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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워서갈비 Sep 30. 2021

어둠 속에서 헤엄치는 찬란한 자유로움

아름다운 문장들 속에서 유영하기




토마시 예드로프스키의 첫 번째 장편소설인 <어둠 속에서 헤엄치기>. 나는 아무런 배경 지식 없이 단지 제목과 표지만 보고 이 책을 골랐다. 윤슬이 반짝거리는 물가, 상의를 벗은 모습의 한 소년. 그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했다. 나는 리뷰를 읽지 않고 어떤 책을 집어 드는 일이 별로 없는 편인데, 이상하게 이 소설의 제목과 표지의 단순한 매력에 끌렸다.


소설이 완성되기까지 칠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소설을 읽고 나면 그 기간이 걸릴만하다며 고개를 끄덕이게 될지도 모른다. 문장 하나하나가 정말이지 빛을 꿰어 놓은 것처럼 찬란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상황 묘사뿐 아니라 감정까지 놀랄 정도로 섬세하게, 단어를 고르고 고르고 또 골라서 아름답게 표현한다. 그 점 하나만으로도 꼭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소설이다.



소설은 미국으로 망명한 '나'인 루드비크의 현재를 잠깐 비추었다가, 유년 시절에 대한 회상으로 잠시 돌아간다. 그 후 '너'로 칭해지는 야누시를 만나고 나서의 이야기가 죽 이어진다. 유년 시절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마치 성장소설 같기도 했다. 적과 적이 아닌 것으로 분명히 나누어진 세상을 알게 된 아이. "머릿속에는 노는 것밖에 없이 신이 난 채 온전히 자유로이 달려 나가는 모습(21p)"에서 "마치 내가 이전에는 당연시했던 모든 것들이 거짓으로 판명된 기분(107p)"을 느낄 정도로 성장한 아이. 하지만 루드비크는 그것을 성장이라 말하기보다는 '유년기의 종식'이라 부른다.







소설 전반부의 주를 이루는 것은 루드비크가 유년 시절을 거쳐 야누시를 만나기 전까지의 미묘한 감정선의 표현이다. 유년 시절 루드비크는 자신의 정체성을 새로이 지각하고 "앞으로의 인생에 관한 망상에 빠져들어 너무도 어찔해진 나머지 머리가 빙빙 돌"고 만다. "내재한 공포와 욕망이 쌓아 올린 수치심이 묵직하고도 생생하게 실체화(24p)" 된 것이다. 그 이후로도 루드비크는 내내 자신의 감정과 욕망에 당황하다, 이윽고 인정하기를 반복한다.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의 감정들을 작가가 어찌나 섬세하고 정확하게 표현해내는지. 육체와, 그것을 휘감아 들어가는 감정을 묘사하는 문체 역시 경쾌하고 깔끔하다. 딱히 몇 문장을 뽑을 수가 없을 정도로 문장마다 모두 그러하다.



<어둠 속에서 헤엄치기>



그러자 마치 직감적으로 제게 내려앉는 시선을 불현듯 의식한 동물처럼 너는 내게 고개를 돌렸고, 이에 내가 미처 눈길을 피할 겨를도 없이 우리의 시선이 만나며 무한하고도 가없는 일순간 공중에서 얽혀 들었다. 확확한 열기가 배속에서 뺨으로 타고 올라왔고 생각은 실 뭉텅이처럼 엉켜 들었다(41p).

네가 나를 피할 수 없도록 내가 너를 피했다. 나는 네 영향력이 미치는 세력권 안에 있고 싶지 않았다(57p).

우리가 호숫가에서 며칠이나 머물렀는지 모르겠다. 하루하루가 하나의 온전한 세계와 같았고, 매 순간이 새롭고 다시 오지 않을 경험이었으니까. 어떤 면에서 호숫가에서의 나날들은 내 생애의 첫 나날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마치 내가 그 호수와 호숫물과 네게서 태어난 듯이. 마치 내가 허물을 한 꺼풀 벗어던지고 이전의 삶일랑 등져버린 듯이(98p).

우리는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그런 뒤 둘이서 한마디도 없이 옷을 벗고 물속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우리는 겁도 없이 자유롭게, 찬란한 어둠에 파묻힌 채 헤엄쳤다(100p).



소설 속에서 헤엄치는 장면이 유독 자주 등장하는데, 그 장면마다 자유로움이 풍겨 나온다. 물속에서 헤엄치는 사람들은 사회의 어떤 도덕이나 규율에도 억압되지 않은 채 마음껏 움직인다. 그들을 수상하게 쳐다보는 모든 시선들로부터 벗어나 있다. 어둠마저 그 위로 내려앉으면 그들은 더욱 자유롭다. 그래서 어둠마저 '찬란한 어둠'이다.







이 소설은 단순히 '퀴어 로맨스 소설'이라는 몇 마디로 규정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배경이 1980년대 사회주의 폴란드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 소설은 존재했을 것이 자명한 그 시절 그곳의 퀴어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 퀴어들'은 상대적으로 더 자유롭지 못했으리라. 이미도 그들을 휘감고 있던 핍박에 더해 시대가 준 억압이 그들을 더욱 짓눌렀을 것이다.


소설 후반부에서는 전반부에서 조금씩 언급되었던 이념, 입장에 관한 이야기가 마침내 증폭된다. 야누시는 당국의 촉망받는 직원으로, 인민의 사상을 검열하는 일을 자랑스럽게 수행한다. 반면 루드비크는 어릴 적부터 금지된 방송을 들으며 소련군의 진실을 알고 국가를 불신한다. 완전히 다른, 서로 극과 극의 이념이 애정 안에서 충돌한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아름다운 문체로 쌓아 올린 두 사람의 관계가 자칫 바스러질까 조마조마하다. 좁혀질 듯하다 멀어지는 그들의 간극을 지켜보는 것이 힘들었다.



"그러니까 우리ㅡ"
"그 얘긴 그만하자." 다짜고짜 말을 지르는 너의 어조에 서린 갑작스러운 냉기가 나를 놀랬다. "우리 둘이 똑같은 삶을 살아온 게 아니잖아. 이 문제에 관해서는 서로 뜻이 안 맞을 거야."
머릿속은 휘청거렸고 손아귀 속 물잔은 서늘했다(137p).



다른 소리지만... 불법 선전물이 떨어지는 걸 이런 식으로 아름답게 표현하는 경우는 아직 못 봤다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가 위태롭던 와중, 야누시는 승진을 위해 당국 유력 인사의 자녀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나간다.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루드비크 역시 박사과정 합격을 위한 인맥을 찾기 위해 그곳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엄청난 충격뿐이다. 그 충격 속에서도 루드비크는 다시 예의 유력 인사의 딸을 찾아 자신의 망명을 도와달라고 고개를 숙인다. 다시 그들을 상종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보며 느낀 루드비크의 자괴를, 성적 취향을 헐벗은 듯 드러내야 했던 그의 수치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 사진 속에서는 남매의 아버지가 군복을 입고 온갖 훈장과 메달을 더덕더덕 달고 있었다. 나는 양손을 덜덜 떨며 그 사진을 탁자에서 집에 들어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았다. 기분이 메스껍다 못해 더럽기까지 했다(236p).

그러는 내내 하니아는 시종일관 걱정과 공감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그러자 기묘하게도 나도 모르게, 본능에서 우러나온 그 모든 고통과 복수심에 더해 하고 많은 사람 중에서 하필 그녀에게 부탁해야만 한다는 굴욕감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내 말을 들으며 보여주는 그 다정함과 친절에 사랑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271p).

그 눈물방울들은, 안도와 위안의 동인(動因)들은 저들만의 동력을 띠고 멋대로 쏟아지면서 내 얼굴을 적셔대었고 머릿속마저 텅 비웠다(273p).



인생을 정면으로 맞닥뜨려 나가는 루드비크의 상념들과 주위 사람들의 언사들 역시 단호한 문장들로 이어진다.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는 알 수 있다. 숨이 넘어갈 듯한 순간과 신열이 차오르는 순간과 사라지고 싶은 순간에 어찌해야 할지. 내뱉고 말았던 거짓말을 언제쯤 직면하는 것이 좋을지. 가야만 하는 때와 동시에 그것이 정말임을 함께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복도에 앉아 울지 않으려 애썼다. 그만 존재하고 싶었다. 비(非)존재하고 싶었다(250p).

"우리는 무슨 가망이라도 보이면 마냥 줄을 서대고, 여하간 뭐라도 받으려고 줄을 서대는데 어쩌면 아무것도 없는데도 줄을 서고 있는지도 모르지(251p)."

사적인 어떤 부분이, 언급된 적은 전무했어도 본질적인 어떤 부분이 내게서 뜯겨나가고 있었다(254p).

"난 가야만 해." 나는 말했고, 이 말이 정말임을 알았다(266p).

그렇긴 해도 이제는 우리도 각자의 거짓말들로 무한정 속여나갈 수만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늦든 빠르든 그 거짓말들의 시꺼먼 속을 직면해야만 할 때는 찾아오니까. 우리는 그 직면의 시기를 고를 수는 있으나, 직면의 여부를 정할 수는 없다(283p).



어둠 속에서 부드럽게 헤엄치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나까지 자유로워지는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어둠 속에서 헤엄치기>를 읽어 보시길 바란다. 아름다운 문장들에 홀려, 아무런 편견도 거부감도 없이 푹 빠져들어 읽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특히 '아름다운 문장'에 대한 나의 기준은 소설을 읽기 전과 후에 완전히 달라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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