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짜리 딸이 오늘 내게 한 말
내가 아이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나의 소망이자 로망.
아들인 첫째에게는
-엄마가 백 살 될 때까지 계속 뽀뽀해줘야 해.
딸인 둘째에게는
-엄마가 더 늙어서 할머니가 되어도 계속 친하게 지내줘야 해.
아들에겐 뽀뽀를 갈구하고, 딸에게는 친구를 강요하는 독불장군 에미. 긍정의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대답할 때까지 괴롭힐 것을 너무나 잘 아는 아이들의 입에서는 늘 영혼없이 "응." "알았다고." 등의 마지못한 대답이 자동으로 나온다. 나의 부탁이 정확히 어떤 마음에서 나왔으며 그네들의 대답이 나에게 정확히 어떤 의미로 꽂히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오늘은 애들을 참 많이도 혼냈다.
유치원 다녀와서 블럭방까지 한 타임하고 지칠대로 지친 첫째가 빌빌대며 엉망으로 숙제하는 꼴이 못마땅해 폭풍 잔소리를 했다. 그 와중에 "엄마, 오빠 때문에 화났어? 오빠가 엄마 열받게 했어?"하고 계속해서 도발하는 둘째의 얄미운 확인사살에 나는 또 한번 목청을 높였다. 잘 준비를 마치고 침실로 들어간 후에도 갑자기 쉬가 마렵다, 물 달라, 베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등 취침시간을 유예할 갖가지 핑계를 대는 둘째에게 도끼눈을 뜨며 짜증을 냈다.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옹졸한 에미였다, 오늘 나는.
불을 꺼 컴컴한 방안 침대 위에서 둘째가 다시 침묵을 깼다. 첫째는 이미 곯아떨어진 후였다.
- 엄마, 자?
- (자는 척하며 대답하지 않았다)
- 엄마. 엄마.
- (잠자코 있었다)
- 엄마가 늙어도 내가 계속 친구해 줄게. 진짜야.
- ......
눈물이 핑 돌았다.
좀전까지 나는 못나기 짝이 없는 엄마였는데. 그런 엄마도 엄마라고, 이제 갓 생후 37개월의 둘째가 그런 나를 감싸안는다. 피곤한 하루를 빨리 마감하고 싶은 내 이기심 때문에 엄마와의 시간을 더 늘리고 싶었던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네 살짜리 딸이 나보다 낫다. 아이 쪽으로 몸을 돌려 꼭 껴안으며 고맙다고 대답했다.
이래서 엄마가
평생 너와 친구하고 싶은 거란다.
엄마와는 다르게 참 나이스한 내 딸.
2018년 8월
아이들에게 배우는 게 많은 밤,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