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소해 Oct 22. 2023

퀸카와 비스킷

존재감이 없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사람, 비스킷


‘아임 어 퀸카‘ 노래를 거짓말 조금 보태서 수백 번 들은 것 같다. 7살 딸아이는 이제 동요보다는 아이돌 노래를 좋아한다. 예쁘고 날씬한 언니들이 추는 화려한 춤에 빠진 듯하다. 처음엔 아이가 ’ 엄마 퀸카‘ 하길래, 그래 내가 좀 퀸카지 하면서 가사가 뭐길래 엄마 퀸카라고 하나 궁금해서 찾아보니 아임 어 퀸카였다. 오늘도 아이는 ’ 아임 어 퀸카‘를 외친다.


“세상에는 자신을 지키는 힘을 잃어 눈에 잘 보이지 않게 된 사람들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존재감이 사라지며 모두에게서 소외된 사람. 나는 그들을 ‘비스킷’이라고 부른다. “

한동안 안 쓰던 서평을 다시 쓰게 만든 책, “비스킷, 글 김선미“ (제1회 위즈덤하우스 판타지 문학상 청소년부문 대상)의 프롤로그다. 신문에 자주 오르내리는 아동학대, 학폭 등을 볼 때마다 ‘왜 우리는 이들을 이렇게 알아봐 주지 못했나, 결국 너무 늦은 때에서만 알 수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는데 작가는 마치 내 생각을 읽었다는 듯이 ‘자 이러면 어떨까’라는 듯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가가 이 어두운 이야기를 청소년 판다지로 어떻게 풀어낼까 궁금해하며 책을 읽었다.


주인공은 비스킷을 세 단계로 인지한다. 1단계는 보이긴 하지만 존재감이 없어 어두운 사람이라고 느끼게 하는 사람, 2단계는 옆에 있어도 50% 정도는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존재감이 불안정하고 자신을 지키는 힘이 약한 사람, 3단계는 존재감이 없어 세상에서 사라지기 직전, 스스로를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의 상태다.


“비스킷은 대부분 1단계에 머문다. 가정, 학교, 사회에서 적어도 한 명 이상이 지속적이 관심을 주면 유대감을 통해 자신을 지키는 힘이 유지되기 때문인 것 같다. 학교나 학원에서 따돌림을 당하더라도, 가정에서 지지받고 힘을 얻는다면 2단계나 3단계까지는 가지 않는다.”


“비스킷은 어디에든 있고, 누구나 될 수 있다.”


남일처럼 느끼지 말라고 작가는 비스킷은 어디든, 누구나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스스로에 대한 생각이 바뀐다. 스스로 동굴에 들어가기도 하고, 쓸모없다고, 혹은 왜 이리 부족할 까 자책할 때도 많다. 나이가 들 수록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전혀 아니었다. 결국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비스킷이 되는 것은.


주인공의 여러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비스킷이 될 수밖에 없었던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어릴 때 엄마를 잃고 슬픔에 빠져 스스로의 존재를 잃어가던 친구가 자신을 알아본 친구들 덕분에 존재감을 회복한 이야기, 학폭에 시달리다가 존재감을 잃었으나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을 하게 되면서 존재감을 회복해 가는 이야기, 삼 남매 중 둘째로 존재감을 잃던 아이가 배려하고 수용만 하던 모습에서 당당히 자신의 요구를 말할 수 있게 되는 이야기. 우연히 듣게 된 윗집 아이의 울음소리에서 알게 된 아동학대 등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다양한 상황에서의 소외된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나는 소리에 관한 치료를 세 가지나 받고 있다. 소리 강박증, 청각 과민증, 소리 공포증 “


주인공은 청각이 예민하다. 아니 예민하다기보다는 과민해서 소리 강박증, 청각 과민증, 소리 공포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신경 전문 정신 치료 센터’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주인공의 청각 예민증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리가 사는 곳은 수많은 시각 자극과 청각 자극으로 가득 차있다. 세상의 자극을 벗어나기 위해 이어폰에는 노이즈 캔슬 기능이 들어갈 정도다. 삶의 속도도 매우 빠르다. 조금만 긴장을 놓쳐도 선택적 주의로 인해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고 오직 내가 관심을 갖는 것만 보이고 들을 수 있다. 마치 덩치도 크고 놓치려야 놓칠 수 없지만 다른 곳에 신경 쓰고 있다면 절대 볼 수 없는 방안의 고릴라처럼 말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청각 예민증으로 듣고 싶지 않아도 듣고, 인식한다. 그의 예민증은 겉으로는 병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세상의 약한 존재를 향한 섬세함이다.


아이들의 존재를 알아봐 주는 어른들이 없어서 비스킷이 되어가는 과정은 심리학자 Emmy Werner의 추적 실험 결과를 떠오르게 한다. 하와이의 한 섬에서 같은 해에 태어난 698명 아이들을 30년 동안 추적 연구 했는데 이중 210명은 매우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었다고 한다. 이 중 2/3은 성장과정에서 문제가 많았지만 1/3은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공부도 잘하고 능력 있고 배려심 많은 어른이 되었다고 한다. 이 1/3에 속한 아이들이 이렇게 자랄 수 있었던 이유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 부모가 아니더라도 존재했다는 것이다.


다행히 이 소설 속에는 주인공을 도와주는 어른들이 존재한다. 그 어른들 또한 존재감이 강하거나 사회에서 대단한 위치에 있지는 않지만 세심함으로 다른 사람을 살펴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사람들이다. 나는 그런 어른일까? 아님 주인공 부모님처럼 삶에 파묻혀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돌아본다.


아임 어 퀸카를 들으며 춤추는 우리 아이가 스스로가 존재감을 잃지 않는 단단한 아이가 되면서 동시에 다른 이들도 살펴볼 줄 아는 아이가 되었으면 한다. 이 책을 한참 읽고 있으니 아이가 글자만 있는 이 책이 재미있는지 묻는다.


응, 너도 읽어봐.

매거진의 이전글 급할수록 챙겨야 할 디테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