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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아 선생 Dec 21. 2023

세상 따라가기(항공권 구매)

문학동인 <가향>2023년 10월 회지  

세상 따라가기


                             이석례



 어떤 경우 선택을 빨리 하는 것이 득이 될 때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얼리버드(early bird) 항공권 티케팅이다. 오늘 나는 이 짓거리로 몇 시간을 긴장감 있게 보냈다. 요즘 시간이 남아도는 잉여인간 삶을 살기 때문에 마치고나서 화가 나기보다는 웃음이 나왔다. 

 비행기표를 항공사에 전화해서 사면 제일 편하고 안전하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이 든다. 먼저 대한항공 홈페이지에 들어가 직접, 떠날 곳과 출발 일을 정해 앞 뒤 1주일 항공권 가격이 얼마인지 알아봤다. 그 다음 아시아나항공 홈페이지로 옮겨 똑 같이 알아보니 얼리버드 항공권이 ‘이코노믹 특가’라는 이름으로 살 수가 있다. 출발 361일 전부터 표를 구매할 수 있다. 올 여름이 너무 더워서 내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딸에게로 가서 혹서(酷暑)를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지금 항공권을 사려고 한 것이다. 왜냐하면 다음 달이면 유류할증료가 올라가니 항공권도 더 비싸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5월 말경 샌프란시스코 가서 8월 말경 인천으로 오는 왕복 특가가 있기에 클릭을 했다. 양쪽 다 성수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도 확인을 했고, 사실 이것은 인터넷 상으로 알 수가 없어서 항공사서비스센터에 전화를 해서 알았다. 앞으로 어떻게 가격변동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지금으로서는 제일 좋은 가격으로 살 수 있게 돼서 기분이 들떴다. 여행 비행기표만 일단 구매해 놓아도 뭔가 설렘이 생기고 에너지가 올라온다. 그런데 결재 단계에서 막혀버렸다. 나는 컴퓨터 없이 노트북만 사용하는데 내 노트북으로 어떤 결재도 해 보지 않았다. 

 몇 년 전 페루에서는 일단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하면 정해진 시간 안에 은행에 직접 가서 입금하라고 항공사 계좌번호를 알려 줬었다. 그 생각이 나서 항공사에 전화를 했다. 요즘 이런 서비스전화는 1588, 1544 등으로 연결되고 몇 분씩 기다려야 된다. 정말 성질 급한 사람은 뒷목 잡고 자빠질 정도라서 기다림의 미학이 필요하다. 그래도 인내를 갖고 기다렸다가 연결이 됐다. 인터넷으로 구매하는 방법은 결재까지 온라인에서만 해야 하니 도와 줄 수 없다는 것이다. 항공사에 전화해서 즉 유선으로 구매할 때는 3만원이라는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단다. 통화하다 웃으며 “인터넷을 못하면 돈이 많아야겠군요.” 하면서 서로 수고했다는 친절로 전화를 끊었다. 

 짜증이 올라온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다. 차를 한 잔 마시며 다시 모바일 앱에서 해보기로 했다. 예약을 걸어놓고 10분 안에 결재를 안 하면 도루묵이 된다. 핸드폰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항공권이 시간에 따라 가격변동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을 졸였는데 다행이 노트북과 똑 같은 내용에 접속이 됐다. 결재에서 또 내가 사용하고자 하는 카드 앱을 설치하라는 문자가 떴고 나는 또 그대로 실행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슨 ‘proxy 연결 설정 해제’가 안돼서 안 된다는 문자만 계속 반복했다. 이제는 ‘돈 쓰기도 어려운 세상이 됐구나.’ 한숨이 나왔다. 비행기 탈 때 다른 사람이 표를 사서 이메일로 보내주는 것에 맛 들어 있다가 누구 도움 없이 혼자 내 입맛에 맞게 하려니 어려웠다.

 허긴 키오스크 사용이 불편해 햄버거 사먹기를 포기 하거나, 날로 핸드폰 화면을 채워나가는 앱 세상에다가, 큐알 찍기, 더 황당한 것은 이런 걸 못하면 구걸도 못하는 세상이 됐다는 것이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다. 이번에는 카드회사에 전화를 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카드 좀 긁게 해 달라고 사정하는 꼴이 됐다. 대답은, 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단다. 내 핸드폰 설정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단다. 이제는 상대 말도 잘 이해할 수가 없다. 아이폰만 노려보다가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했는데 기다리다 기다리다 저절로 끊어지고 말았다. 여기서 더 바보짓을 했다. 통신사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 KT에 전화해서 하소연을 했다. KT도 proxy를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기기변경에 대한 달콤한 말만 듣다가 전화를 끊었다.

 현금 계좌이체를 하면 끝나는데 이쯤에서는 오기가 생겼다. 또 카드는 무이자 할부도 되기 때문에 포기 할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사용하고자 하는 카드 대신 다른 카드를 꺼냈다. 이래서 신용카드도 여러 개가 필요하다. 요즘은 아이디와 비밀번호 수렁에 빠져 허둥댈 때가 다반수다. 이 카드는 암호를 넣고 핸드폰 신분 확인을 하고 어찌 어찌 3개월 무이자 결재가 완료됐다. 몇 백 미터 등산에 성공한 듯 “야호” 소리가 튀어나왔다. 돈이라는 화폐가 손가락 끝에서 톡톡 왔다 갔다 한 것이다. 나중에 핸드폰 화면에 뜬 항공권만 비행기 앞에서 보여주면 나를 샌프란시스코까지 데려다 줄 것이다. 참말로 요상한 세상 따라가기 쉽지 않다. 


*아르헨티나 여행 중 이층버스에서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



*페루 트루히요 시청에서 아르마스 광장을 배경으로 



*미국 스포켄에서 "귀여웠던 벨라(딸의 애완견)야 무지개 나라에서 잘 있지?"


*시애틀 스페이스니들에 올라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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