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소해 Mar 05. 2022

나에게 필요한 업사이클

집 안에 여기저기 흩어져서 정신없이 놓인 물건들을 보면 가끔 숨이 막힐 때가 있다. 필요하다고 혹은 산다는 행위 자체가 주는 만족감 때문에 살 때는 신나서 산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물건들은 사용 중 보다 사용 전 대기 상태일 때가 더 많다. 자리를 떡 하니 차지하고 있어 요리조리 피해 다녀야 한다.


옷도 그렇다. 옷장 자리가 부족해 정리한다고 수납함에 넣어둔 옷이 한가득이다. 책도 읽겠다는 의욕이 앞서, 혹은 서점에서 첫눈에 반해 사놓고 몇 장 읽다 말고 둔 책, 혹은 펴보지도 않은 책들이 한가득이다.


물건에 치이고, 여기저기 정신없이 놓인 물건들을 볼 때마다 스트레스는 받지만 그때뿐이다. 정리해야지라고 생각만 할 뿐 귀찮아서, 시간이 없어서 미루고 미루다 더 이상 미루기 힘든 상태가 되면 정리를 한다.


이틀 전이 그 임계점에 다다른 날이었다.


방 한 구석에 쌓여있던 책 50권 정도를 일단 서점에 팔겠다는 의지로 차 트렁크에 넣었고(일단 눈에 안 보이는 곳으로 이동), 아까워서 지난번, 지지난 정리 때도 그냥 옷장에 걸어 두었던 옷들을 과감하게 꺼냈다. 참으로 많이 버렸다 생각했는데 꺼낸 옷이 한 100리터는 되어 보였다. 낑낑거리며 헌 옷 수거함에 넣었다.


공간이 생기니 한결 마음이 개운하다. 물론 자리 채움의 법칙에 따라 빈 공간이 생기면 그곳에 무엇인가 채워지겠지만 지금은 약간의 공간이 생겼다. 매우 흡족했다.


볼일이 있어 나가다가 헌 옷 수거 트럭을 보게 되었다. 수거 담당자는 잔뜩 옷이 쌓인 트럭에 수거함에서 꺼낸 옷들을 쌓고 있었다. 버릴 때는 참으로 홀가분했는데 쓰레기처럼 쌓인 옷들을 보니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졌다.


저 옷을 만들기 위해 디자이너는 열심히 디자인하고, 재단하고, 생산 공장의 수많은 프로세스를 거쳐서 매장에 진열되었고, 나는 힘들게 번 돈으로 그걸 사서, 입고 세탁 세제를 넣고 세탁기에 빨고, 널고 마르면 개고 임대료를 내는 집에 쌓아두었었다. 수많은 돈과 노력이 집결된 물건이다. 그 물건이 한순간에 버려지고 있었다. 여태까지의 비용은 무엇인가? 그 잠깐을 입기 위해 지불하기엔 너무 비싸다.


물론 수거해간 일부 옷들은 구제로 팔리거나 기부되기도 할 거다. 얼마큼 재사용되는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SPA 시장에서 구매된 87% 정도 옷이 버려지는데, 이 버려진 옷은 재활용도 안되어서 거의 대부분이 폐기되거나 소각된다고 한다. 합성 섬유로 만든 옷은 만들 때도 플라스틱 섬유로 만들어서 환경오염시키고, 세탁할 때마다 미세 플라스틱을 만들어내고, 소각으로 탄소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환경오염의 주범이었다. 옷이.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233673

통계를 보니 우리나라가 헌 옷 수출량이 전 세계 5위란다. 주로 의류는 개발 도상국에 수출되는데 개발 도상국에 쌓이는 의류 폐기물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 쌓이는 하루 의류 폐기물은 70톤, 소들이 먹이 대신 헌 옷을 먹는다.

출처: https://www.chosun.com/culture-life/fashion-beauty/2021/04/03/G3TRVAVELFEKVMEKEYKJTHIE74/

이런 사실을 지각한 사람들은 헌 옷을 업사이클링해서 명품도 만들고 업사이클링 제품으로 만들어 팔고 있기도 하다. 나도 매장에서 업사이클링이란 라벨이 붙은 제품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업사이클 공정이 복잡해서 가격이 저렴하지 않아 일반 소비자에게 큰 매력이 없다고는 한다. 최근 ESG (Environment, Social, Governance) 경영이 기업의 필수 요건이 되고 있는 만큼 대세는 달라질 거라 믿는다.


소비자로서 사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대안일까? 어차피 금방 버릴 옷이라면 그 돈으로 투자를 하고 결혼식이나 행사 등 정말 필요할 때는 명품 대여 서비스 같은걸 이용해야 하나? 안 입는 옷을 버리고 집안 정리를 해서 홀가분해지려다 환경 문제를 고민하느라 머리만 더 아파졌다.


게다가 이렇게 고민하면서도 편리하다는 이유로 종이컵에 커피도 마시고, 페트병에 담긴 생수병으로 물을 마시기도 한다. 완벽하게 바뀌기가 이렇게 힘들다. 그래, 비건이 되고 싶지만 완벽한 비건이 되기 어려워서 시작도 못하는 것보단 나으려나. 일관성은 없지만 옷이 환경을 파괴한다는 사실의 심각성을 저 사진으로 각인했으니 올봄은 옷을 사지 않고 버티기로 작게 결심해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