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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야 Jan 21. 2020

거실에 테이블이  쓰러져있었다



 꽤 오래 삐걱거리던 테이블이 쓰러졌다. 위태롭긴 했지만 잘 세워두면 큰 문제가 없어서 방치하고 있었다. 결국 테이블은 무너진 채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물건들이 거실 바닥에 엉망으로 널브러져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쓰러져있는 테이블을 보며 마음이 놓였다. 소명을 다한, 끝을 본 개운함이 있었다.


 쏟아진 물건을 정리하며 생각했다. 아주 작지만 내 마음 어딘가에 있던 불안함도 함께 정리되었다고. 쓰러질 때까지 불안해하면서도 그대로 두는 것은 해결하는 것에 대한 귀찮음. 혹은 두려움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어떤 인연이든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붙잡고 있는 습성에서 비롯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끝을 보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도저히 안 되겠다는 확신을 얻어야만 미련이 가시기 때문이라면 너무 계산적이고 방어적인 걸까.


 지난 연애에서 나는 유독 맘고생을 많이 했다. 긴 시간 동안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를 쉽게 잘라내지 못했다. 나의 마음을 어쩌지도 못하고 기우뚱거리는 테이블처럼 가만히 세워놓고 그 위에서 밥도 먹고, 일도 하고, 책도 읽으며 흔들거리는 다리 한쪽을 애써 외면했던 것이다.


 알아서 쓰러져주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 단 한 번의 강한 타격에 쓰러질 거라면 그 타격 전까지 버텨보자는 방관자적인 마음. 결국 나는 사랑하는 마음마저도 타격에 잘려 나갈 거라 믿고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결국 강한 타격에 우리는 헤어질 수 있었다.     


 나는 그를 자주 원망했었지만 생각해보니 그럴 일도 아니라는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치사한 건 나였을 지도 모른다. 결국 자르지 못한 건 나였으니까. 나의 마음도, 그를 향한 사랑도, 우리의 관계도 삐걱대는 걸 알면서도 그대로 방치했었다.     


 오랜만에 그때 당시 썼던 글을 뒤적이다가 짧은 글을 발견했다.

연락이 두절되고는 마음을 오리고 오렸습니다.
그대는 항상 거침없이 걸어 나가고  거침없이 돌아왔습니다.
익숙해지려야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오리고 오립니다.
사각사각  잘려 나가서
남아있는 자리가 없도록
그대의 빈자리를 밤새 오리고  오립니다.  


 어쩌면 나는 너무 많이 오리고 오리느라 우리의 관계를 제대로 잘라내지 못했던 건 아닐까 싶다. 허구한 날 쓸데없이 내 마음을 오리고, 그의 빈자리를 오리고 있었으니 마음이 그렇게 아렸구나. 계속 내 안을 후벼 파고 베어내고 있었구나. 이제는 제대로 잘 보고, 잘라내야 할 곳을 잘라내야겠다. 헛손질에 괜히 애꿎은 곳에 상처 내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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