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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Pixel Jan 01. 2019

뛰어가는 기술, 기어가는 인간

인공지능 시대의 ‘문화지체 현상’

 고등학생은 학교와 학원 이외의 곳에 갈 일이 많지 않다. 나도 수험 생활을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최신 기술과 멀어진 것 같다. 그것을 가장 크게 느낀 때는 물건을 살 때였다.


 고등학교 동안 나는 주로 학교 매점을 이용했다. 그러나 매점의 한정된 아이스크림 선택지에 조금 실망스러워질 때쯤 나는 친구들과 학교 근처 편의점을 이용했다. 그날도 나는 다른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졌다. 그래서 친구를 꼬셔 저녁을 먹고 학교 근처의 편의점에 갔다. 오랜만의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진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당당하게 편의점 점원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그러나 점원의 말은 예상외였다.


 "카드 꽂아주세요."


 음? 카드에 어울리는 서술어는 '긁다' 아닌가. 나는 조금 당황스럽지만 이내 침착함을 유지했다. 머리카락은 떡졌고 슬리퍼를 질질 끌고 있는 페인 상태인데 점원의 말을 못 알아들으면 조금 쪽팔리지 않나. 그러나 알바 분은 참을성이 많지 않았다. 3초 정도 내 손이 방황하자 내 카드를 휙 가져가서 리더기에 꽂아버렸다. 나는 처음 보는 신문물에 감동받았다.


 이런 감동적인 경험 후 나는 카드에 어울리는 말이 '꽂다'라는 것을 배웠다. 나는 주로 현금으로 돈을 가지고 있어 카드를 잘 사용하지 않았는데, 아마 그래서 카드가 '꽂는' 것 임을 그제야 안 것 같다. 그렇게 카드를 '꽂으며' 계산하는 날이 흐르다가 나는 다시 한번 신문물을 맞이 했다. 친구와 매점에 갔는데, 친구가 카드 대신 핸드폰을 내민 것이었다. 매점 아주머니는 리더기에 핸드폰을 쓱 대더니 친구에게 다시 핸드폰을 돌려주셨다. 다시 한번 신문물을 맞이한 나는 친구에게 그게 뭐냐고 물어봤다. 삼성 페이! 나는 아이폰을 사용해서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다시금 내 사전에서 카드에 어울리는 서술어가 '꽂다'에서 '대다'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신.문.물.




 기술을 빠르지만 인간은 느리다. 우리는 이 현상을 '문화지체 현상'이라고 부른다. 나같이 세상과 잠시 단절되어 살았던 수험생이 아니어도 우리는 모두 문화지체를 경험한다. 대표적인 예시로 1860년대 영국에서 만들어진 법인 'Red Flag Act(적기 조례)'가 있다. 이 법은 영광스러운 타이틀을 두 개나 가지고 있다. 이 법은 인류 최초의 교통법이고, 또한 인류 최초의 악법인 교통법이다.

이러고 다녔다. 허허...

 법의 내용을 간단히 말하면 "님들 자동차가 너무 빨리 달리면 마부들이 실직하니까 천천히 달리세요ㅋ"이었다. 당시 자동차는 30km/h 정도로 달릴 수 있었는데, 이 법은 속도 제한을 6km/h로 걸었다. 조깅하는 것보다 조금 더 빠르다. 영국 사람들은 "얼씨구나! 자동차 안 타야지" 했고 영국 자동차 회사들도 "얼씨구나! 차 안 팔리니까 그만 만들어야지." 했다. 그 결과는? 당연히 영국의 자동차 산업을 말아먹었다. 영국이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인 문제로 허덕거리고 있는 동안 독일, 프랑스가 기술을 발전시켜 나갔다. 이 법은 놀랍게도 1896년까지 있었고, 영국은 롤스로이스가 20세기에 후발 주자로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기 전까지 자동차 산업이 발전하지 못했다.




 

지금 보기에는 적기 조례가 문화지체 현상의 재미있는 예시 같다. 그러나 여전히 문화지체 현상은 일어나고 있다. 나는 인공지능에서 가장 이것을 느낀다. 고등학교 때 학생들은 대략적인 장래희망을 정한다. 내 친구 중에는 세무사가 꿈인 친구가 있다. 세무사는 훌륭한 전문직이라고 생각한다. '유엔 미래보고서 2045'가 꼽은 '사라질 확률이 높은 직업군'에 속하는 것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기술은 항상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발전한다. 항상 미래는 어떻게 변화할지 주의 깊게 살펴봐야만 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의 실패가 단지 개인의 선택 실패에 그친 다면 차라리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인공지능의 발전에 대해 예측하지 못하고, 우리의 문화나 제도가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해 충분하지 못한 규제나 논의 없이 미래를 맞이하게 된다면, 영국이 자동차 산업을 말아먹은 것은 예방주사의 따끔함의 지나지 않을 만큼 강력한 독감이 인류를 휩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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