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즈베리맛젤리 Dec 07. 2021

그 버스 기사님을 또 만났다. 여전했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저렇게 온 힘을 다하고 있는가?'




16:58분

퇴근하기 2분 전이다.


의미 없이 켜져 있는 인터넷 창들을

슬슬 끄기 시작했다.


퇴근 종이 울리자마자,

진정성 없는 스마일을 장착한 채 짧게 인사했

"내일 뵙겠습니다^^"


마치 내일은 없다는 듯,

도망치듯 회사를 빠져나와 향하는 곳은 버스정류장.


버스정류장 나무의자에 걸터앉아,

지나가는 자동차를 바라보며

버스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하, 집에 간다~'


'진정한 월급루팡은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유연하게 일하는 것도 능력이여~'하면서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나름 잘 버텨낸 하루였다.



우리 집 방향으로 가는 버스노선은 단 2대.

 하나가 도착했다는 소리가

전광판에서 흘러나왔다.


놓칠세라,

멀리서 빠르게 다가오는 버스를 쳐다보며

온몸으로 탄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주머니에서 꼭 쥐고 있던 카드를

꺼내어 찍으며,  올라탔다.


"안녕하세요~"

버스기사님의 인사였다.


순간, 오른쪽에 있던 에어 팟을 빼며,

내가 들은 말이 무엇인지 곱씹기 시작했다.


'아? 인사를 해주셨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벨이 가까운 자리를 찾아 앉기 바빴다.


평소 버스라면, 버스카드를 찍지 마자

버스가 움직이는 게 인지상정.

하지만 기사님은 내가 앉고 나서

뒤늦게야 출발하셨다.


'기다려주신 건가?'

짧은 생각과 함께,

 에어 팟 소리를 조금 줄이고는 창밖을 바라봤다.



'오늘도 가버렸구나..' 하는

 의미 없는 생각으로 창밖의 허공을 응시하던 중,

"안녕히 가세요!"

꽤나 큰 목소리에, 번뜩 앞을 쳐다보았다.

버스기사님이 하차하는 승객들을 바라보며, 하시는 말씀이었다.


기사님의  우렁찬 인사에

찐한 마음이 담겨서였을까?


승객들도 준비나한듯

기사님이 들을 수 있게, 

크게 인사를 하며

 내리는 상황이었다.


'이 기사님은, 운행 내내

 이렇게나 크게 인사를 해주시는 걸까?'

라는 생각과 함께

 또한 6번째 정류장에서 인사를 하며 내렸다.





그리고 2주 정도 지났을까,

퇴근 후 버스를 탔는데,

 바로 그 버스 기사님이었다.



버스기사님을 알아보고는,

귀에 꽂혀있던 에어 팟을 빼서는

주머니에 스윽 넣었다.

'오늘도 인사를 매번, 그렇게 크게 해 주시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여전히 꽤나 큰 목소리로 매 정류장마다

 인사를 해주시는 버스 기사님.

승객들이 앉을 때까지 출발하지 않는 것도 여전하셨다.


오늘은, 창밖이 아닌

백미러에 비치는 기사님의 희끗희끗한

 머리끝을 한참 바라보았다.

단 6 정거장이었지만,

기사님을 보면서 알 수 없는 생각에 휩싸였다.



30대가 되어서, 직장을 다녀보니

매 순간, 온 힘을 다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되었다.

가끔은 너무 많은 노력을 일에 쏟아부으면, 허무하다는 생각에

오히려 내 몸을 사릴 때가 더 많았다.


하지만, 버스기사님을 보니

딱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멋지다, 존경스럽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저렇게 온 힘을 다하고 있는가?"


버스에서 내려, 집에 걸어 들어가는 길.

마치 굉장히 좋은 책 한 권을 읽은 느낌이었다.


'나도 나의 자리에서 매순간, 온 힘을 다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좋은 귀감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의 회로가 조금은 바뀌게 된, 계기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왜 LG폰 써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