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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모 아카데미쿠스 Feb 06. 2023

음식과 음악 - 냉면

강병철과 삼태기

남북 화해무드가 빠르게 조성되고 대화가 이어지던 몇 년 전 '평양냉면'이 주목받았다. 유명한 평양냉면 맛집에 긴 줄이 이어지곤 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냉면 노래들을 떠올렸다.


1988.11.22일 '강병철과 삼태기'의 리더 강병철이 교통사고로 숨졌다. 위트 있으면서도 한국적인 소재를 많이 다루었던 분이다. 이때 젊은 나이로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의미 있는 작품들을 더 많이 만들어냈을 것이다. 아쉽다.




흑백 TV 화면 속에서 빨래판 등 우스꽝스러운 소품들을 들고 재밌는 몸짓으로 공연하던 강병철과 삼태기의 모습이 생각난다.


이들이 불렀던 '냉면'이라는 노래가 재미있어 자주 들었기 때문에 우리 집 아이들도 익숙하게 따라 부르곤 했다. 낚시터의 즐거움, 삼태기 메들리, 고려청자 등의 곡들이 이들의 대표곡이다. 20분이 넘는 긴 곡인 삼태기 메들리도 많이 듣다 보면 순서를 알고 흥얼거리게 된다.


이 '냉면' 곡과 관련된 우리 가족의 추억도 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였는데, 막 평냉에 입문하던 내가 가족들과 같이 맛을 보고 싶어 동네 전문점을 찾았다. 가는 길에 차 안에서 '냉면'을 틀고 같이 '내애애앵~면' 하고 따라 부르며 들떠서 식당에 갔는데, 막상 그 맛을 처음 보곤 다들 할 말이 없어져 시무룩해졌던 게 생각이 난다. 대개 몇 번은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된다. 지금은 온 식구가 평양냉면을 잘 먹는다.


'냉면'은 미국 학생의 노래 중 하나인 '비브 라 콤파니 (Vive la Companie)'를 작곡가 박태준이 편곡한 후 가사를 붙인 것으로 교과서에 수록되었었다. '한 촌사람 하루는 성내 와서'로 시작하는, 시골에 사는 사람이 성내의 번화가를 구경하다가 냉면을 맛있게 먹었다는 내용을 표현한 것이다.



작곡가 박태준(1900-1986)은 대구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음대 대학 및 대학원을 졸업한 분이다. 귀국하여 한국 음악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분의 대표작품으로 '오빠생각'이 있다.


1984년 발매한 '삼태기 메들리' 음반에는 강병철과 삼태기가 편곡한 경쾌한 곡이 수록돼 있다.



이 앨범의 부제는 '세계 최초로 104곡 수록음반'이다.


A면 전체를 97곡의 메들리로 채운 앨범 


1982년 11월 발표한 이 메들리 앨범은 당시 한국 가요계에서 매우 혁신적인 시도였다. 무려 97곡을 21분 22초에 담은 <삼태기 메들리> 한 곡으로 앨범 A면을 채웠다.


선곡한 97곡 속에는 국적과 장르를 초월한 다양한 레퍼토리가 들어있다. 오리지널 곡 <행운을 드립니다>를 시작으로 <강원도 아리랑> 같은 민요들, <학도가> 같은 구전 창가들을 선곡했다. 기존 히트곡 중에서는 <단장의 미아리고개>를 시작으로 김추자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키보이스의 <해변으로 가요>, 해바라기의 <여름>, 심지어 거의 동시대의 히트곡인 조용필의 <촛불>까지 해방 후 가요사를 아우르는 히트곡을 선곡. 또 해외 민요와 동요, <Y.M.C.A.> 등 당시 한국에서 인기 있던 팝송과 캐럴까지 담았다.



6개월간 2천만 원으로 만든 메들리 음반 


각 곡의 장르와 스타일이 매우 달랐지만 강병철과 삼태기는 이 곡들을 일정한 템포의 트로트 고고 리듬으로 ‘평준화’했고, 곡 전체의 흐름에 맞게 곡의 길이도 다르게 활용했다. 당시 신문 기사를 보면 “메들리 음반을 제작하기 위해 총 6개월간 2천만 원의 제작비를 들였다.”라는 설명이 나온다. 그 돈으로 기존 국내 가요 저작권료를 해결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방송에 출연할 때는 메들리를 약 5분 정도로 줄여 각 무대마다 일부 곡을 바꿔가며 융통성 있게 불렀다.


B면에는 총 7곡(건전가요 제외)의 개별 곡이 실렸다. 그중 <고려청자>는 솔로 1집 수록곡을 새로 녹음한 버전이다. <낚시터의 즐거움>은 이탈리아의 남성 보컬 그룹 마리오 마리니의 <Ciccio O Piscatore>를 번안한 곡으로 강병철이 밀물썰물 시절부터 자주 커버했던 곡이다.


초반의 인기로 2년 뒤 발매된 재반 


이 음반의 초반은 1982년 11월 서라벌 레코드에서 발매했다. <삼태기 메들리>의 큰 인기에 힘입어 1984년 12월 재반을 냈다.


앨범 커버의 경우, 멤버들의 사진 여러 장을 콜라주 형식으로 붙인 커버 자체는 그대로지만 ‘삼태기 메들리’라는 타이틀을 쓴 원의 색깔이 초반은 녹색, 재반은 빨간색이다. 뒷면 커버에는 97곡의 메들리를 비롯한 모든 수록곡의 타이틀과 가사를 적었고 ‘세계 최초로 104곡 수록 음반’이라는 내용을 명기했다.


강병철과 삼태기의 노래를 듣고 있다 보면 시원한 냉면 한 그릇 생각이 간절해진다.


오랫동안 강병철과 삼태기의 '냉면'이 대표적인 냉면 노래였는데, 최근 새로운 곡들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점이라면 최근 노래들은 '평양냉면'을 콕 집어 예찬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평양냉면을 좋아하지만, 음식 맛에 대한 평가는 개인의 기호에 달린 것이라 생각한다.


각 곡들의 재미를 느껴볼 수 있도록 가사를 아래에 붙인다. 음악 어플을 통해 찾아서 들어봐도 좋을 것이다.


유세윤-평양냉면 (with 양꼬치엔찡따오)


Yeah this is 콜라보레이션 with 양꼬치엔찡따오

This is from the North Korea


처음 만났을 때 그 맛은  我说(워셔) 니 맛도 내 맛도 난 참 아니야

끊어질 때까지 쭉 땡겨  쏙 시원하게 먹는 평양냉면


처음엔 쉽진 않았지  너를 시작한단 것이

평양이란 이름 때문에   간첩이란 오해 받을 까봐 두려워


no pain no gain  no 겨자 no 식초

it's so cold noodle  it's so delicious noodle

mother father every like this  sister brother every like this

you know what I’m saying?  I told you this is very delicious


땀 찔찔날 때 나 생각나  워딘가 모르게 손이 가 담백해

식초니 겨자니 필요 없어  你吃饭了吗(니취팔로마) 먹어 평양냉면


对不起(뜨이부치) 배신자 뒷 끝야 잘들야


함흥아 정말 미안해  다른 누군가가 생겼어

하지만 널 잊지 않을게  함경남도 들릴 때는 너를 찾을게


I say 평 you say 양  평 양 평 양

I say 냉 you say 면  냉 면 냉 면


mother father every like this  sister brother every like this

you know what I’m saying?  I told you this is very delicious


땀 찔찔날 때 나 생각나  워딘가 모르게 손이 가 담백해

식초니 겨자니 필요없어  你吃饭了吗(니취팔로마) 먹어 평양냉면


처음 만났을 때 그 맛은  我说(워셔) 니 맛도 내 맛도 난 참 아니야

끊어질 때까지 쭉 땡겨  쏙 시원하게 먹는 평양냉면



미식가요 - 평양냉면



(오늘은 뭐 먹지?)

뭘 먹으러 갈까  이렇게 더운 날  시원하게 평양냉면 (평양냉면)

거친 듯 보여도  참 깔끔 청순해  너에게 빠져 들어가 (슴슴슴)

슴슴한 국물의 맛  구수한 메밀면발


니맛도 내맛도 아닌듯해도   처음에만 그런 거야

두번세번네번 찾게 될 거야  내 사랑 평양냉면

(우리 평양냉면 먹으러갈까?/ 좋아!/ 어디로 갈까?)


꿩고기 고춧가루  파송송 거냉물냉  아무래도 나는 좋아(평양 냉면)

화요일엔 을지로  수요일엔 충무로  일산판교 언제갈까(당장 고고싱)

어디를 선택하든  후회는 없을 거야


니맛도 내맛도 아닌듯해도   처음에만 그런 거야

두번세번네번 찾게 될 거야  내 사랑 평양냉면


처음부터 나를 사로잡지 못해도  니주머니가 자꾸 가벼워져도

슴슴함이 입에서 맴돈다면  이제 시작인거야 너는 존박 인거야


아침점심저녁 삼시세끼를  평양냉면 먹고 싶어

유후유후유후 양 많이 줘요  내 사랑 평양냉면 내 사랑 평양냉면



큐비스토(Cubisto) - 평양냉면


사계절의 별미 그 이름 평양냉면  동치미 국물와 고기육수가 어울려

깊고도 오묘한, 심심하고도 꽉찬  그 맛을 못잊어 원정을 다닌다


평양냉면에 겨자 많이 넣지 말아요  섬세한 국물이 모두 망가지잖아

평양냉면에 식초 많이 넣지 말아요  소심한 내맘도 모두 망가지잖아


냉면을 좋아하는 그녀, 운명의 여인이었군요

어쩐지 첨부터 맘이 끌려 머릿속에 종소리가 들려

우린 전설의 냉면탐험대 평양냉면을 정복하려해

함께라면 만두 시켜도 돼 남김없이 먹을 수 있는데


평양냉면에 겨자 많이 넣지 말아요  섬세한 국물이 모두 망가지잖아

평양냉면에 식초 많이 넣지 말아요  소심한 내맘도 모두 망가지잖아


너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먹던 냉면은 아무 맛이 나질 않고

갑자기 그릇에 니얼굴이 비쳐  계란을 먹다 그만 난 울고 말았어


평양냉면에 겨자 많이 넣지 말아요  섬세한 국물이 모두 망가지잖아

평양냉면에 식초 많이 넣지 말아요  소심한 내맘도 모두 망가지잖아

오 그대여 제발 이 손 놓지 말아요  소심한 내맘이 모두 망가지잖아

오 그대여 제발 이 손 놓지 말아요  소심한 내맘이 모두 망가지잖아



위 사진들은 몇 년 전 분당의 평양냉면 전문점에 부모님 모시고 가서 먹었던 냉면이다. 평양냉면 맛에 익숙한 분들이 아니어서 '맛있다!' 소리를 하진 않으셨지만, 가족이 함께 했던 그 따뜻했던 분위기가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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