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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st Jul 11. 2024

그거 정말 사용자가 원하는 게 맞나요?

타이틀 이미지는 저작자를 표기하고, 무료로 사용 가능한 이미지입니다.

(마이 멜로디를 타이틀 이미지로 하고 싶었지만, 저작권 때문에…)

사진: UnsplashSolen Feyissa



0. 마이 멜로디가 보낸 편지


딸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이번 달에 생일을 맞은 딸에게 편지를 써서 제출하라고 합니다.

생일 선물로 앨범 같은 걸 만들어 주는데, 앨범 마지막에 그 편지를 넣는다고 합니다.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게 읽는 사람의 공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일곱 살 먹은 딸 눈높이에 맞춰서 편지를 쓰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연애 편지를 이만큼 고민하면서 썼더라면 결혼 생활이 지금이랑은 달라졌…)


한 시간 넘게 고민한 끝에

‘아, 딸이 좋아하는 마이 멜로디에 빙의해 보자.’라는 아이디어를 내고,

아빠와 엄마의 부탁을 받은 마이 멜로디가 생일을 축하해 주는 컨셉의 편지를 완성했습니다.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한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하며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편지를 발견한 딸에게 호들갑을 떨면서 말했습니다.


“딸, 아빠가 마이 멜로디한테 부탁해서 마이 멜로디가 편지 써 주고 갔어.”


딸 아이는 가볍게 코웃음 치면서


“마이 멜로디는 만화 캐릭턴데 어떻게 편지를 써 줘. 거짓말 좀 하지마.”


딸이 이렇게나 컸다는 걸 모르고 저 혼자 동심의 나라에 다녀왔나 봅니다.


1. “유저가 AI를 안 원하면 어쩌죠?”


진행하고 있는 커피 매칭 프로젝트 참여 의사를 밝히신 기획자 분과 만났습니다.

사용자가 겪는 불편함, 그 불편함을 해결 해 줄 솔루션으로 LLM 기반의 AI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듣고 나서 상대방이 던진 질문,


“유저가 AI를 안 원하면 어쩌죠?”


전혀 예상을 못 했던 질문이었습니다.


물론 저도

‘우리 서비스는 생성 AI가 당신의 취향을 분석하고 매칭해 줍니다.’

뭐 이런 식으로 사용자들에게 기술을 어필하는 건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용자가 원하는 거, 궁금한 거는 기술이 아니라,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방법일 테니까요.

사실 제가 생각하는 솔루션의 핵심이 생성 AI와 LLM 관련 기술들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저 질문을 듣고 나서, 최적의 솔루션이 정말 LLM과 생성AI 기술인지,

더 나아가 내가 문제와 가설을 제대로 정립했는지 다시 점검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2. 기술 적용의 딜레마  


지금 직장에서 소규모 프로덕트 팀의 PM/PO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개발하고 있는 프로덕트는 큰 틀에서 보자면  생성 AI를 활용한 텍스트 생산 작업 효율화, 창의력 보조 도구입니다.  

사용자들에게 생성 AI를 활용해 유효한 작업 초안을 제공해 주는 것이 핵심 기능입니다.


아마 생성 AI를 활용한 비슷한 개발을 경험해 보신 분이라면 알겠지만,

초반 데이터가 부족해 충분한 성능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로 개발이 진행되기도 합니다.

이럴 때 제가 겪는 딜레마는


‘초반 성능이 완전하지 않은데, 런칭했다가 사용자들에게 외면 당하면 어떡하지?’ 하는 것과,

‘사용자가 작업한 데이터가 쌓여야 그걸 기반으로 AI 관련 기능의 성능도 향상되는데…’ 하는 겁니다.


팀에 개발자 분이 AI 컨퍼런스에 참여했다가 국내 IT 대기업이 출시한 AI 서비스 성능이 너무 엉망이라,

욕이 나올 뻔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여기도 사용자 데이터를 확보해서 기능 고도화를 하겠다는 계산이겠지만,

초반부터 사용자에게 실망감을 주게 된 사례겠죠. 그게 서비스에 플러스일 리는 없고요.


사용자 조사를 해 보면 구현하고자 하는 핵심 기능과는 별개로

사용자들이 필요로 하는 기능은 따로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듭니다.

(그럴 때는 과감하게 방향을 전환하고 시간을 들여서라도 진짜 사용자가 원하는 걸 만드는 게 정답이겠지만,

최종 결정 권한이 없는 PM/PO로서 설득력 있는 성능 고도화 계획을 수립하는 게 최선인 것 같습니다.)


3. 마무리


저를 믿지 못 하는 딸 아이한테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GPTs를 사용해서 마이 멜로디 챗봇을 만들고 있습니다.

나름 제가 원하는 의도대로 대화가 되는 듯합니다.

조금만 더 건드리면 제 딸에게 정말로 마이 멜로디와 대화하는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용자가 원하는 게 기술은 아니겠지만,

기술이 정말 놀랍게 발전한 건 맞습니다.

기술이 곧 솔루션은 아니지만, 솔루션에 기술을 더하면 많은 걸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을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 스쳐 지나가는 의문 하나…


‘근데, 내 딸이 요즘도 여전히 마이 멜로디를 좋아하는 게 맞나?’


딸이 요즘에 좋아하는 게 뭔지를 파악하는 게 순서겠군요.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스페셜티 입문자와 애호가들, 더 나아가 커피를 즐겨 마시는 모든 사람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 일상의 커피 문화를 좀 더 다채롭게 만들어 나가는 솔루션을 찾고자 합니다.

사용자 조사를 통해 문제를 정의하고, 솔루션을 함께 고민해 나갈 분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커피챗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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