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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브랜딩
Nov 13. 2024
엄마가 두려움을 감추는 방법(ft.애어른과 어른아이)
엄마의 브랜딩 024
엄마는 엄마가 되기 전 여자였다고 한다. 여자는 어릴때부터 많은 것들을 혼자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아니, 그런 사람은 아니었겠지. 그런 상황이었다.
한가지씩 뭔가를 해내야 할 때마다 박스 안에 감정을 넣어두고 나갔다. 두려움, 무서움, 떨림, 긴장감. 차곡 차곡 쌓여간 상자는 여자가 어른이 되자 큰 상자로, 그리고 더 큰 상자로 바뀌어져갔다.
여자가 어른이 되어가는 동안, 사람들은 씩씩하게 혼자 잘한다고 늘 칭찬을 했다. 여자는 시니컬하고 무심하게 비웃었다. 아마, 감정들을 박스안에 모두 숨겨뒀기 때문에 기뻐할 감정이 남아있지 않았으리라.
공허한 하루들이 지났다. 결혼을 하면, 좀 더 따뜻해질까, 아이가 생기면 좀 더 채워질까. 차가운 동굴속 같은 내면은 배고프다고 춥다고 아우성을 질렀다. 그럴때마다 여자는 그 아우성들을 꽁꽁 얼렸다. 그렇게 단단해지면 조용히 꺼내 다시 박스안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여자는 엄마로 불렸다. 공허했던 동굴에 작은 불씨가 생겼다. 불씨 옆에 가면 언제나 따뜻했다. 아기가 잠들면 여자는 아기 발을 잡고 옆에 누워 잠이 들었다.
세상은 여전히 무서운게 많았고, 어려운 것도 많았다. 하지만 이젠 엄마가 된 여자였다. 박스는 더 커진채 여자의 앞에 있었다.
아주 아주 조용했던 어느날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박스는 더 이상 커지지 않았다. 커지지 않으니 쌓아올린 감정 덩어리들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박스가 찢기면서 와르르 쏟아졌다.
박스안에 감정을 넣으러 갔던 여자엄마는 그 덩어리들에 깔렸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나오지 않았다. 비명을 지르지 않는 것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납작하게 깔려 있던 여자엄마의 손 끝에 거울이 잡혔다. 아깐 없던 거울이었다.
거울을 들여다 볼까 하는데 겁이 났다. 왜 겁이 났는지 모르겠다.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절대 마주하고 싶지 않은 뭔가를 마주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짓누르는 덩어리들 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하지만 여자는 엄마였다. 빨리 덩어리를 치우고 아이에게 가야했다. 여자 엄마는 차가운 거울의 질감을 느끼며 이를 달달 떨며, 들여다보았다.
애어른인척 하는 어른아이가 보였다. 꼴보기 싫었다. 빨리 어른이 되어서 아이를 지켜야 하는데, 왜 너는 아직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거냐! 왜! 눈에 불을 켜고 소리를 질렀다. 거울 속의 애어른도 어른아이도 울고 있었다.
여자엄마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사실을 내가 인정하지 않아서, 박스가 더 이상 커지지 않았다는 것을. 더 커져서 더 쌓였으면 나중엔 깔려 영원히 못일어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애어른은 어른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어른 아이라는 아이의 내면으로 채워져 있었다. 거울을 보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 아이인 자신을 보기 싫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여자엄마는 주륵주륵 울었다. 깔아뭉갠 덩어리들이 눈물에 주르륵 녹아없어질 때까지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자 덩어리들은 조약돌만한 크기가 되어 옆에서 데굴거리고 있었다.
나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진짜 어른. 애어른말고, 내면이 단단한 진짜 어른, 어떤 것이든 어른 스럽게 다 해낼 수 있는 그런 어른. 파도가 몰아치고 태풍이 불어도 툴툴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어른.
그래서 그렇게 내 안의 부족한 점과, 연약한 점들을 보면 나에게 화를 내고 겁을 먹었었나 보다. 그랬던 순간을 이제 수용하기로 했다. 더 이상 박스에 덮인 마음을 담지 않고, 부족하든 말든 그대로의 나를 수용하고 키워가고 싶다.
겁을 냈던 크기만큼, 사실은 나는 살고 싶었고, 단단하고 싶었고, 나를 지켜주고 싶었다. 진짜 용기와 힘을 이제 애어른에게 맡기지 않는다. 어른 아이의 손을 잡고 간다.
-개쫄보의 나를 마주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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