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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아 선생 Dec 18. 2023

액체와 기체의 3교시가 그립다

문학동인 <가향> 2023년 7월 회지 

액체와 기체의 3교시가 그립다


                                   이석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오늘 아침에 박제천 교수님이 돌아가셨대.”

순간 소름이 돋았다. 며칠 전에 교수님과 문자를 주고받았고 보내주신 책을 엊그제 받았기 때문이다. 살고 죽는 일이 정말 미지구나. 올해 78세인데 어떻게  돌아가셨을까? 선생님의 시집 제목처럼 <풍진세상 풍류인생>을 마감한 것일까? 이 시집에 있는 시 ‘오궁도화(五宮桃花)’의 마지막 시구처럼 ‘내가 나를 죽여서 나를 살리는 / 완생(完生)의 묘수를 찾아야겠다.’를 터득한 것일까?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으니 교수님과의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15년 전 일이다. 대학원 다닐 때 서너 명이 교수님 강의를 한 학기 들었었다. 그 때 교수님과 가까이 있기를 다들 피했다. 우리는 수업시간에 강의실 창문을 모두 열어 놓아야 했다. 시, 시론, 시창작, 한국시문학사 등에 대해 열정적으로 강의를 해 주시고 학생들 작품도 귀신처럼 봐 주셨다. 하지만 담배연기 때문에 다들 곤혹스러워했다. 수업 시작과 동시에 담배를 물기 시작하면 서너 대를 태워야 끝이 났다. 어느 날, 골초였던 숙이가 교수님 앞에서 담배를 피우다 크게 혼나기도 했다. 당신은 돼도 제자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가끔은 수업 후 밤늦게까지 3교시가, 학교 앞 족발집이거나 순댓국집에서 이어졌다. 우리는 막걸리와 안주로 허기진 배를 채웠고 교수님은 꼭 와인만 마셨다. 또 안주를 거절했다. ‘기체와 액체로 사는 방산’이라고 자청했다. 1956년 방산국민학교를 졸업했고 동국대국문과를 다녔으며 지금까지 ‘방산재’에서 사숙도 하고 문예지 출판도 했다. 인생이 글, 책, 시, 문학이 전부였다. 

 “시는 상상력으로 가지고 놀아야 한다. 왜 시를 쥐어짜는가? 자연스럽게 놀이로, 재미있게, 시 언어는 도구가 아니오. 예술로, 동양철학을 공부하시오, 장자, 노자 허허허”

선문답 같은 시창작론에 취하고 막걸리에 취하고 우리들의 3교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취해갔다. 학교 졸업과 동시에 교수님과의 인연도 끊기는 듯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교수님이 가끔 전화나 메일로 시를 보내라고 연락을 하셨다. 그 때마다 문예지 <문학과창작>에 내 시가 실렸다.   

  또 두 달 전 전화가 왔다. 

 “나 박제천이오. 요즘 왜 시 발표를 안 해? 시 두 편 보내보시오”

 “아, 교수님 저 요즘 시를 못 써요. 죄송해요.”

 “그러면 안 되지. 시도 쓰고 시집도 내고 해야지. 시 두 편 써 보내요” 

오랜만에 통화를 했는데 교수님 말이 어눌했다. ‘지금 몸이 안 좋다. 휄체어를 타고 생활한다.’ 고 하셨다. 

 “교수님 지금도 식사 잘 안하시고 기체와 액체만 드세요?”

 “허허허 그렇지 뭐” 

 새는 웃음소리에 외로움이 묻어났다. 오늘도 15년 전에 돌아가신 사모님이 무척 그리운 걸까? 자녀들도 해외에 있어 항상 홀로 문학과 시만 끌어안고 계신 교수님 모습이 그려졌다.

 “시가 써지면 시 두 편과 와인 한 병 들고 방산재로 찾아뵈러 갈게요.” 

 “한 번 오시오. 시는 메일로 먼저 보내고”

 그 후 나는 신세한탄 같은 시를 써서 메일로 먼저 보냈다. 그리고 그 시가 실린 책 <문학과 창작>178호를 우편으로 받았고 문자로 교수님과 시와 책에 대해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며칠 전 일이다. 그런데 시 창작을 장려하고 용기를 준 교수님이 내 시가 실린 문학지를 마지막으로 만들고 돌아가셨다. 나는 아직 교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는데......, 교수님이 가지고 계신 그 많은 해박한 지식과 시창작 비법과 우리나라 문학의 길을 걸어오면서 겪은 이야기들을 우리는 잃었다. 인디언들의 말처럼 정말 훌륭한 ‘하나의 박문관이 사라졌다.’ 열정에 빠져 교문 밖으로 나와 3,4교시로까지 이어지던 그 때를 생각하며 시 한 편을 읊조려본다.


 ‘풍진세상 풍류인생’ / 박제천


풍진세상 나 몰라라 한숨 눈을 붙였더니/신선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백마 흑마 갈아타며/세도나 평원을 돌아보고,/혹은 귀신들과 뱃놀이를 즐기며/딴세상 구경에 넋이 나갔는데


이 풍진세상에선 심정지가 왔다고,/8분이나 되었다고 난리 법석이었다


이승과 저승에 한 발씩 걸친 장주며,/그대 무덤의 풀들아 어서 말라라,/새서방 만나보자, 허위단심 부채질하는/그대 아내도 걸작이지만


신선놀이 삼아/섬망마저 즐기는 홀아비의 극락,/그 누가 감히 방해하랴


이 풍진 세상에 다시 돌아왔으니,/어쩌겠나, 또, 한 살이 잘 살아보세. 



*2023. 6. 10. 



*이석란 - 시 등단 필명, 본명-이석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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