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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미 Apr 06. 2021

창백한 푸른 점에서

소백산 천문대를 다녀와서: 낮에는 꽃 보고 밤에는 별 보며 살고 싶으네요

지난 금요일, 10km 소백산의 굽이진 길을 오르고 올라 해발 1,378m에 위치한 천문대로 출근했다.

기획 중인 시나리오의 자문을 구하고자 두 달여 전부터 손꼽아 기다려왔던 방문이었다. 코로나로 현재는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탓에 혹시라도 그사이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격상되지는 않을까 동동거렸는데 천문대장님의 초대로 다행히 예정대로 방문할 수 있었다.


4월의 소백산 풍경은 아래의 세상보다 느리게 지나가고 있었다. 이미 봄이   한참 되었는데도 여전히  녹지 않은 눈과, 애써 올려다보지 않아도 시선 안에서 조용히 흐르는 구름, 지나가는 안개도 얼어 나뭇가지에 걸린다는 빽빽한 나무들이 비현실적인 풍경을 만들어주다가도 청명한  아래 황사로 뿌옇게 뒤덮인 시내 전경이 현실감을 깨워줬다.

소백산 천문대 인근 연화봉 정상에 올라

천문대는 또 하나의 별세계였고, 그곳에서 일하는 대원들은 우리에겐 보이지 않는 세계의 궤를 공전하는 수호성들 같았다. ‘과학자는 계몽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며 여러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주신 대장님 덕에 인터뷰 때마다 간단히 요점만 필기해두곤 하는 내 손도 덩달아 바빠져 노트 한 면이 빼곡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 1박 2일의 답사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메모를 공유하고 싶다.


*

보통 천문학이라고 하면,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정작 천문학자들은 별빛을 싫어한다는 걸 알고 계시는지! 별이 빛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흔한 것이 바람이라고 한다. 바람을 맞은 별이 흔들리며 태양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관측이 어렵다는 것. 전 세계의 천문대가 대부분 고지대에 있는 이유 역시, 도시의 네온사인을 피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별에 바람이 스치는 빈도를 줄이기위해 되도록 맑고 바람이 없는 곳에 지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 이쯤에서 생각나는 시가 있지 않나요.

윤동주 시인의 ‘서시’의 마지막 시구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천문학자들은 별빛이 반짝여 관측이 어렵게 된 날을 ‘문학적인 날’이라 명명하고, 이 시구에 덧붙여 ‘오늘은 시상이 나쁘네요~’라는 말을 농담삼아 한다고 한다. 여기에서 시상은 시인의 생각(詩想)이 아닌, 보이는 형상(視像)을 말한다고. 아아 농담은 설명하는 순간 이미 망한 건데... 과학자들의 농담이여~ 여하튼 나는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윤동주 시인은 바람에 흔들려야 비로소 별이 빛난다는 것을 알고 있던 걸까.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지구를 가리켜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했다. 1990년 탐사선 보이저 1호가 61억km 떨어진 거리에서 본 푸르고 희미한 점 하나. 태양 빛에 부유하는 티끌 속에서 하루를 아등바등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 오늘도 바람에 흔들리는 나는 충분히 빛나고 있을까?


비 예보가 있던 탓에 별은 보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대신 천문대 인근에서 별을 닮은 세모난 돌 하나를 주워 내려왔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 괴로워질 때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사랑하고 내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려고 말이다.


NASA에서 촬영 30주년을 기념해 리마스터한 사진이라고 한다

**

저 점이 우리가 있는 이곳입니다. 저곳이 우리의 집이자, 우리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당신이 아는, 당신이 들어본, 그리고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바로 저 작은 점 위에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

위대한 척하는 우리의 몸짓, 스스로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믿음, 우리가 우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망상은 저 창백한 파란 불빛 하나만 봐도 그 근거를 잃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우주의 암흑 속에 있는 외로운 하나의 점입니다. 그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안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해도 우리를 구원해줄 도움이 외부에서 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

인류가 느끼는 자만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멀리서 보여주는 이 사진입니다. 제게 이 사진은 우리가 서로를 더 배려해야 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삶의 터전인 저 창백한 푸른 점을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대한 강조입니다.

- 칼 세이건 - 창백한 푸른 점 The Pale Blue Dot


/ from 에세이드라이브 글감 ‘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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