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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A Nov 17. 2023

알뜰하지만 궁상맞지 않게

알뜰과 궁상은 기본적으로 

무엇인가를 아껴 쓴다는 개념에서는 비슷하다. 

욕망에 이끌려 사고, 심심해서 사고, 

마음이 허해서 사고, 그러다 돈이 없어도 사게 되는 

'지름신 강림'의 상태와는 완전히 반대 개념이다. 


소비 욕구를 자제하고 현재 있는 것에 자족하며, 

내 손에 쥐어진 것들을 우선적으로 

어떻게 사용할지 생각하고 고안한다. 

내면의 소유욕과 호기심을 다스리며 

지금 있는 것으로 구매 욕망을 채우는 것이다. 

간단히 비유하자면, 냉장고 털어 먹기와 비슷하다. 

냉장고 털어 먹다 보면 가끔 예상치도 못했던 식재료의 조합으로 

가라앉아 있던 창조력과 잠자고 있던 미각이 깨어나기도 한다. 


물질의 풍요를 달성하고 느끼려면 

알뜰은 기본이고 궁상 또한 때로는 필요하다. 



알뜰과 궁상은 물건과 자본을 

아껴 쓴다는 것에 있어서 비슷할지라도 

긍정과 부정의 차이가 매우 강하다. 

알뜰함은 낭비하지 않고 

물질과 에너지의 가치를 잘 알기에 

소중하고 신중하게 사용하는 어감이다. 


궁상 또한 낭비하지 않고 자본의 가치를 잘 알지만 

그렇기에 우선은 쓰지 않는데 초점을 둔다.

그래서 사용하고 써야 할 때도 쓰지 않을 때, 

궁상맞다는 표현을 한다. 

이러한 이유로, 알뜰함에는 신중하고 

성실하고 올바름의 가치가 담기지만 

궁상에는 구두쇠에 답답하고 좀팽이 같은 느낌이 든다. 

알뜰함은 칭찬으로 여겨지지만 

궁상은 비난으로 들린다. 


이러한 긍정과 부정의 차이 말고도 

말하는 화자와 해당 주체에 따라 상당히 차이를 보인다. 

알뜰함은 내가 나에게 보내는 평가일 수도 있고 

타인이 나에게 보내는 평가일 수도 있다. 

'나는 알뜰하다, 그는 알뜰하다'  모두 의미가 통한다. 


하지만 궁상맞다는 조금 다르다. 

'나는 궁상맞다, 그는 궁상맞다'의 문장은 물론, 말은 된다. 

비문은 아니다. 하지만, 의미상으로 보면 뭔가 어색하다. 

궁상맞은 사람은 스스로 궁상맞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울질 하며 알뜰하다고 자부하지. 

그렇기에 궁상맞다는 표현은 1인칭보다는 3인칭이 어울리며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닌 타인이 던지거나 내뱉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궁상맞다고 '내뱉는' 것일까?

넘쳐나는 쓰레기와 환경오염, 

물질에 휘둘리는 마음으로 쉽게 당황하게 되어 

아끼고 안 쓰는 것이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로 자리 잡힌 요즘, 

절약하고 살뜰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왜 궁상맞다고 평가질을 하는 걸까? 


여기에 잘 보이지 않는 깊은 차이가 있다. 

바로 소유의 차이다. 

가난한 사람과 부자, 없는 사람과 있는 사람의 차이다. 

(자본을 얼마나 갖고 있는 것으로 구분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의미 파악을 위해 억지로 라도 사용해 본다)  


자본을 덜 소유한 사람, 가난한 사람, 없는 사람이 

아끼고 절약하면 '살뜰하다, 알뜰하다'라고 하지만 

자본을 많이 소유한 사람, 부자, 돈 많은 사람이 

아끼고 절약하면 '궁상맞다'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누군가 당신에게 ' 궁상맞다'라고 표현한다면 

화자는 무의식적으로 당신이 부유하다는 평가를 깔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돈을 써야 할 때 쓰지 않으면 

그때는 '궁상맞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물론, 내 돈 내가 써야 할 때 내가 결정한다고 하지만 

여럿이 무엇인가를 할 때 그리고 그들은 당신이 여유 있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이 아끼고 절약하려 한다면 그들은 당신을 좋게 보지 않을 것이다. 

돈 많은 당신 덕을 보고자 했으나, 그 덕을 보지 못하게 되면

그들은 당신에게 '궁상맞다' '쪼잔하다' 이런 말을 던질 것이다. 


알뜰과 궁상의 차이는 또 있다. 나이와 세대의 차이다. 

알뜰은 쓸 때는 쓰지만 궁상은 써야 할 때도 쓰지 않는 것이다. 

소비를 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가 집착으로 이어져 

소비행동으로 얻어지는 기쁨은 무시하고 오직 안 쓰는 것에만 매달린다. 

지나친 잣대가 자신에게만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확장이 될 때면 

정말 '꼴사나운' 꼰대처럼 보이기도 한다. 


젊은 사람이 절약하면 '알뜰'이고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고 격려하지만 

늙은 사람이 절약하면 지금까지의 삶을 잘 못 산 것처럼 

마치 실패한 사람처럼 추레한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왜 저런대?' '왜 저러고 산대?' '이 나이 되도록 뭘 했길래?'

라는 과거 삶의 행적을 의심받기도 한다. 

 

이런 사회적 배경으로 나온 게 '체면유지비'다. 

나에게는 알뜰하다 못해 궁상맞아도, 타인에게는 여유 있게 보이고 싶은 

일종의 허세이기도 하고, 과시욕이기도 하고 동시에 소속감의 표출이기도 하다. 

관계 중심의 동양 문화권에서 유독 이런 문화가 자주 보인다. 


알뜰이건, 궁상이건, 

내가 벌어서 내가 쓴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며

타인의 시선 따위는 상관하지 않는다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주거니 받거니 기브 앤 테이크가 대다수다.


그럼에도 유독 궁상맞은 걸 넘어 

인색할 정도로 야박한 인간들이 있다. 

맞다, 돈 많은 당신이다. 

내가 수 없이 밥을 사고 커피를 사도 

언제난 계산할 때면 먼저 나가 있고,  

내 돈이 네 돈인 양 행동하는 당신들!

누가 알뜰하고 누가 궁상맞은 걸까?  

배틀이라도 해야 하는 걸까?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느끼는 건 

미니멀리즘을 노래 부르면서 살림을 정리하는 요즘, 

알뜰하지만 결코 궁상맞게 

계산적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다. 

타인의 시선이 무서워 서가 아니다. 

나의 행복을 타인의 주머니에서 찾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궁상맞아도, 내가 써야 할 때를 알고 멋지게 지르는 것도 

나이 들어가는 멋이라는 걸 

나보다 더 많이 소유한 당신이 알기 바라면서 

이렇게 길게 둘러 둘러 말했다. 


p.s. 

내 글도 미니멀리즘으로 짧고 굵게 고쳐 써야 하는데 

내 글은 여전히 맥시멀리스트의 글인 것 같다. 

확 질러서 내 뱉으면 되는데, 그걸 못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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