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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즈유어데이 May 13. 2023

맨땅에 가죽 공방 창업기4

첫 성공을 가장 조심하라고 했던가

#15. 첫 성공과 함께 4000만 원의 증발


애플워치 스트랩의 첫 성공을 거둔 후 자신만만해진 나는 바로 간사해졌다.

더 이상 핸드메이드로 제품을 만들기가 힘들고 귀찮아진 것이다.

그즈음 중국의 한 공장을 알게 되었고 영업부서의 메리라는 여자와 대화를 시작했다.

뭐든지 만들기만 하면 성공을 몇 배로 할 것 같은 자신감에 에어팟 케이스 1500개와 핸드폰 케이스 1500개를 제작하기로 했다.

가죽은 원래 애플워치 스트랩에 쓰던 이태리 가죽을 수입해서 중국 공장에 넘겨주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서 큰 문제가 발생했다.

분명 가지고 있던 가죽으로 샘플을 다 제작해서 컨펌까지 끝낸 상황이었는데

추가로 발주한 가죽들이 전부 종잇장 같은 상태로 도착한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가죽은 고시감이라고 하는 중요한 물성이 있다.

만졌을 때 얼마나 뻣뻣한지의 정도 or 구부러지는지의 정도를 말한다.

원래 가지고 있던 가죽은 나름 소프트하면서 늘어나는 정도도 나쁘지 않아 케이스 제작에 적합했다.

(플라스틱 케이스를 가죽으로 싸는 과정에서 가죽이 적당히 늘어나줘야 주름이 지거나 터지지 않고 예쁘게 나온다.)

그런데 새로 시킨 가죽은 완전 두꺼운 도화지 마냥 전혀 늘어나지 않고 하드한 것이었다.

컬러만 같고 다른 가죽이 와버린 것이다.

참고로 가죽은 거의 반품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생물이라는 이유로 매번 물성이 같을 수 없음을 인지하는 것은 소비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렇게 물성이 다른 건 사실상 이태리 테너리의 실력 부족 문제이지만 결국 내가 떠안게 된 것이 현실이었다.


잘못 온 가죽은 총 2500평인 100장 정도였고 (1장에 꽤 큰 다이닝 테이블 정도 크기)

돈으로 환산하면 1400만 원어치였다.


#16. 에어팟 케이스 불량률 80%


제목을 쓰는 것만으로도 지금도 스트레스가 쌓이는 일이었다.

중국 공장과 이미 계약을 했기 때문에 무를 수 없어 우선 가죽을 중국으로 보내야 했다.

보내는 운송비만 500만 원 가까이 들었던 것 같다.

(심지어 가죽이 이태리산이라 중국으로 보내는데 관세만 가죽값의 50%가 붙었다.)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중국 지역의 폐쇄가 풀리지 않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봄컬러에 맞춘 가죽 케이스였는데 결국 여름이 되서야 받아볼 수 있었다.

나는 이미 망했음을 직감하고 중국에 사정을 해서 핸드폰 케이스는 취소를 할 수 있었다.

도착한 에어팟 케이스의 상태는 처참했다.

친구들과 모여 몇 시간을 하나하나 검수한 결과 불량률이 80%가 넘는 것이었다.


"ㅎㅎ.. 망했다"


#17. 줄줄이 망해요


망한 건 에어팟 케이스뿐만이 아니었다.

에어팟 케이스 제작이 코로나 때문에 지연되는 동안 불안했던 나는 남은 돈으로 이것저것 개발을 했다.

파우치, 에코백, 카드지갑, 반지갑..

카드지갑과 반지갑은 한국 공장에서 진행했지만 공장의 퀄리티가 좋지 않아 이 또한 상당한 불량률을 기록했고 심지어 가죽 표면의 코팅이 너무 약해 로고를 찍으면 다 녹아버리는 문제까지 발생했다.

(원래는 핸드폰 케이스용이었던 잘못 온 가죽을 소진하려다가 공임비까지 함께 날린 것이다.)


결국 나는 번아웃이 되었다.

온갖 재고는 하늘 높이 쌓여있었다.

덕분에 발 디딜 틈이 없어진 공방에서는 더 이상 작업을 할 수 없었다.

'도저히 이런 환경에서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겠다'


#18. 23평짜리 1층 통유리창 공방으로


나는 망한 걸 살려보겠다고 어쩌면 더 망할 수 있는 길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땐 번아웃이 온 상태라 판단력도 흐려진 상태였고 주변에서도 환경을 바꾸면 더 시너지가 나서

다시 잘 일으켜볼 수도 있지 않겠냐고 했다.

바로 매물을 알아보러 다니다가 1층에 통유리로 된 코너 상가 23평짜리 낡은 옷집을 보고 계약을 해버렸다.

실행력은 내가 생각해도 정말 최고였지만 여전히 무모했다.

이 역시 너무 몰라서 무서움이 없었던 건지.

보증금과 권리금을 댈 돈이 없어 소상공인 정책 지원 자금 대출을 3000만 원이나 받아 충당했다.

빚도 젊었을 때 져야 부담 없이 빠른 성공을 할 수 있다는 어디서 들리는 그런 얘기에 혹했던 걸까.


"아니 근데 계약은 했는데 인테리어는 뭘로 해? 가구는?"

진짜 첩첩산중이다.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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