지렁이를 쳐다보던 아이는 태연히 나를 바라본다. 무슨 일인데 저러지 하는 눈빛이다. 나에게 약 3분이란 시간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 아이는 알리가 만무하다. 아이에겐 아무 일도 없었던 평화로운 시간, 하지만 나 혼자서 스릴러영화의 주인공이 되었던 그 짧지만 긴 지옥같았던 시간.


아니야, 엄마가 미안해.
가자.



찰나의 방심. 아이가 없어지는 건 한순간이라고, 절대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말라고 늘 잔소리하던 친정엄마에겐 비밀로 하고 싶은 부끄러움. 그리고 널 잃어버린 그 순간에도 잠시나마 체면을 놔버리지 못한 자격미달 초보 엄마.






3년이 지나 이 아이가 6살이 된 요즘도

프로 반성러의 크고 작은 반성들은 여전히 이어진다.


나는 언제쯤이면 스스로에게 떳떳한 엄마가 될까.

나름대로 한다고 하는데도 헛점 투성이.



역시 육아는 쉽지 않고,
엄마는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2015년 봄 둘째를 품은 만삭의 산책,

그리고 2018년,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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