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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n Park Jul 27. 2021

배경을 캐릭터화한 초자연적 이야기, 영화 <랑종>


<사진 제공 - 쇼박스>  



나홍진 감독은 첫 장면에 집중하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나홍진 감독의 연출작은 아니지만  그의 색이 묻어난 태국 이산이란 지역의 특색을 첫 장면에 펼쳐 놓는다. 태국은 불교국가이지만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처럼 토속 민간 신앙들을 배척하지 않고 용인하고 결합하였고 이런 토속 민간 신앙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숲, 산, 논, 밭, 나무 모든 것에 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마을 곳곳의 신당과 제사를 위한 제물들, 깊은 숲 한가운데 석상 등을 볼 수 있다. 또한 영화 <랑종>을 보면 불교와 토속 신앙 외에 천주교까지 등장한다. 산 프라품과 남근 수호상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보통 남근 수호상은 다산의 의미로 알려졌는데  영역의 표시로도  해석한다. 지배력을 과시하는 남성의 생식기를 세워 놓음으로 이방인을 위협하고 영역을 지키는 목적으로 사용한다.  2013년 이산 지방 남자들은 수면 중 이유 없는 죽음에 이르는 사건이 일어나자 집집마다  붉은 옷을 걸어두어 귀신을 막는다 믿기도 한 사건을 그대로 표현하였다. 이처럼 배경을 캐릭터화하여 '랑종(무당) '이란 세계에 접근한다.




<사진 제공 - 쇼박스>



영화 <랑종>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무당 가문의 피에 관한  달간의 기록을 다루고 있다. 랑종은 마음과 영혼을 치료해 주는 신과의 인간에게 있어 중간자 역할을 한다. 밍의 치유를 위해 감추어진 일을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과거에 접근하는 점복(占卜) 과정을 거쳐 결국 해원() 이른다. 화를 피하고 복을 구하는 샤머니즘의 본질을 따라간다. 랑종인  (싸와니 우툼마) 님의 언니 노이 (씨라니 얀키띠칸), 신내림 증상을 앓고 있는 님의 조카  (나릴야 군몽콘켓) 가족사가 밝혀진다. 노이가 안락한 삶을 꿈꾸며 신내림을 거부하고 결혼하여 사는 동안  너머엔 의식하지 못했던 가리어진 죽음이 있었다. 침묵의 뿌리에서 자란 억울한 죽음을 기억하는 악령들은  죽음을 망각하는 인간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태초의 인간이 하나님 ()과의 약속을 어기게 되어  죄가 자손에게까지 이어진다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처럼 밍에게 일어난 일은 거부할  없는 숙명처럼 다가온다. 근세에 많은 전쟁을 겪은 태국은 국토가 피폐해지고 남성들이 많이 희생되어서 모계 중심으로 가권 (집안을 다스리는 권리)  형성되었다.  모계사회의 특징이 영화에도 어느 정도 반영된 걸로 보인다.  



평생 바얀 신을 섬겨왔지만 도움을 구하는 님(싸와니 우툼마) 에게 바얀 신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밍을 둘러싼 어떤 일에도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선한 신이라 믿고 따랐지만 악령의 존재 앞에서 신은 모두를 방관한다. 님의 고백은 그런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흔들림을 보여준다. 고통 속에서 신에게 의지하는데  힘없는 존재란 것만 더 깊게 느껴질 뿐이다. 인간의 느끼는 공포의 근원은 무지 즉 깨치지 못해서 아는 것이 없음이다. 밍에게 들어간 악령의 실체를 몰라서, 왜 밍이어야 했는지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두려움은 부피를 키우며  덮친다. 어쩔 수 없는 운명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한 감정을 극대화하면서 살육의 현장 가운데에 모두가 갇힌다. 공포 영화가 다루는 죽음, 분노, 죄의식, 원한 같은 원초적 감정은 인간 누구나 갖고 있지만 평소에 표출하지 않은 억눌린 감정이다. 그 감정들은 곳곳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절정을 향해 달려가면서 가속을 밟는다.




영화 <랑종>은 표면적으론 현실에  기반을 두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관객이 동의할 때 진실이 되고 진정성이 되는 다큐멘터리란 형식을 차용했다. 관찰을 통해 진실에  접근하는 서사 구조를 갖고 있다. 살아있는 광경과 살아 있는 이야기로 허구를 전혀 사용하지 않거나 거의 사용하지 않는 듯하게 보인다.  영화 <랑종>의 페이크 다큐란 설정은 전혀 테크닉이 아닌 척한다. 하지만  영화적 테크닉에 대해  의심되는 부분을 만든다. 그리고 그 형태와 서사 구조가 픽션 영화와 얼마나 유사한지 보여준다.  계획된 카메라에 의해  만들어진  인물은 촬영 대상이 되어 연기를 하고  촬영 후  편집, 효과 및 음악 등의 추가적인 조작을 통해 이야기의 완성에 이른다. 하지만 진실에  도달하기 위한 창조적 접근으로 보기엔  거칠고 자극적인 면도 보인다.  <곡성>, <랑종>에 이은 또 다른 이야기가 존재하는지, 카메라 안에 담기지 않은 신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여전히 물음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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