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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st May 12. 2021

편리함과 수고스러움

온라인 이주민과 원주민의 매체 감각

1. ‘무개념’ VS ‘구닥다리’


2009년 정도의 일로 기억합니다.


수업 조교로 일하면서 수강생들에게 리포트를 나한테 제출하라고 안내하고, 이메일 주소를 가르쳐 줬죠. 수강생   명이 ‘○○ 수업 리포트 제출이라는 제목으로 보낸 이메일을 열어 보고는 황당했습니다.


이메일에는 학번과 이름, 첨부 파일 말고는 아무 내용이 없었거든요. 이메일이라 해도  편지나 다름없이 으레 계절 인사로 시작해서 끝인사에다가 추신까지 덧붙이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계절 인사는커녕 안녕하세요조차도 없는 이메일이라니….


학생의 ‘개념 없음 질타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 최소한 인사와 용건 정도를 밝히는  예의라는 답장을 보냈죠.


답장을 확인한  학생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학생은 저의 ‘구닥다리스러움에 황당해 했을까요? 한글97 리포트를 작성해 제출했다가 손으로 작성한 리포트만 받아준다는 교수님의 구닥다리스러움에 황당해 했던 97학번 새내기 시절의 저처럼 말이죠.




2. 온라인 공간의 작은 역사


1) 온라인 이주민과 신대륙의 질서


한국에서는 1997년 PC 통신이 본격화되기 시작했습니다. 1998년에 초고속 인터넷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보급되면서 온라인 커뮤니케이션도 폭발적으로 확산되었죠.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가, 기술이 아니라 공기와 같은 일상으로 존재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입니다.


학생과 젊은 직장인을 중심으로 오프라인 공간에서 온라인 공간으로 집단 이주가 본격화 되었고요. 지금은 30대 중반이나 4, 50대 정도가 되었을 온라인 이주민이 탄생한 겁니다.


온라인 이주민은 ID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고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넘나들며 빠르게 온라인이라는 신대륙을 개척해 갔습니다. 글자나 단어를 다루는 방식이 오프라인 세계와 변별되기 시작했고요. 익명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질서를 공유(communis)하는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초창기 신대륙의 질서와 규칙은 새롭게 만들어지기 보다는 오프라인의 질서를 모방하는 것에 가까웠죠.


예를 들어, 이메일은 과거의 손편지와는 완전히 다른 기술과 시스템이 적용된 매체입니다. 하지만 초창기에 이메일을 보내는 형식과 체계는 손편지와 큰 차이가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계절 인사를 쓰고, 안부를 묻고, 용건을 말하고 끝인사로 마무리되는 손편지의 감성을 차용했죠. 예의와 격식이라는 커뮤니케이션의 심층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겠죠.


2) 스마트폰과 혼성 공간


2009년말 아이폰이 국내 출시되었습니다. 열흘만에 20만 대 이상이 팔리는 폭발적인 반응에  비싼 데이터 요금제로 수익을 올리던 통신사들은 화들짝 놀라며 저렴한 무선 인터넷과 무료 와이파이를 서비스하기 시작했죠.


이제 커뮤니티의 댓글이든 이메일이든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고요.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실시간 대화와 다를 바 없는 상호작용이 가능해 집니다.


시간만이 아니라 공간의 구성도 변화가 나타납니다. 아이폰을 비롯한 스마트폰에는 GPS가 장착되어 있습니다. GPS는 오프라인 공간 정보를 실시간으로 온라인 공간에 제공하는데요, 오프라인과 온라인 공간이 상호작용하면서 두 공간의 경계도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합니다.


이제 지도앱에 점으로 표시된 내 위치를 보며 길을 찾는 것도, 내가 다니는 길 한복판에 출몰한 디지털 몬스터를 스마트폰 화면으로 보면서 사냥을 하는 것도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습니다.


온라인 이주민이 활약하던 이전 시대만 하더라도 오프라인과 온라인은 on/off 버튼을 작동시키는 것만큼 경계가 명확한 세계였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on/off 버튼이 큰 의미가 없듯이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간의 경계가 모호해졌습니다.




3. 언어 사용과 매체 사용의 감각


1) 활자 텍스트와 이미지


한국의 모바일 인터넷 환경은 이제 대중적 확산의 단계를 지나 일상의 배경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2020)에 따르면 한국 전체 가구의 99.7%는 온라인 접속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온라인 접속자의 99.9%는 무선인터넷으로 온라인에 접속합니다. 그리고 만 6세 이상 인구의 93.3%는 모바일 기기를 보유하고 있고요.


양적인 면에서 세대나 지역의 편차가 크지 않지만, 매체를 다루는 모습은 세대별로 차이가 있습니다. 대학내일 20대연구소(2019)에 따르면 1995년~2004년 출생자들은 일상적인 대화를 할 때 67% 가량이 문자 메시지 사용을 선호한답니다. 반면에 7,80년대에 태어난 온라인 이주민들은 61%가 전화 통화를 선호한다네요.


어떤 매체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랐느냐에 따른 차이겠죠.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매체와 함께 성장하며 스마트폰도 빠르게 접한 온라인 원주민에게는 문자 메시지가 너무나도 친숙한 방식이기 때문이죠.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볼까요?


똑같은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행위라고 하더라도 온라인 이주민과 원주민의 감각은 다릅니다. 온라인 이주민이 ‘읽고 쓰는’ 행위로 문자 메시지를 다룬다면 온라인 원주민은 ‘보고 누르는’ 행위로 문자 메시지를 다룹니다. 문자를 활자로 인식하느냐, 이미지로 인식하느냐의 차이죠.


칠판에 판서를 따라서 필기를 하는 것이 당연했던 세대와 칠판의 판서조차도 사진으로 옮겨 담을 수 있는 세대의 차이고요.


‘띵작’이나 ‘댕댕이’, ‘롬곡옾눞’ 같은 신조어들도 활자 텍스트를 이미지로 인식하는 온라인 원주민의 소행(?)이죠. 그들에게 활자는 읽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는 것이고, 소리가 아니라 모양이 중요합니다.


활자 하나 없이 이모티콘과 짤방만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모습이나 글자를 변형시키는 행태가 장난스러워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텍스트가 이미지나 다름없는 온라인 원주민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행태입니다.


2) 매체 생태계의 수고스러움과 편리함


직접 만나러 가는 수고스러움을 손편지가 대체했듯이, 이메일은 손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기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대체합니다. 하지만 편리한 대체제가 생긴다고 해서 기성 매체가 갑자기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TV가 출현했다고 해서 영화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요. 매체 생태계 안에서 기성 매체와 새로운 매체는 역동적으로 서로를 보완하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해 새로운 매체와 기성 매체는 역할에 따라 구분됩니다. 이메일 서비스 초창기의 제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일상적으로 이메일을 사용하다가도 조금 더 진지함을 요구하는 관계이거나 상황일 때는 이메일이 아니라 다른 방식을 고민했습니다.


가령 지도교수님께 뭔가를 요청해야 할 상황이라면 연구실 문을 직접 두드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고백이라도 해야 할 상황이라면 이메일은 진심을 담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죠.


카톡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만약에 카톡이 일상적인 대화를 완전히 대체한다면 카톡 고백과 만나서 고백하는 것의 질적 차이는 없어야겠죠. 하지만 그런가요? 아니죠. 상황의 차이 때문입니다. 고백은 화자와 청자의 관계나 메시지가 가지고 있는 부담이 최고로 무거운 상황입니다.


적어도 커뮤니케이션 매체 생태계에서만큼은 편리함은 가벼움이고, 수고스러움은 진지함과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편리함과 수고스러움으로 구분하자면 자판을 여러 차례 눌러야 하는 활자는 수고스러움이고 터치 한 번이면 끝나는 이미지는 편리함이 되겠네요.


화자와 청자 사이에서 서열이 명확할 때 상급자의 활자 메시지에 오로지 이모티콘이나 짤방만으로 반응을 하는 것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면 가벼움과 진지함의 서열이 작동하고 있는 겁니다.   


3) 매체와 서열


언어 사용은 단순히 단어와 문법을 적절하게 선택해서 문장을 조합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상황에 대한 고려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상황은 다양한 요소로 구성되지만, 내가 지금 대화를 하고 있는 상대방과의 관계는 무엇이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가벼운 것인지, 심각한 것인지 정도가 핵심일 겁니다.


상황을 구분하는 것은 달리 말해 대화 상대방과 나의 지위에 따른 서열, 메시지가 지니는 중요도에 따른 서열을 인식하는 겁니다. 상황에 맞지 않는 말투를 선택하면 서열을 어기는 것이고, 서열을 어기면 예의 없다는 평가가 돌아오기 마련이죠.


외국인과 대화해 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외국인과 대화를 하면서 외국인이 잘못 사용하는 단어나 문법은 충분히 이해하면서 묘하게 기분 나쁜 느낌이 든다면 대개는 외국인이 상황에 맞지 않는 말투를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서열은 책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학습되는 것이기 때문에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책 몇 권으로 단기간에 배울 수 없죠.


커뮤니케이션 매체가 다양한 요즘 시대에는 상황에 맞는 매체의 서열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한 격식이라고 봅니다.


일전에 특강을 할 기회가 있어서 학생에게 매체 서열에 대한 인식을 묻는 몇 가지 질문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특강이 끝난 후 자리에 참석하셨던 지도교수님은 학생들의 답변을 들으면서 자신과 다르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끼셨고요.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한 번 주변에 세대 차이가 나는 사람에게 아래를 참고해서 질문해 보고 차이를 느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기본 전제는 상대방과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상황

빌린 책을 잃어 버려서 사과를 하는 상황 / 몇 만 원 이상의 돈을 빌려야 하는 상황 / 돈을 빌려준 상대방이 돈을 갚지 않아 돈을 갚으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상황은 더 자유롭게 설정하셔도 되고요. 사과나 요청을 비롯해서 다양한 행위를 가정해 보세요)

친밀도가 높은 상대방 / 친밀도가 그리 높지 않은 상대방

동료/상급자/하급자

각각의 상황에서 당신이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선택하는 매체는?



어떤 답이 나올지, 제 가정대로 상황에 따라 세대별로 매체 선택의 변별이 나타날지 저도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이 많은 저도 매체를 언어 사용의 격식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로 인식한 게 얼마 되지 않았고 여기에 대한 실증적이고 경험적인 연구도 진행된 것이 없거든요.


물론 편리함과 수고스러움의 서열은 규범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암묵적인 합의입니다. 긴 시간에 걸쳐 형성된 다른 합의를 깨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매체 선택만큼은 서열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울 수는 없는 걸까요?


4. 사족 – 굳이 왜 수고스럽게?


팀원들과 이야기 할 때 메신저를 사용합니다. 코 앞에 상대방이 앉아 있는데 굳이 왜 수고스럽게 메신저를 사용하나 싶어서 종종 얼굴을 보며 말을 겁니다. 그럴 때마다 상대방은 메신저로 하면 될 걸 굳이 왜 수고스럽게 말로 하냐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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