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지막으로 브런치에 글을 올린 건 5월.
그리고 6월부터 8월까지는
나에게 또 다른 힘든 시간들이 다가왔다.
서울에 온 나의 상사는 카페로 나를 부르더니
자신의 reflection이라며,
나의 1년 동안의 힘든 시간을 충분히 이해하며
자신이 뽑았기에, 더 책임감을 느끼고,
내가 더 좋은 곳에서 일할 수 있게
팀장에서 stepping down 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 아닌 제안을 했다.
오롯이 그런 좋은(?) 취지였으면 좋았겠다만,
우리의 대화는 거기가 시작점이 아니었다.
본인의 퇴사가 정해져 있고,
본인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정리를' 하고 싶다는
책임감?으로,
그녀는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는 것이 맞다고 했다.
즉, 애써 그녀의 오른팔을 위하여 팀을 해체하고,
새로운 팀장으로 나를 채용하고 했던 이 모든 것을
다시 팀을 하나로 합치고,
팀장이 두 명일 수는 없고
(맞다고 응수했다.
애초에 같은 직무의 팀을 둘로 한 것도 이상하다)
그는 종신계약직으로 있기에,
나가도 내가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직 2년 계약직의 평가가 남아있고,
지금 매출도 안 좋기 때문에 headcount줄여야 한다는 것.
지금 당장 나갈라는 건 아니니,
자기가 reference가 되어 줄 테니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렇게 6월의 혼란과 투명인간 취급을 받으면서도
나는 갑자기 3개년 전략을 수립하는 팀에 투입되었다.
그녀의 오른팔이 전략가는 아니라지만 그렇다고 한 들
남아있는 자가 해당 관련 전략을 짜야하는 것 아닌가?
나 보고는 나가달라고 하더니
나는 이걸 왜 내가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역시나 자기가 좀 더 날 도와주겠다는 말만 할 뿐, 그에게는 아무런 업무 변경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혼자 낙동강 오리알처럼
8월까지 다른 부서 매니저들과 전략을 짰고
아무도 관심 없어하는 프로젝트를
혼자서 끙끙거리며 이어나갔고,
도와준다는 그녀는 무관심이었다.
너무 힘들었지만 다행히 좋은 매니저들과
협업하여 최종적으로 여러 부서 앞에서
발표를 하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칭찬했다.
거의 조용하던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발표를 잘한 것이 신기했나 보다.
나는 갑자기 사내 박사님 칭호를 받으며,
또 다른 프로젝트팀을 새로 구상하는 데
일조하게 되었다.
내 자리 나 내가 잘하는 일을 하니
머리와 몸은 힘들어도 뿌듯했고
이 조직에서 내 자리를 찾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슬쩍 스쳤다.
내 퍼포먼스는 내 상사에게 전해졌고
그녀는 한동안 투명인간 취급하던 나를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간 일에 대해서 나를 칭찬했다.
하지만, 그녀와 나는,
아니 나는
우리가 그 후 그 대화에 대해서는 아무런 후속 대화를 하지 않고 있다는 불안감이 계속 있었다.
내 계약 기간보다 그녀가 먼저 퇴사를 할 예정이지만, 어떤 식으로 업무 인수인계가 이루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도 불안하지만, 이제는 내 편이 더 많은 것도 같고, 내년에 새로운 상사분이 오면 나는 살아남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가 '아직은 ‘을'이기에
내가 더 초조한 것도 사실이다.
나에게 너랑은 재계약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표현이
사실상 권고사직이나 마찬가지고
팀장에서 내려오라는 stepping down이
팀원이 되라는 것이 아닌 나가라는 소리라는 것.
그런 내용을 통보받고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그때부터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이직을 준비해야지 했다가
장기전략 수립에 투입되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나는 벌써 10월이 되었고,
솔직히 아무런 이직 준비를 하지 못하고 지냈다.
혹시라도 내가 이 조직에 남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이렇게 그냥 지내도 되나 싶지만,
솔직히 이제 내년도 계획 수립 시즌이라
그 일을 하기에도 여력이 없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지금 팀의 팀장으로 적임자라고
남으라고 위에다 추천해 주길 바라는
드라마 같은 일들이 벌어졌으면 좋겠다.. 하면서
그냥 일만 한다.
착각일 수 있지만
이렇게 알아주지 않는 일들을
묵묵히 하면 알아주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회생활.
난 그렇게 당하고도, 참 일도 열심히다.
이것도 애사심인데…
그냥 오늘에 충실히 사는 연습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