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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 Aug 10. 2020

나는 매일 '홀새수'를 한다

띠리리리이이히. 띠리리리이이히.

방금 전까지 꿈속에서 심각한 상황 속에 있었든, 꿈도 없는 깊은 수면 속에 있었든 상관없다. 이 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침대에서 튀어 오른다. 보통 알람 소리는 두 번을 넘기지 않고 멎는다. 가족들을 깨울 필요는 없다. 알람을 중지시키고 잠시 다시 누울지 말지를 망설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제 망설이는 시간은 줄고 줄어, 거의 없어졌다. 바로 휴대전화를 들고 깜깜한 거실로 나와 조용히 방문을 닫는다. 화장실에 다녀온 후 식탁에 앉아 불을 켜고 앉는다. 이때가 오전 5시 35분쯤 된다. 전기주전자에 물을 채워 끓인다. 차호에서 전날 마셨던 보이차 찌꺼기를 버리고 헹군다. 새 찻잎을 차호에 넣고 끓은 물을 넣어 세차한다. 그 사이 나는 키노 맥그리거의 <요가 수업>을 편다. ‘건강하고 평화로운 삶을 위한 30일의 요가 여행’이라는 부제가 달린 읽기 쉬운 책이다. ‘산토 샤(만족)’나 ‘크샨티(인내)’ 같은 챕터를 하나씩 읽고 특히 마음이 동하는 부분이 있으면 노트에 필사한다. 이렇게 음미해서 책 몇 장을 읽으며, 물을 끓이고 차를 따라 홀짝이다 보면 30분은 그냥 지나간다. 차를 마시며 요가책의 하루치를 읽는 것이 아침에 깨 요가 수련을 시작하기 전에 몸과 마음을 데우는 과정이 되었다. 이 시간도 참 좋지만 너무 오래 끌었다가는 수련 도중에 매트 위에서 잠 깬 딸을 만날 수 있기에, 서둘러 요가매트를 편다.


요가매트는 우리 집 현관과 화장실 사이에 벽을 앞에 두고 깔린다. 한동안 다른 자리를 찾아 매트를 깔아보기도 했지만 처음 시작한 그곳의 에너지가 있는지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향초를 요가매트 왼편 앞에 피워놓고 매트 오른편 뒤쪽엔 등유난로를 수련 시작할 때 잠깐 껴놓는다. 파드마 아사나(가부좌)로 명상을 시작한다. 나의 명상은 대개가 온갖 잡생각들의 질주 혹은 널뛰기 시간이다. 생각을 멈추려 벽을 향해 앉아 눈을 감아보지만 쉴 새 없이 들낙날락대는 잡념을 붙잡아 놓기는 역부족이다. 오는 생각에 휘둘리지 않고, 가는 생각 붙잡지 않고 그저 바라보는데 만족한다. 내게 아직 명상은 멀고 멀었다, 생각하며 꼬았던 다리를 푼다.


요가매트에 앉아 느끼는 새벽의 거실은 그저 고요하다. 핸드폰 스피커에서 나오는 잔잔하지만 영적인 분위기를 도와주는 인도 플루트와 티베트 보울 소리, 향초의 바닥까지 짧아진 나무 심지가 타다타다닥 혹은 바사바 사사삭 타는 소리. 간간히 멀리서 들리는 왠지 자신감 없는 나른한 닭 울음소리, 새벽잠 없는 개의 워워워워 월월 짖는 소리, 그 소리 사이사이 시계 초침 돌아가는 소리, 집 온도가 22도로 내려갔음을 알리는 위잉,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 시간이 지날수록 한 번씩 들리는 집 앞을 지나는 자동차 소리, 새가 삐삐, 째째째째 우는 소리, 그리고 내가 매트 위에서 몸을 움직이는 소리. 이 소리들이 들리기도 하고, 들리지 않기도 한다. 이마저도 수련에 집중하게 되면 사라지고, 오직 내 호흡소리만 남는다.


홀로 새벽에 수련할 때는 주로 꾸준히 단련해야 할 자세 위주로 요가를 한다. 그래서 주로 내게 부족한 전굴 자세를 먼저 꼭 한다. 이후 팔 균형 자세나 선 자세를 하고, 발전시켜야 할 후굴 자세가 있으면 수련하는 식이다. 또 빼먹지 않고 하는 자세가 ‘아사나의 왕’으로 알려진 살람바 쉬르사 아사나(머리 서기)다. 이것을 부동으로 15분 유지하는 것이 목표이다. 이것이 되어야 물구나무서기의 여러 변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수리와 깍지 낀 손날과 팔꿈치로 몸을 세우고 10분 정도가 되면 눈꼬리에 땀이 맺힌다. 이때부터 서서히 떨리는 몸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호흡을 센다. 하나부터 백까지 천천히 숨 쉬며 카운트하다 보면 거의 12분, 13분 내가 정해놓은 알람이 울렸다. 14분까지 버텨보았다. 그전보다 1~2분 더 하는 건데 어찌나 시간이 더디게 가던지. 이때 ‘시간아 빨리 가라. 알람아 제발 울려라, 울려’ 이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더 힘들어지는 걸 알지만, 그걸 멈추는 게 어렵다. 어깨가 무너질 듯 아프고 목이 잘못될 것만 같고, 깍지 낀 손가락 사이가 땀으로 멀어진다. 발을 다시 땅에 내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너무 잘 안다. 이대로 더 유지해도 아무것도 잘못될 것이 없으며, 잠깐 휴식을 취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이내 고통은 사라질 것임을. 내가 할 것은 그저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을 무시하고 좀 더 버티는 것이다.


나는 매일 싸운다. 요가매트 위에서 내 몸을 두고 마음과, 생각과 한바탕 뒹굴다 나온다. 요가매트 위에서 부들부들 떨리는 몸과 요동치는 마음을 붙잡고자 연습한다. 이 축적된 훈련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뭔가가 빡, 치고 욱, 올라올 때도 이성을 붙잡고 꾸역꾸역 참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묵묵히 오늘도 수련한다. 고장 난 게 아닌가 싶게 조용하던 타이머에서 드디어 반가운 알람님이 울려주시면, 그제야 안도하며 최대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뿐히 내려온다. 곧이어 뒷목에 갔던 부담을 풀기 위해 이번엔 ‘아사나의 여왕’인 살람바 사르반가(어깨서기)를 한동안 유지한 후 사바아사나로 마무리한다. 이렇게 하면 별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1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이것이 내가 방학을 맞아 12월 어느 날부터 계속해오고 있는 ‘홀새수’의 과정이다. ‘홀새수’는 ‘홀로 새벽에 하는 수련’을 나 혼자서 그렇게 부르고 있다. 새벽 수련을 하는 사람은 많을지라도, 내가 만들 말로 불렀을 때의 고유한 느낌이 좋다. 집에서 한 달 넘게 지속하다가, 1월 말에 열흘이 넘는 여행으로 매일 해오던 홀새수에 위기가 왔었다. 여행 중에도 욕심을 조금 버리고 나와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최대한 상황에 맞게, 틈틈이 잊지 않고 수련을 계속했다. 그 결과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홀새수하다 문득, 5년 가까이 해소하지 못한 무릎 뒤 햄스트링의 막힌 부분이 개운하게 풀려있는 것이 느껴졌다. 다쳤던 곳이 꾸준한 자가 수련을 통해 치유된 것이다. 이제 홀새수를 해온 지 두 달 가까이 되었다. 과연 요가원에 1시간 수련만 해올 때와는 몸과 마음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아직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힘이 붙고 집중력이 높아져 요가원에서 난도 높은 아사나가 되기도 한다. 그러면 자신감이 붙어 홀새수 시간에 활기와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킨다. 나만의 홀새수 루틴이 자리 잡은데 자부심을 느끼며 지속할 수 있다. 그 결과 혼자서는 도저히 힘들 것 같던 아사나들을 새벽에 봐주는 이 하나 없을 때도 하나, 둘 스스로 하게 되었다. 선순환이다.


마지막으로 홀새수를 하다가 맞이한 잊지 못할 순간에 대해 말하고 마치겠다. 원래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은 아닌데 아사나에 집중하여 깊게 들어가다 보면 숨이 차고 더워질 때가 있다. 그러면 수련 도중 잠깐 거실의 넓은 창을 조금 열기 위해 창가에 선다. 창을 열었더니 아직 어슴푸레한 고요한 집 앞 풍경이 보인다. 소박하지만 익숙한 정경에 괜히 반갑다. 내 몸의 열기를 기분 좋게 데려가는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맞는다. 그때가 참 좋다. 마치 요가라는 여행을 다녀왔다가 내가 있어야 할 집으로 돌아온 느낌이랄까. 내가 지금, 여기, 있음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소중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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