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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Dec 15. 2018

도미노 게임을 받아들이는 자세

쓰러뜨리려고 세운 거니까.

어린이집 하원 후 집에서 놀던 둘째 아이가 유아용 도미노 게임 장난감을 꺼내 플레이를 제안한다.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간격으로, 

다른 패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그럴싸한 모양을 형성하며,

차례차례 배열해야 하는 고난도의 게임.


'유아용 장난감'이라 쓰고 '엄마 아빠의 노동'이라 읽는 바로 그 요물을 말이다.



아이와 함께, 아니 실은 거의 나 혼자서 수 분 째 심혈을 기울여 하나하나 패를 놓아가던 순간.


'촤라라락-'


아이가 실수로 잘못 건드려 열 맞춰 서 있던 도미노 패를 몽땅 쓰러뜨렸다. 완성까지는 아직 멀었지만 꽤나 오랜 시간 '초집중 소근육 노동'의 결과물이었거늘. 예기치 못한 상황에 괜히 미안해져서는 아이가 이내 삐죽삐죽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서른 중반에게 이까짓 것쯤은 잠시 후면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대수롭지 않은 일인데, 네 살 꼬마 인생에서는 제법 심난한 '사건'인 모양이다. 작은 소녀는 미안함과 허무함과 속상함이 뒤섞여 몹시 서럽다. 



훌쩍이는 아이의 손을 잡고 말해주었다. 




괜찮아. 어차피 쓰러뜨리려고 세운 건데 뭐.



더 멋지게 쓰러뜨리고 싶어서 놓는 중이었지만

결국 언젠간 쓰러지게 될 것이었잖아.

너무 슬퍼마렴.


작은 손으로 열심히 해보려던 너의 모습이 대견해서

엄마는 도미노 패를 세우다가도 

문득문득 널 보며 웃었단다.


과정 속의 네가 반짝거렸듯, 

방금 도미노의 그 움직임도 엄마 눈에는 예뻤으니

어쩌면 이건 실패가 아닐지도 몰라.


웃으며 다시 시작해보자.

또 다시 잘 놓아 쓰러뜨려 보자. 




어쩌면 나도 내 앞가림 하기 바쁜 미생의 어른이지만, 아이들에게만은 마치 완성된 인격의 소유자인 양 다분히 교훈적인 이야기가 자동적으로 튀어나온다. 과히 오글거리는 이야기도 절망에 빠진 아이를 위로하기에는 효과 만점이다. 


울음을 그친 아이는 이번엔 자기 혼자 해보겠다며 다시 그 작은 손으로 도미노 패를 세워 열을 맞추기 시작한다. 야무지게 집중해 튀어나온 입모양과 어설픈 손놀림도 귀여워 다시 내 눈에서는 하트 레이저가 발사된다. 




2018년 겨울, 

아이를 키우는 시간은 

나도 함께 커 가는 시간임을.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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