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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모 아카데미쿠스 Feb 03. 2023

화장품 회사로 살아남기 - 머리말

화장품 회사 3만개 시대, 그 정글 속 서바이벌 방법 찾기

머리말


공급이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고 경제학자들조차 믿던 시대가 있었다. 이를 고전학파 경제학자의 이름을 따 세이의 법칙(Say's law)이라고 하는데, 케인즈(Keynes)가 그렇게 부르기 전까지는 시장의 법칙(law of markets)이라고 통용되었다. 만들면 팔린다는 것이 시장의 법칙이라니! 물론 개별시장이 아닌 경제 전반을 설명하는 개념이긴 했지만 지금 우리가 느끼는 치열함과는 거리가 있다. 오늘날의 화장품 시장이 그렇게 평화로우면 얼마나 좋을까.


1929년 미국의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 이후 세이의 법칙은 깨졌다. 수요가 공급을 따라 주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재앙이 발생했던 것이다. 대규모의 폐업과 실업이 이어졌다. 이후 케인즈는 총 공급보다 총 수요가 경제 전반의 핵심변수라고 주장했다. 맞는 말 같다. 사줄 사람이 있어야 만드는 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출처:Playground AI로 저자 편집



대한민국에 화장품 기업 3만개 시대가 도래했다. 화장품 기업은 1990년대에 100여개에 불과했는데, 2012년에 화장품 제조업체와 책임판매업체가 각각 477개, 823개로 증가했다. 이후 10년이 지나 화장품 제조업체, 책임판매업체의 수는 2022년 12월 기준으로 각각 4,548개, 28,015개로 집계되고 있다.무려 10배와 35배로 그 숫자가 늘어났다. 지난 10년 동안 대한민국 화장품 업계가 얼마나 뜨겁게 달려왔을지 짐작할 수 있다. 마치 용광로와도 같은 열기였던 것이다.

*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통합정보시스템 (http://ezdrug.mfds.go.kr)


국내 소비자들의 화장품에 대한 관심도 이전보다 커졌고, 이에 부응하여 수많은 업체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로 기존에 없던 유형의 제품들도 내놓고 하면서 총수요의 크기가 커졌다. 그 덕에 2012년에 7조원이었던 생산실적이 매년 두자릿수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며 2021년에는 17조원으로 늘었다. 국내 시장에 머물지 않고 큰폭의 수출 증가를 보였는데, 2021년에 9.6조원의 수출액을 기록했고 우리나라 무역수지 흑자의 26.7%를 차지하는 효자품목이 되었다.


K-Beauty의 빠른 성장은 한국인 특유의 창의력과 다이나믹함이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K-Pop, K-Drama의 인기, 중국시장의 폭발력이 더해지고, 패션업계의 SPA 브랜드와 맞먹는 스피드가 받쳐주면서 이러한 성장이 가능하게 됐다. 대한민국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화장품 산업을 눈여겨보게 되었고, 실제로 많은 신규사업자들이 탄생한 것이다. 여러해 전에 집집마다 초고속인터넷망 깔리던 시절 만큼의 속도다.


하지만 이전에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빠른 성장의 후유증도 크다. 채 검증이 끝나지 않은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한국 화장품의 평판을 깎아먹는 일도 생기고, 시장에 제품이 넘쳐나다 보니 고객들의 피로감도 커지고 있다. 경쟁의 치열함을 핑계로 남의 아이디어 베끼는 것에도 거리낌 없는 사람들이 많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화장품 잘 된다니 만들면 어디로든 팔리겠지 하고 막연하게 사업 시작한 분들이 많다는 거다. 믿었던 중국 시장마저 불확실성을 보이면서 소규모 신생 기업들이 설 자리가 없다. 화장품 회사가 3만개라지만, 상위 20개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80%에 육박하고, 나머지 기업들이 20% 시장을 쪼개먹고 있는 상황이다. 생산실적 10억 미만의 기업이 90%를 넘는다.


출처:Playground AI로 저자 편집


화장품 산업은 탄탄한 OEM/ODM의 뒷받침으로 인해 진입장벽이 낮다 보니 이미 시장이 포화상태로 여겨지고 있음에도 새롭게 진입하는 소규모 사업자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들 중 다수는 기존에 화장품 사업을 오랜 경험 없이 최근 한국 사회에 불고있는 N잡러, 온라인셀러 열풍 등의 영향을 받아 길지 않은 준비기간을 거쳐 창업했고, 사업 이후 화장품 사업가로서 알아야 할 기초지식과 정보에 목말라하고 있다.


'화장품 회사로 살아남기'는 2012년이 지나 창업한 약 95%에 달하는 소규모 화장품 회사(화장품책임판매업체)를 위한 글이다. 짧은 경험과 만족스럽지 못한 성과로 고민하는 분들과 머리를 맞대고자 하는 마음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2011년 말에 화장품 전문 마케팅&유통 에이젼시를 설립한 이후로 많은 화장품 사업가들을 만났다. 큰 회사에 다닐 때는 미처 몰랐다. 작은 규모의 화장품 회사를 운영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는지. 불확실한 하루하루 속에 버텨내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성공하는 법을 말할 실력은 되지 않는다. 이미 탄탄하게 브랜드를 다지고 기업 규모를 키워온 분들에겐 박수를 보낸다. 그분들에겐 이 책에서 주로 얘기하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조언이 필요할 것이다. 나보다 더 업계 경험 많은 분들도 이 책 보실 필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가장 큰 화장품 회사 다니며 경험한 브랜딩 및 마케팅 노하우, 직접 화장품 마케팅 에이젼시, 홈쇼핑 벤더, 브랜드사를 운영하며 지켜본 것들을 참고로 화장품 회사로서 망하지 않고 살아남는 방법에 대해 정리해보고 싶었다. 주부 경력 오래 된 분에게 김치찌개 레시피가 필요하지 않겠지만, 이제 막 자취를 시작하는 누군가는 망한 김치찌개를 만들지 않기 위해 레시피를 필요로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1850년대 골드러시 시대의 실패한 광부들처럼 되지는 말았으면 한다. 근면함 만으로 성공하기도 어려운 시대다. 전략 없이 사업 하다간 OEM 회사, 용기 회사, 각종 대행사 좋은 일만 시켜주고 망하기 십상이다. 많은 신생기업들이 이런 실패를 한다. 초기에 매출이 발생했어도 브랜드를 다지지 못해 소멸하거나, 브랜드 정의는 잘 했는데 매출로 가는 실행력이 약해 소멸한다. 결국 성과를 만들고 살아남아야 착한 기업도 될 수 있고, 위대한 기업도 될 수 있다. 


출처:Playground AI로 저자 편집


오랫동안 대기업에 있다 작은 기업을 시작했을 때 난 농사 짓다 전쟁터 나간 느낌이었다. 세상이 이런 것이구나 싶고, 더 늦게 시작했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도 했다. 스스로의 모자람에 머리통을 치기도 했다. 오늘도 치열하게 생존을 고민하고, 브랜드의 미래를 그리고 있을 화장품 업계 임직원분들에게 동지로서 격려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도 많은 기업들이 새롭게 진입하고 또 실패를 겪고 사라져갈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일하며 발산한 에너지는 귀한 영양분으로 남아 우리나라 화장품 산업에 힘을 보태리라 본다. 한번 달아오른 용광로는 쉽게 꺼지지 않는 법이다. 다만 내 기업이 거름이 될 것인가, 나무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은 거름 말고 나무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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