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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A Feb 28. 2024

장르가 무엇이냐고 묻거든...

다만 비극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갑작스러운 엄마의 응급 수술 소식에 전화받은 손은 덜덜 떨렸다.

무섭고 두렵고 보고 싶다는 엄마의 마지막 절규 같은 말에 눈물도 멈춰 버렸다.

내가 울면 안 될 것 같은 본능적인 낌,

내가 엄마를 위로하고 용기를 줘야겠다는 결심.

목소리 톤을  바꾸고 짧게 통화한 후 간병인과 통화했지만

갑작스러운 결정에 간병인도 횡설 수설 할 뿐 정확한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다.


아빠가 여전히 엄마 보호자로 되어 있어

긴급하게 아빠의 입원 소식을 알리고 보호자 변경을 신청했다.

오빠를 제1 보호자로 나를 제2 보호자로 등록했다.

보호자가 바뀌어서 보호자와 주치의 상담이 가능헀다.

오빠가 바로 병원으로 갔다. 

톡으로 응급 수술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이 간단하게 전달되었다.


나는 의사를 믿고 병원을 믿고 엄마의 생명을 믿었다.

아니, 이 순간 믿지 않고 무엇을 어떻게 견딜 수 있는지.. 믿을 수밖에 없었다.

오빠와 아빠와 나는 한없이 여린 동생과 한없이 예민한 언니에게

엄마의 응급 수술소식을 당장은 알리지 말고 경과가 나오는 데로 알리자고 합의했다.




동생은 엄마의 상태를 잘 알지 못했다. 아니, 알지 못하게 했다.

그건 엄마와 나의 동생을 향한 배려이기도 했다.

엄마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사고 소식을 알리지 말라고 했고

동생은 엄마와 몇 초 전화하면서 엄마의 그 아픈 가운데에서도

말을 돌리면서 아픈 소식을 어떻게 해서든지 전하지 않으려 했다.

동생은 엄마가 곧 퇴원할 것이고 언니의 '엄마와 놀자'로 제주도 갈 때

같이 가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서도....

걱정하지 말라하고 괜찮다고 하면서 주말 가족들과 잘 보내라고만 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분명 핸드폰 화면에 수신인이 동생인데

아무 말이 없다.

' 아..... 알아버렸구나....'



누군가가 어찌 저찌 알아 버린 사실을 혼자 담지 못하고

자신의 불안을 그대로 전달해 버렸구나

아..... 그 순간, 그 사람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지 않으려 무던히 애썼다.

생물학적으로는 생의 나이가 나보다 많지만

단 한번도 나와 가족에게 어른 노릇을 한 적이 없는 존재


동생과 동생의 자녀들이 괜한 걱정과 불안으로

그들의 일상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의도된 배려는 무너졌고

동생은 집을 뛰쳐나와 나에게 전화를 했다.

버거운 상황에 동생을 위로하는 일까지 더해졌다.

그냥 나 좀 내버려 두어도 되는데 일을 더 확대하고 떠들어대는 게

지금으로서는 결코 현명한 행동이 아니었다. 감히 말하자면!


하지만 이미 말은 입 밖으로 나갔고

나는 다시 한번 상황 수습반으로 변신해야 했다.

나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추스른 여유도 없었고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던 순간이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나와 같지 않고, 가족조차도, 생일이 같은 쌍둥이조차도 다르다.

그런 걸 이해하면 뭐든 못할까 싶지만, 급박한 상황에서

일이 커지고 말을 한마디라도 더 해야 하는 상황에 진이 다 빠져버렸다.




'엄마랑 놀자!'의 시작은 엄마와 나의 만남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서로 같은 색의 지하철 라인에 살면서 내가 해외에 거주할 때 보다

더 얼굴 보기 힘들다고 하신 말이 마음에 걸렸었다.

아이들이 독립하면 엄마랑 뭐라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아이들이 독립하자마다 장편 번역의뢰가 들어와 그 번역이 끝나는 봄이면

엄마랑 본격적으로 뭐라도 해보자고 했더랬다.


'엄마랑 놀자!'의 애초 장르는 여행을 중심으로 한 일상 에세이였다.

거기에 세대 간의 다양한 이야기와 관점이 가미되면서

인간극장이 될 수도 있고, 코미디가 될 수도 있는

담담하지만 즐거운 이야기로 채워가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알 수 없는 생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지금

나는 이 기획의 장르와 색깔을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

이 글은 그렇다면 엄마의 병상 일기? 아니면 나의 돌봄일기?

아니면 경추가 골절된 한 인간의 눈물 나는 투병과 재활 기록?

사고의 경위와 원인을 분석하는 미스터리 추적물?

아니면 가족 간의 우당탕 쿵탕 서로 다른 입장과 마음을

대놓고 드러내며 싸워대는 주말 가족물?


나는 속절없이 하얀 모니터에 글자를 채워놓는

반복된 행위로 나의 불안을 잠재우고 있을 뿐이다.

장르가 무엇이든 이 글에 어떤 비극적 결말이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잠이 오지 않는 부정적인 생각이 몰려와 억지로 모니터 앞에 앉았있다.


엄마의 응급수술은 오전 8시. 시간에 맞춰 가려면 빨리 자야 하는데...

엄마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지....

설날 연휴 마지막 날이었는데...

엄마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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