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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형서재 Jul 05. 2024

어쩌다 군무원이 되어서

 짬밥 먹은 지 10년이다. 육아휴직기간 포함하면 13년.

나도 내가 군대에서 일하게 될 줄 몰랐다. 자라면서 만나 본 군인이라곤 병장으로 말년휴가 나온 사촌 오빠가 전부였다. 어디 인생이 계획대로 되나. 때로 생각지도 못한 선택지가 눈앞에 나타난다.



 처음부터 공무원이 꿈은 아니었다. 대학교 3학년 때 친구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너도 하지 않겠냐고 물었을 땐 딱 잘라 거절할 정도였다. 나는 공직 자체에 무관심했다. 이런 내 마음을 돌려놓은 건 첫 직장의 거지 같음이었다. 취업난이 한창이던 때였다. 계속되는 서류 탈락, 면접 탈락, 족히 100군데는 넘게 지원했는데 날 받아주는 곳이 없다는 그 좌절감은 상당했다. 마지막으로 이 회사에 최종합격했을 땐, 기쁨보다 안도감이 먼저였다. 나도 이제야 밥값 할 수 있다. 독립이다!



 영업지원담당이라는 타이틀로 10개월을 일했다. 회사였지만, 거의 준공무원이었다. 정해진 일만 하면 정시퇴근은 보장이었다. 임원회의가 있을 때 커피 타는 일, 탕비실 간식 채 우는 일 같은 잡다한 일도 내 몫이었다. 오래 다닐만한 회사는 아니라는 느낌은 있었는데, 정작 문제는 일보다 사람이었다. 은근하게, 때론 대놓고 나를 괴롭힌 그 사람 때문에 더는 일을 할 수 없었다.



 일을 관두고 쉴 때, 나는 당분간 사람에게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 여자라서 커피 타는 것도 싫고, 결혼하면 퇴직해야 하는 암묵적인 회사 분위기도 싫었다. 모든 회사가 그렇진 않겠지만, 그렇지 않은 회사가 나를 받아줄지는 미지수였다. 나는 자신감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래서 찾은 게 공무원이었다. 혼자서 열심히만 하면 합격이라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 60세 정년 보장, 공무원연금. 근무환경도 괜찮다. 마음을 정했다.



 시험공부가 누가 힘들다고 했나? 나는 인간과의 접점이 없는 공부가 오히려 편했다. 사회의 쓴맛을 본 자에게 공부는 차라리 휴식이었다. 1년은 쉬는 기분으로 그렇게 공부하고 시험 치고 쉬며 보냈다. 본격적인 공부는 2년 차부터였다. 국가직, 지방직, 서울시 우리나라에서 치러지는 웬만한 공무원시험에는 다 들이댔다.




 그러다 군무원을 만났다. 군대에도 공무원이 있다니. 국방부, 육군, 해군, 공군 중에 근무하고 싶은 군을 선택해서 시험을 치르면 됐다. 영어시험은 토익으로 대체되고 시험과목도 일반 공무원보다 적었다. 안 해볼 이유가 없었다. 육군은 오지로 갈 수 있으니 패스, 해군은 뱃멀미가 심하니 패스, 국방부는 1명만 뽑으니 패스, 남은 건 공군이었다. 톰 크루즈의 탑건을 상상하며, 공군을 지원했다. 공시족 3년 차. 드디어 최종 합격했다. 두 번째 직장인 공군과의 인연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군대 다녀온 남자라면 군무원을 알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자는 대개 잘 모른다. 적어도 내 주변 여자들은 그랬다. 군무원이라는 직업을 생소하게 여기는 분들을 만나면 질문이 귀엽다. “군복 입고 근무하나요?" ”총도 쏘나요?" 군인이랑 같이 있나요?"



 나도 처음엔 MBC 예능프로 <진짜 사나이> 현실판을 경험하는 기분이었다. 모든 게 다 재밌기만 했다. 임용식을 하는 것도, 사령관의 인사말이 끝난 후에 거수경례를 하며 '필승' 하는 것도 그냥 군인체험을 하는 것 같았다. 공군이 왜 육군과 같은 옷을 입는지 의아해했고, 장교와 부사관의 차이도 몰라서 어리둥절했다. 처음 간 부대에서 병사들에게 김 병장, 박 상병이라고 하자 기겁하며 웃던 얼굴들이 생각난다. 그냥 이름을 불러도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던 그 친구들은 지금 잘 지내고 있을까?



 10년이 지나니 부대생활은 나의 일상이 되었다. 군복에 익숙해지며 국방색과 밀리터리룩은 피하게 됐고, 훈련기간 중 민방위복을 입는 게 더는 어색하지 않다. 1년에 한 번 체력검정을 하고, 화생방교육(일명 가스체험)을 위해 방독면을 쓴다. 내 전투기(내 건 아님)를 실제로는 본 적이 없는데, 뉴스에 나오기라도 하면 은근한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북한이 도발을 할 때 삼엄해지는 부대는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군인과 공무원의 경계선에서 시소 타는 듯한 기분을 종종 느낀다.



 이 일에는 자부심을 느낄 만한 데가 분명 있다. 대한민국의 영공을 지키는 일에 일조하는 게 아닌가. 우리가 두 다리 뻗고,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건 알게 모르게 헌신하는 군대의 존재 덕이다. 그러나 요즘은 내가 이 대의를 위해 일하는 게 맞나, 내가 원하는 삶이 이거였나? 자꾸만 질문이 생긴다. 영공을 지키는 의무가 내 것은 아닌 느낌으로 먹고사니즘을 위해 일하고 있는 나 혹시 두 번째 직업의 막을 내릴 때가 된 건지? 내 인생이 또 어떻게 흘러가려는지. 나는 지금 갈림길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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