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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Nov 07. 2022

주었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받았던 것들 2

양산을 쓴 그녀

그날은 바람이 많이 불었다. 양산을 쓴 그녀는 맑게 쏟아지는 햇빛을 막아낼 요량이었으나 오히려 불어오는 바람을 막고 있었고 양산은 물론이고 입고 있는 얇은 티셔츠도 바람을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고아원으로 걸어가는 동안 바람이 훑고 지나가는 그녀의 몸은 가냘픈 것이었다. 그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지만 바람 때문에 드러난 볼록한 두 개의 가슴을 덜 굴곡져 보이게 몸을 돌려 바람을 피하곤 했다. 그는 오히려 신성한 마음으로 눈에 드러난 그녀의 가슴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돌렸다. 저기 있는 저분은 천사이며 선녀이며 성녀라고 되뇌면서. 감히 속물의 눈빛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속으로 다스리면서 말이다. 


돌이켜 보면 그날의 그녀는 열일곱 살의 그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쇼트커트가 잘 어울리는 뾰족한 얼굴은 이상하게 여기저기 붉은 모습이었다. 몸이 좋지 않았던 탓에 얼굴은 때에 맞지 않는 여드름으로 덮여있었고 그 모습은 어쩔 수 없이 규율을 어겨 하늘의 벌을 받고 있는 천사의 모습이라고, 그럴 거라고, 그러니 거기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말자고 속으로 참고 있었다. 그렇다. 그러니 천사이고 선녀이면서 성녀인 그녀에게 헛웃음만 만들게 틀림없는 이상한 농담은 할 수 없었고 ‘얼굴이 왜 그래’라는 질문도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바람에 날리는 갈대처럼 마음을 접고 발걸음을 돌리지 않도록, 그리고 고아원에 가서 한 시간 혹은 한 시간 반 정도의 연습을 정말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잘 마친 뒤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웃으며 숙소로 돌아가도록 그는 뭐 하나 작은 꼬투리라도 잡힐 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었던 거다. 


일상의 인사만을 나누고 오늘 연습의 내용에 대해 설명하면서 쏟아지는 햇살을 느꼈다. 작대기 두 개가 얹어져 있는 그 냄새나는 군모 위로 내리쬐는 햇빛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니었다. 혹시라도 변할 그 마음에 대한 걱정에 비하면 말이다.


“진짜야? 걔가 도와준대?”


며칠전 역시 의무경찰로 군복무 중이던 그의 절친인 그 녀석과 그는 서로를 보며 역시 서로 믿지 못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그 콧대 높은 그녀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시간을 투자할 법한 여름방학 내내 그를 돕겠다고 한 것이 실로 쉽게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친구와 그는 같은 고등학교에서 중창단 활동을 했다. 옆의 여학교와는 오래전부터 비공식적인 동아리 교류가 있었고 졸업한 단원들은 함께 활동을 이어가기도 했다. 그녀는 옆 학교의 중창단 단원이었고 그 덕에 그들은 서로 잘 아는 사이였던 것이다. 


“온다고 했다가 안 오면 어떡해?”

“나랑 친하지도 않은데 설마 뒤통수치겠냐?”......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녀석은 같은 기수 대면식에서 그녀를 처음 봤고 첫눈이 빠졌더랬다. 정말 웃기는 이야기이지만 두 번째 만나는 날에 우연인지 사고인지 안경을 놓고 간 탓에 그때 그 아이가 얘인지 쟤인지 구분하지 못하다가 그녀처럼 조용했던 다른 한 아이와 썸을 타게 되어버렸다. 안경을 찾은 뒤 그 아이이게 ‘사실 네가 아니라 쟤랑 만나고 싶었어’ 따위의 상처는 주고 싶지 않았다고 했고 그 어린 나이에도 본인의 책임을 피하지 않았던 덕분에 그 녀석은 고등학교 시절 내내 그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사랑꾼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마음이 사라지거나 그녀에 대한 궁금함이 없어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녀에 대해 손톱만큼의 관심도 없었던 그와 처음부터 꼬여버린 그 녀석은 그녀의 등장이 당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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