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온 미래: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

by Dancing with Pen

<먼저 온 미래: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 장강명. 2025.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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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대학선배가 책을 선물해줬다. 장강명 작가의 <먼저 온 미래>였다. 인공지능(AI) 이후 바둑계의 변화와 대응을 취재한 르포이다. 주제도 흥미로웠고 기자 출신 작가의 글답게 쉽게 읽혔다.

저자는 바둑계가 머지 않은 미래, 즉 AI 이후의 세계를 먼저 경험했다고 본다. 2016년 3월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승부. 당시 많은 사람이 이세돌 9단의 낙승을 예상했다. 서양의 체스와 달리 동양의 바둑은 경우의 수가 무한에 근사하고 게임의 룰도 훨씬 복잡하기 때문이었다. 바둑판은 작은 우주였고, 바둑은 철학이었다. 감히 기계 따위가 넘볼 수 있는 너무나 인간적인 영역이었다. 결과는 알파고의 4 대 1 완승. 이세돌 9단의 1승은 AI를 상대로 인간이 바둑에서 거둔 마지막 승리였다.


‘알파고 쇼크’ 이후 바둑계는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2022년 11월 ‘챗GPT 쇼크’ 이후 예상된 사회변화의 모습이 바둑계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었음을 책에서 발견할 수 있다. 몇 가지 언급해본다.


우리가 AI를 만들었지만 아직 이 피조물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다. 알파고는 초반에 종종 무리수를 둔다. 인간의 눈에는 명백한 실수다. 그러나 대국이 진행되면서 어느 시점에 이르면 그 ‘어리석은 수’가 판세를 유리하게 만든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바둑인들은 AI의 수를 따라하기 시작한다. 승률이 오른다. 프로들도 예외가 아니다. AI와 가장 비슷하게 수를 두는 신진서 9단은 세계최강이 됐다. (그의 별명은 ‘신공지능’이다.) ‘모르면 외워라.’ 학창 시절 우리의 공부법은 AI 시대를 대비한 성공전략이었던건가? 대한민국 교육은 실패하지 않았을지도.


이처럼 우리가 옳았다고 믿었던 것들이 AI에 의해 쉽게 부정당한다. AI 보급률과 활용도가 높아질수록 여러 분야에서 기존 신념체계가 위기에 맞닥뜨릴지도 모른다. 찬란한 근대철학을 낳은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를 우리는 잊었던 것일까. 아니면 AI 앞에서 인간이성의 근본적 한계가 적나라하게 발가벗겨진 것일까.

새로운 신념체계는 인간과 AI의 협업 속에서 구축된다. 김효정 3단은 오랜 세월 전해져 내려오던 ‘바둑의 정석’이 알파고에 의해 무너졌을 때 해방감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정답이 정답이 아니게 되었으니 바둑을 자유롭게 둘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곧 ‘알파고 정석’이 등장했다. 알파고가 인간의 암기력이 미치는 초중반까지를 담당하고, 바둑기사들은 직관과 개성을 담아 중후반을 맡는다.


저자는 알파고 등장 이후 바둑계가 평평해지고 공평해졌다고 분석한다. 과거에는 노력보다 재능이 바둑 초고수를 만든다고 여겨졌다. 이제는 알파고의 기보를 열심히 외우면 누구나 정상의 자리를 넘볼 수 있다. ‘노력충’이 ‘재능충’을 앞설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 것이다. 알파고가 바둑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이끌 것이란 낙관적 전망(또는 희망)까지 나온다. 세계 어디서든 알파고라는 전지전능한 스승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간 한-중-일 밖에서는 제대로된 코치를 찾을 수 없었으니까.


소설가인 저자는 바둑계의 먼저 온 미래를 취재하면서 자신이 몸담고 있는 문학계의 내일을 계속 고민한다. 예컨대, AI가 매일 수백편씩 노벨문학상급 작품을 써낸다면, 위대한 문학작품의 정의가 달라질까? 지금까지 문학작품의 위대함은 희소성과 무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 본질적인 질문이 이어진다. 예술은 무엇인가. 창의성은 무엇인지. 아니. 인간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한다. AI는 우리가 그간 옳다고 믿은 것이 틀렸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편 명확히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도 까발린다. 적나라한 무지의 폭로이다. 소크라테스의 2500년 전 외침이 다시 울려퍼진다. ‘너 자신을 알라.’


AI 시대 외교는 어떻게 될까? 외교가의 고급 정보는 오픈소스가 아니라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얻는 정보(휴민트)다. AI의 접근이 어려운 기밀 정보를 휴민트로 얻어낼 수 있는 외교관과 그렇지 못한 외교관의 쓸모가 확연히 차이날 것이다. 외국어도 마찬가지이다. AI 통번역으로 전달할 수 없는 뉘앙스를 이해하고 상대방 언어를 직접 구사할 때 나오는 친밀감은 대체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이마저도 현존하는 AI의 능력에 기초한 섣부른 예측이지만 말이다.


바둑계에 먼저 온 미래는 우리 모두에게 닥칠 앞날이다. 바둑인의 고민과 대처를 들여다보면서 나의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책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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