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우즈유어데이 May 14. 2023

맨땅에 가죽 공방 창업기5

내겐 너무 과분한 인생 수업료 -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어

#19. 세상에 인테리어 비용이 이렇게 비싸?


나는 어째서 가게를 구할 비용만 생각하고 인테리어는 생각하지 못했을까.

평생을 부모님 둥지 안에 살아서 세상 물정을 너무 몰랐다.

아무리 최저가 업체를 찾아봐도 족히 1000만 원 이상이었다.

그런데 원래 가게 상태가 11년 된 낡은 인테리어라 바꾸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국 가진 돈을 모두 탈탈 털어 인테리어를 진행했다.

워낙 싼 업체를 고용해서 원래 바닥 위에 타일을 얹어 문도 안쪽으로 안 열리고 실리콘 마감도 엉망진창이었다.

어찌저찌 인테리어를 한 후 안을 채울 가구들을 하나씩 사며..

나는 그렇게 한순간에 빚의 노예가 되었다.


#20. 너무 평화롭고 가난한 날들


공방 전경

그래도 정성 들여 인테리어를 해놓으니 정말 예뻤다.

드디어 내가 꿈에 그리던 평화로운 나만의 작업실이 생긴 기분이랄까.

그동안 공방이 너무 누추해서 직접 실물로 보고 싶다고 하셨던 고객님들을 말려왔지만

이제는 당당히 초대할 수 있는 예쁜 쇼룸도 한켠에 마련했다.


작업실? 식물샵?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나에겐 해결해야 할 너무 많은 문제들이 있었다.

인테리어와 이사까지 겹치면서 나는 원래 일에 더 집중할 수 없었고 돈도 없었고 체력도 없었고 시간만 계속해서 흐를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뭘 팔고 싶은 마음도 사라지고 있었다.

갑자기 화분 키우기에 빠져서 수제 토분을 구하러 다니고 화원을 다니면서 식집사로 살지를 않나.

(지나가시는 분들이 공방이 아니라 식물샵인 줄 아실 정도ㅋ.ㅋ)

파우치랑 에코백 발송만 하고 열심히 놀러 다닌 기억만 가득하다.

환경이 좋아지면 더 열심히 일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공간이 부담이 되어 나를 짓눌렀다.

매월 나가는 월세와 비용들이 압도적으로 커졌고 빚 갚을 생각을 하면 오히려 넓은 공간이 우울해 보이기까지 했다.

어쩌면 그래서 더 회피하기 위해 공방을 성실하게 나가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핑계지만. 이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갈수록 더 아무것도 할 힘이 없는 무능력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어찌나 평화로운지. 유리문 2개를 열어놓으면 살랑살랑 맞바람이 치면서 통창으로 햇빛이 예쁘게 들어오는 데다가 넓고 깨끗해서 쾌적했다.

동네도 늘 평화롭고 바로 앞에 밤리단길이라는 맛집거리가 있어 매일 맛있는 음식과 커피를 먹으며 지냈다.

공허한 마음을 화분 키우기 같은 취미나 맛있는 음식으로 채우려고 한 걸까.

그렇게 난 평화로운 나날들 속에 가난해져가고 있었다.


#21. 초심으로 돌아가자


그렇게 2022년 가을이 되었다.

애플워치 스트랩은 가을이 가장 성수기이다.

이제는 매달 나가는 비용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돈을 벌어야만 했다.

나는 책을 읽으며 재정비 시간을 가진 후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마인드로 열심히 일하기 시작했다.

에르메스나 샤넬에서 사용하는 가죽들을 사 와서 새로운 프리미엄 라인들을 개발했고

컬러 다양화, 사이즈 세분화, 남성용 추가, 갤럭시 모델 추가, 버클 디자인 추가, 이니셜 각인 서비스 등 리뉴얼을 진행했다.

또 전문가에게 제품 사진 촬영을 배워 모든 스트랩의 상세 사진과 모델컷을 새로 찍어 하우즈유어데이만의 공식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외주가 아닌 핸드메이드로 다시 하나하나 마음을 담아 제작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작년만큼은 아니지만 다시 꽤 매출이 올랐다.

공방에서 2시간씩 쪽잠을 자면서 몇 백개를 혼자 제작했다.

제작이 너무 바빠 쇼룸은 운영하지 못한 채로 유리창의 모든 커튼을 쳐놓고 작업만 했다.



 #22. 세상은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6년 연애의 끝, 그리고 용인으로 이사 결정)


그러던 11월, 6년 간 만났던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부터 창업을 해온 모든 순간에 함께 해주었던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가 없다면 지금 내가 하는 사업도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많이 의지했던 버팀목이었다.

재정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주었던 남자친구가 나를 떠났다.


거기에 더해 집안 사정으로 인해 갑자기 내년 4월에 용인으로 이사를 가야했다.

내 공방은 일산이었고 용인까지 차를 타고도 2시간 거리였기 때문에 사실상 공방도 이사를 해야했다.

동생이 아파서 분당 병원을 다녀야 한다고 엄마와 동생은 먼저 용인 할머니집으로 갔고 일산에는 나와 아빠 둘만 남겨졌다.


정말 혼자가 된 기분이었다. 큰 공방에서도 늘 혼자였고 집에 가도 늘 혼자였다.

주말에도 혼자였고 밥을 먹을 때도 커피를 마실 때도 늘 혼자였다.

말이 많은 편인데도 말할 사람이 없어 하루종일 드라마만 켜놓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내 사업은 내가 힘을 내지 않으면 바로 멈춰버렸다.

일할 사람이 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갑자기 헬스장을 끊어 미친 듯이 운동을 하고 부산, 속초 등 여행을 다니며 숨통을 트이려고 노력했다.


#23. 빨리 실패한 건 좋은 거야. 잘됐어!


나는 매주 한 번씩 신설동의 장인 선생님 공방에 가서 가방 제작을 배운다.

선생님께서는 현재 가방 제작 경력만 60년이 넘으셨다.

한번 내 공방에 오셔서 해주셨던 말씀이 있다.


"네 나이에 빨리 실패해 본 건 정말 좋은 거야. 어차피 사업을 시작하면 언젠간 반드시 한 번은 이런 실패를 겪게 되는데, 그게 더 늦게 왔다면 아주 크게 날렸을 수도 있어. 나도 그랬거든. 이번 일을 수업 삼아 뭐가 잘못됐는지를 깨닫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돼. 잘됐어!"

"맞아요 선생님. 처음부터 완벽하게 잘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참 사람 한 명 성장하는데 돈이 많이 드네요 ㅎㅎ.."


결과적으로 첫 성공 이후 지금까지 돈을 번 것보다 쓴 것 + 날린 것이 더 많은지도 모르겠다.

대신 경험치가 상당히 상승했고 많은 것을 배웠으며, 나의 장단점을 확실히 알게 되었던 시간이었다.

그냥 젊은 날 비싼 인생 수업료 한번 냈다고 생각하자.

지금이 아니었다면 후에 더 크게 잃을 수도 있으니 어쩌면 다행일 수도 있다.


#24. 내 나이 서른, to be continued.


공방 정리중 ㅠ.ㅠ

이제 서른 살이 되었다. 올해 4월에 예정대로 용인으로 이사도 했다.

빚은 가게를 뺄 때 다행히 권리금을 꽤 받을 수 있어서 갚았고

가족의 배려로 큰 평수의 집을 구해 집 안으로 공방을 옮겼다.

매달 나가는 비용을 상당히 줄이게 되어 속이 시원했다.

물론 일산 공방을 정리할 땐 처음으로 내가 애정을 담아 만들었던 공간이라 많이 섭섭했지만.


현재는 경기가 침체됐다는 뉴스 이후로 매출이 계속 감소하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관련 다른 업체들도 힘들어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나아가려 한다.

가끔은 공방을 하는 것 자체를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여전히 칼질하고 본드 칠하며 내가 머릿속에 그리던 가방을 구현할 때 느껴지는 짜릿함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언젠가는 워치 스트랩을 접을 수도 있고 , 다른 걸 팔 수도 있겠지만

내가 어떤 사업을 하던 상관없이 나는 내 젊은 날 나의 모든 재능과 열정을 쏟아부으며 버텨보려고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렇게 할 때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기 때문에:)


#25. 끝


글의 마지막이 "저 결국 성공했어요!!"가 아닌 것이 새롭지 않은가.

보통 이런 창업기 글들은 다 성공한 사람만 쓰니까 내가 이런 글을 써도 될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현재진행형이고 아직 3년 차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의 성공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해서 딱히 슬프진 않다.

머지않아 진짜 성공기를 쓰는 그날까지 화이팅!!!


매거진의 이전글 맨땅에 가죽 공방 창업기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