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ed Nov 24. 2022

주었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받았던 것들 6

Non ti scordar di me

무더운 여름이 진득하게 묻어있던 여름방학이 끝나고 계획했던 보육원 콘서트의 시간이 다가온다. 무슨 무슨 콘서트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긴 했지만 사실 아이들의 수준만 놓고 보면 학예회 정도일 뿐이어서 그와 그 녀석과 그녀는 머리를 한동안 맞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학교의 기타 연주팀을 초청하기로 했지만 여전히 프로그램 계획서 안의 무대는 썰렁하다. 그도 그의 학교 동기들에게 읍소를 마다하지 않은 덕분에 작은 실내악 팀을 불러올 수 있었지만 아직도 성에 차지 않은 그녀는 그에게 너도 노래 한 곡하라고 떠밀었고 그 녀석 또한 이 모든 것이 네 탓이니 책임을 지라고 윽박질렀다. 두 사람의 강요에 못 이겨 그도 한 꼭지를 담당하겠노라고 약속했다. 


시간은 당연히 흘러 말도 안 되는 이 연주회의 당일이 되었다. 이제 고참 줄에 들어선 그 녀석도 휴가를 내서는 아침부터 여기저기 기웃대며 사진을 찍고 준비를 돕고 있다. 아이들의 무대는 두 개로 나눠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아이들 먼저, 그리고 그녀의 친구들인 기타 앙상블 그리고 그의 솔로 이후엔 현악 앙상블 마지막으로 아이들의 합창이다. 모든 친구들 덕분에 그날의 연주회는 풍성했다. 가장 중간에 그가 등장한다. 그는 연주회의 한 꼭지를 이태리 가곡 'non ti scordar di me'를 불러 채웠다. 이 노래의 한국어 의미는 '나를 잊지 말아요'이지만 이 말이 물망초의 꽃말과 같아서 때로는 물망초라는 제목으로 불리기도 한다.


Partirono le rondini dal mio paese freddo e senza sole,

해 없이 추운 이 땅에 저 제비들 모두 떠나갔네


cercando primavere di viole, nidi d'amore e di felicità.

오랑캐 꽃 사이에 봄을 찾아서, 행복한 사랑의 보금자리를 찾아서


La mia piccola rondine partì senza lasciarmi un bacio,

나의 정든 작은 제비도 나에게 키스도 남기지 않고


senza un addio partì... 

안녕의 인사도 없이... 


Non ti scordar di me: la vita mia legata (è) a te. 

나를 잊지 마세요  내 맘에 맺힌 그대여


Io t'amo sempre più, nel sogno mio rimani tu.

 밤마다 꿈속에 그대의 얼굴이 떠오르네


Non ti scordar di me: la vita mia legata (è) a te,

나를 잊지 마세요     내 맘에 맺힌 그대여


c'èsempre un nido nel mio cor per te,

그대는 언제나 나의 꿈에 있을 거요


non ti scordar di me!

나를 잊지 마세요


Mario Lanza - Non Ti Scordar Di Me - YouTube


노래를 하는 동안 그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그녀와 눈이 마주친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녀석은 이 순간을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이 사진은 매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나타났다.  



이 날의 공연을 보러 다시 찾아온 우찬도 그날은 무대에서 함께 노래를 불렀다.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나타난 우찬 주위에 아이들이 둘러싸고 있다. 모처럼 아이들은 밝은 표정이었고 그 표정은 부러움 반, 기대 반인 것 같다. 보육원에서는 보호자들에게 오늘의 행사를 미리 알렸지만 그 당시의 연락이라고 해봐야 삐삐나 닿지 않는 유선전화뿐이어서 가겠노라 확답을 받은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연주회 전날 총무님이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해 줬었다. 아이들의 마지막 무대를 지휘를 하던 그는 자꾸 아이들이 지휘자인 자신을 보지 않고 강당의 창문 너머 출입문으로 눈을 자꾸 돌리는 바람에 집중하라는 싸인을 몇 번이나 내야 했다. 아이들의 기대와는 달리 아이들의 부모들은 대부분 그 자리에 오지 않았다. 아이들의 목소리와 표정은 따뜻했고 밝았지만 마지막 노래인 마법의 성을 부를 때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왠지 다르게 들리는 것 같았다. 


'마법의 성을 지나 늪을 건너  어둠의 동굴 속 멀리 그대가 보여
이제 나의 손을 잡아보아요 우리의 몸이 떠오르는 것을 느끼죠
자유롭게 저 하늘을 날아가도 놀라지 말아요 우리 앞에 펼쳐진 세상이 너무나 소중해 함께 라면'

기타 연주곡 (안형수) - 마법의 성 (김광진) kpop 韓國歌謠 - YouTube



왜 이 아름다운 가사가 슬프게 들리는지 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눈물은 한번 터지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고개를 돌려 피아노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울고 있다. 


동네에서 모인 사람들도 이런 연주는 처음 본다면서 연신 박수를 쳐댔다. 아이들의 합창은 날것이었음에 틀림없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따뜻함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 순간 결심한다. 여기까지 만이라고. 

작가의 이전글 I really want to do nothing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