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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n Park Aug 05. 2021

고립을 통해 얻은 믿음, 영화 < 모가디슈>

2017년  당시, 류승완의 <군함도>가 개봉했을 때 군함도는 "덧셈의 영화 "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는 "뺄셈의 영화"라고 생각되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를 다루면서 많은 질타와 논란을 통해  류승완 감독의 이번 영화 <모가디슈>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한편으론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팔짱 끼고 개봉을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결론을 먼저 이야기한다면 류승완 감독은 고립의 상황을 체험적 비주얼로 구현하는데  기술적으로 심혈을 기울인  결과물을 선보였으며  고립된 인물들이 겪는 공포와 긴장감을 고스란히 전했다.


<사진 제공 - 롯데 엔터테인먼트>



아프리카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있었던 일, 즉 실화를 소재로 생생한 리얼리티를 담았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인 1990년, 남과 북이 유엔에 가입하기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벌인다. 당시 유엔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아프리카의 표가 필요했고 북한의 외교력은 우리보다 더 우세했다. 그런 외교적 지형을 보여주지만 배경이 되는 소말리아란 국가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영화 상에는 제한되어 있다. 내전이 일어나는 여느 국가처럼 테러가 먼저 일어나고 사람들은 동요하여 폭도가 되며 군부의 권력 장악이 일어나는 과정이 펼쳐진다.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내전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죽는 참상이 벌어졌다"는 건조한 뉴스 한 줄은 마음에 직접적으로 닿기 어렵지만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의 이야기는 뜨겁게 다가온다. 낯선 제3국 아프리카 대륙에서 사선을 넘나 들면서 남과 북이 동고동락하면서 힘을 합쳐 탈출한 것은 외교사에선 큰 사건이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저널리즘이 말해주지 않은 것을 영화는 알려주는 역할을 하면서 독특해지고 탄탄해지는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내전으로 인해서 공간이 점차적으로 변한다. 그 공간 안의 인물들도 위기에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수시로 변화하는 시국에 심리적으로 동요하는 모습을 보인다. 인물의 심리적 모습과 변화에 집중한다. 화려한 카 체이싱은 긴박한 상황에서 탈출을 위한 절박함으로 류승완식 몸 액션은 인물의 성격을 표현한다. 남북이 만나는 과정이나 탈출의 도구가 된 차량의 이야기에서 허구가 어느 정도 개입했지만 이미 스크린과 현실의 창은 겹쳐지게 느낄 정도로 몰입감이 생긴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현실은 탈출 서사에 기술을 더하고 류승완표 휴머니즘을 입혀 긴박하고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사진 제공- 롯데 엔터테인먼트>



건조한 흙바람, 쨍한 햇볕, 무더위를 표현한 옷들, 덜덜 거리는 선풍기 소리, 모기향 등은 이미지를 확장하며 촉감을 더한다. 아프리카의 전통 음악 느낌의 리듬들은 맥박을 가속한다. 유앤미 블루의 음악을 좋아하지만 방준석의 영화 음악은 과하다 느낄 때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절묘하다. 특히 영화 <모가디슈>는 탈출 서사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조명과 카메라 워크 기술은 뛰어났다. 무엇보다도 현장의 빛을 이용한 프랙티컬 라이트(Practical Light)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낮에는 자연광, 밤에는 촛불, 렌턴 등을 이용하였다. 인위적인 것을 배제하여 모가디슈에 고립되어 있는 환경을 만들어서 공포와 두려움, 낯섦, 경계심, 긴장, 온갖 감정들이 생동감 있게 배우들의 열연으로 표현되었다. 100% 해외 로케이션이 주는 이국적인 풍광과 30여 년 전의 시대 룩을 만들기 위해 사용된 아나모픽 렌즈와 빈티지 렌즈인 자이스 스탠더드 프라임은  더 영화적으로 보이게 하였다.  넓은 종횡비, 놀라운 피사체의 심도, 타원형 보케(Bokeh; 초점이 맞지 않는 곳에서의 흐려짐(blur)을 가리키는 것 )를 영화 <모가디슈>의 장면에서 볼 수 있다. 이처럼 아나모픽 렌즈가 주는 실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물리적 효과 외에 정서적 감정의 효과도 있다. 씬 별로 감정을 잘 표현하기 위해 적절한 렌즈를 찾는 것은 당연하다. 렌즈의 종류나 브랜드가 아닌 렌즈가 이야기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영화 <모가디슈>는 잘 보여준다. 장면마다 감정 이입하고 집중하게 하는 것은 이야기를 이끄는 힘과 영화적 기술의 균형에 있다.



30여 년 전 모가디슈에서 일어난 일들이 여전히 그곳에서는 일어나고 있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곳은 그날 남북이 겪었던 무시무시한 현실이 오늘이고 내일이다. 그래서 과거의 이야기이지만 여전히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현재 남북 관계는 시시 때때로 변한다. 좋지 않을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다. 하지만 타국에서 위기상황에 처하게 되면 남북한이 다시 한 번 손을 잡을 수 있을까? 영화 <모가디슈>는 건조한 아프리카란 곳에서 세상에 드러낼 수 없는  감정의 물기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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