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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리 Nov 09. 2018

할머니의 닭찜

사물일기 03

어렸을 때부터 특이한 요리라고 생각했다. 북에서 내려온 할머니의 시어머니가 가르쳐주었다는 닭찜은 솥에 쪄서 데친 부추와 함께 간장 양념에 찍어먹는 이북식 찜닭과는 사뭇 다르고, 토막 낸 닭고기와 갖은 채소, 당면을 간장으로 달게 졸여 먹는 안동찜닭이나 야채 육수에 감자와 다진 마늘등을 넣어 전골처럼 끓여먹는 닭한마리와도 거리가 멀다. 닭을 통으로 삶는다는 것에 있어서는 백숙과 비슷하지만, 백숙은 색깔이 들어가는 양념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다르다. 


그러다가 고문헌에 실린 닭고기 음식에 대한 글을 보던 중에 할머니의 닭찜과 비슷한 조리법을 발견했다. 1880년경, 즉 조선시대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 미상의  『음식방문』 이라는 요리책인데, 여기에 실린 13가지의 찜 요리 중에서 특히 ‘칠향계’라는 요리가 그러하다. 칠향계는 묵은 진계의 내장을 빼고 배에 도라지, 생강, 파, 천초, 간장, 기름, 식초 등을 넣어 항아리에 넣어 중탕으로 익힌 닭찜이다.1 색깔이 들어가는 양념을 닭의 뱃속에 넣어 익혔다는 점이 매우 비슷하지만, 간장으로 맛을 냈다는 점이 다르다. 할머니의 닭찜은 매콤하기 때문이다.


음식방문 ⓒ  국립한글박물관


닭찜을 만들 땐 커다란 냄비가 필요하고 은근히 손이 많이 가는 터라 자주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다. 고추장의 매콤한 향과 닭기름의 달콤한 향이 부엌 가득 퍼지는 날은 누군가 오래간만에 집에 돌아왔거나, 누군가의 생일이었다. 어린 시절 닭찜을 처음 먹었을 때, 이런 요리가 우리 집 식탁 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랐었다. 겉모습은 뜨겁게 삶아낸 통닭인데, 닭의 뱃속에는 양파를 빨갛게 재운 양념이 가득해서 살코기를 찢어 양념에 찍어 입에 넣으면 부드러운 닭의 촉감과 매콤한 고추장의 맛이 어우러진다. 


닭찜을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닭은 너무 큰 것 보다는 약간 작은 것이 맛있다. 닭을 씻을 때 뱃속에 남아있는 내장 등을 전부 깨끗이 긁어낸다. 닭의 꼬리는 잘라낸다. 닭의 물기를 빼는 동안, 양파를 볶음밥 하듯이 듬뿍 썰고 파, 청량고추, 고추장, 고춧가루, 후춧가루, 정종과 함께 버무린다. 이 때 설탕을 약간 넣고, 마늘 다진 것을 아낌없이 넣어야 한다. 닭의 물기가 빠지면 버무려둔 양념을 닭의 뱃속에 꽉 채워 넣는다. 양념이 빠지지 않도록 닭의 다리를 잘 꼬아서 닭이 수면 위로 살짝 올라올 정도로 물을 붓고 뚜껑을 덮은 후 센 불로 끓인다. 물이 막 끓으면 중불보다 약간 작게 불을 줄여 약 30분정도 익힌다. 그동안 닭의 배 부분이 바닥에 눌어붙지 않도록 잘 뒤적여줘야 한다. 물이 자작하게 졸으면 불을 끈다. 커다란 접시에 통째로 얹고, 뱃속의 양념을 적당히 퍼내어 따로 담아내면 완성이다. 


닭찜은 깔끔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다. 닭찜을 먹을 때 식탁 위는 엉망이 된다. 한참 먹다 보면 할머니는 비닐장갑을 끼고 얼마 남지 않은 살코기를 손으로 발라주신다. 우리는 남은 양념에 밥도 비벼먹는다. 

사실 할머니는 닭고기를 먹지 않는다. 치킨조차 입에 대지 않는다. 맛도 보지 않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맛있게 요리하는지 신기할 정도다. 맛있는 음식과 기쁜 감정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닭찜을 생각하면 기뻐지고, 기쁠 때 닭찜을 찾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 음식을 할머니의 시어머니가 탄생시켰는지, 할머니의 시어머니의 시어머니가 그랬는지, 진짜 이북에서 즐겨 먹는 음식인지 알 수 없다. 그저 우리 가족의 음식으로 충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


닭찜 ⓒ 최윤지


1) 차경희, 유애령. 『음식방문』의 조리학적 고찰. 한국식품조리과학회지.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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