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를 배우려는 강습생들에게, 스키장 강습 편
스키강사로 활동하며 질문받는 것 중 하나가 “어떤 강사한테 강습을 받는 게 좋을까요?”이었다. 그럼 나는, 훌륭한 강사한테 강습을 받으라고 대답한다. 구체적으로 스키를 잘 타는 강사보다는 ‘잘 가르치는 강사’에게 배우라고 말한다.
어떤 강사가 훌륭하다고 불릴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것을 가르쳐야 잘 가르치는 것인지를 알아보자.
스키장에서 강습을 받고자 하는 손님들은 다음과 같은 선택지를 고려하게 된다.
a. 강습경력이 높은 강사
b. 스키를 잘 타는 강사
c. 스키를 잘 가르치는 강사
d. 인품이 출중한 강사 (친절한, 깍듯한, 서글서글한, 예의바른 등등)
이 중에서 가장 선호도가 높은 강사는 a였다. 경력이 높을수록 잘 가르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5~10년의 경력을 가진 강사들이 인기가 많다. 그래서 앳된 얼굴의 강사보다는 연륜 있어 보이는 강사들이 선택받는다.
또한, b 강사도 선호도가 높다. 대부분의 손님이 “스키를 잘 타는 강사에게 배울 수 있도록 해주세요.”라고 요청한다. 잘 타는 사람이 잘 가르칠 수 있지 않겠냐는 심리다. 그리고 그런 강사에게 배운다면, 실력을 그대로 습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유에 포함된다.
그래서 손님들은 처음 스키를 배울 때, 경력 높은 강사 혹은 스키를 잘 타는 강사들을 선택한다. 때문에 그들은 첫 지명률이 다른 강사들에 비해 월등히 높다. 그러나 다시 강습을 신청하는 재강습률은 높지 않을 때가 많다. 오히려 c 또는 d 유형의 강사들이 높은 재강습률을 보인다. 왜 그럴까?
흔하게 거론되는 경력을 살펴보자. A와 B 두 사람이 있다. A는 강습을 10년 동안 해온 베테랑 강사다. 반면에 B는 강사생활을 5년밖에 하지 않았다. 누가 더 잘 가르칠까?
실속을 들여다보면, A는 렌탈샵에 소속된 강사로서 매장 업무도 병행하는 사람이다. 때문에 강습은 하루에 1~2번 많게는 3~5번밖에 할 수 없다. 그러나 B는 5년 동안 강습팀에서 일하며 오로지 강습만을 전문적으로 했고, 하루에 강습을 3번 넘게 하는 강사다.
경력은 A가 훨씬 길지만, 강습 횟수는 B가 더 많을 것이다. 당연히 가르치는 것에 관한 노하우는 B가 더 많이 알 것이다. 나이도 어리고 경력도 부족한 B가 오히려 더 잘 가르칠 수 있다는 말이다. 강습 횟수가 중요하지 강습경력은 중요하지 않다.
이 밖에도, 높은 경력자한테서 보이는 나태함과 방관, 자신의 스타일만을 고집하고 강요하는 자기확증, 흠집 없는 경력을 유지하고자 가르치는 행위와 관련 없는 것에 지나친 에너지를 낭비하는 등도 경력이 우선되지 못하는 사유가 된다. 따라서 경력은 참고할 순 있지만, 우위가 될 순 없다.
손님들이 흔히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잘 타는 사람이 잘 가르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은 엄연히 다르다고 확신한다. 물론 잘 타는 강사가 잘 가르치는 예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강사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기술권 대회에서 입상하고 상위권의 자격증도 보유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기술을 손님들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강사들이 있다. 손님들이 기술을 따라 하지 못하고 헤맬 때, 왜 그러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왜 이 단순한 동작을 따라 하지 못할까?’ 답답해한다.
특히 이러한 현상들은 체육학도생 출신에서 많이 보인다. 그들은 일상이 스포츠와 관련 깊고, 유년시절부터 운동을 해왔기에 일반 사람들보다 운동신경이 뛰어나다. 때문에 스키를 배우는 과정에 있어, 기술을 바로 습득하고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러니 일반사람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반면에 스키 실력은 부족하고 수준 낮은 기술밖에 알지 못해도, 그것을 쉽게 설명하는 강사가 있다. 그게 ‘잘 가르치는 것’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열 가지를 알아도 두세 개밖에 알려주지 못하는 강사보다 열 가지 중에 세 가지만 알아도, 그 세 가지를 전부 알려주는 강사가 훌륭한 강사다. 그런 강사들이 재강습률도 높다. 첫 지명률은 낮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이들은 마지막에 언급한 d 강사, 인품이 출중한 강사와 관련이 깊다.
후배가 강습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다. 당시의 주변에는 강사를 감시하는 역할인 강습생의 부모님도 없었고, 강사의 직장 상사 격인 팀장도 없었다. 강습을 대기하던 나만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후배는 저런 모습을 취했다. 아무도 보지 않고, 칭찬해줄 사람도 없었는데 말이다. 하물며 강습생에게 칭찬받고자 취한 행동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진을 보면 알 듯이 5~6살의 아이였다. 강사의 행동을 보며 “꽤 친절하네?”라고 판단할 나이는 아니다.
장담컨대 후배는 저때만 저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리프트를 타고 내릴 때마다 아이를 잡아주고 리프트를 타는 동안에는 아이가 잘 앉아 있는지, 무서워하지는 않는지 계속 확인했을 것이다. 그리고 강습 내내 아이가 힘들어하지는 않는지, 어디 불편한 곳은 없는지도 살펴봤을 것이고 스키와 관련 없는 일상 이야기도 나누며 아이와 교감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이게 됨됨이고 인품을 갖춘 강사라고 생각한다. 이 같은 모습은 누가 시킨다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손님을 손님이 아닌 친구이자 동료로, 가족으로 여길 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에 따른 대가를 보상받는 비즈니스 관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그런 사람 말이다. 손님이 이러한 것을 고스란히 느끼게 되었을 때, 재강습을 신청하고 장기적으로는 단골손님이 된다.
강사가 스키를 잘 타고, 경력이 몇십 년이 된들 무얼 하겠는가. 막상 강습이 시작되면, 스키만 딱 가르쳐주고 그 외에는 일절 무관심한 강사들은 손님을 비즈니스 관계로만 여기는 것이다. 오히려 후배처럼 실력은 부족하지만, 가족처럼 행동하는 강사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강사가 가장 중요시해야 할 것은 ‘더 높은 스키 실력’, ‘흠집 없는 경력’이 아니다. 어떤 손님이라도 늘 정성을 다하는 진정성이 가장 중요하다. 손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이고, 동작 하나하나에 반응하며 가르쳐야 한다. 그렇게 쌍방소통이 이루어져야 손님은 강사를 신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게 된다.
이를 위해서 고객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강습을 진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같은 내용이라도 강습생의 연령대, 성별, 지역 등을 고려해 그들의 시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며 가르쳐야 한다. 스키와 관련된 역사를 나열하고, 슈템·숏턴·카빙 등 어려운 용어를 설명하는 것으로는 일반고객에게 도움될 수 없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매번 똑같은 말을 내뱉어야 하고, 똑같은 동작을 반복해야 한다. 힘들고 지친 상황에서 누구나 쉽게 하는 동작을 따라 하지 못하면 짜증도 난다. 거기에 말까지 안 듣는 악마 같은 아이를 만나면,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도 이를 이겨내야 어디를 가도 ‘나 스키강사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간혹 ‘보여주기’식으로 강습하는 강사들이 있다. 주위에 부모가 있거나 팀장이 있는 경우에는 모션을 취하고, 없어지면 강습생에게 무관심한 강사들이다. 강습생이 성인이거나 VIP 자녀일 경우에는 정성껏 대하지만, 유아·청소년이거나 일반고객일 때는 대충하는 강사들도 마찬가지다. 종종 뉴스에서 스키장 사고/사건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기계적인 결함 때문에 발생하는 것도 있겠지만, 강사의 부주의한 행동과 무책임한 태도도 한몫한다.
그래서 부모는 눈썰미가 좋아야 하고, 자녀들이 하는 말들을 잘 듣고 판단해야 한다. 아이가 강습을 받고 왔는데 “강사는 괜찮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스키는 재미없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 운동에 흥미가 없던가. 아니면 스키의 재미를 못 느꼈다던가.
전자처럼 자녀가 운동 자체를 싫어한다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재미를 못 느꼈다고 말하는 것은 전적으로 강사의 문제다. 강사의 역량에는 잘 가르치는 것도 포함되지만, 재미를 붙여주는 것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스키로 난다 긴다 해도 막상 강습생 한 명조차 재미를 붙여주지 못하면 강사로서의 자격이 없다. 자신만 스키가 즐겁다면, 그 사람은 강사를 할 게 아니라 스키를 타러 다니면 된다.
따라서 부모는 스키가 재미없다고 외치는 아이를, 같은 강사에게 다시 맡기는 실수를 범하지는 말아야 한다. 특히 초등학생 또는 그 이하의 강습생들은 사리분별 하는 게 어려운 나이다. 정말 운동이 싫은 건지, 아니면 재미를 못 붙이는 건지를 잘 관찰해야 한다. 강사가 아이의 눈높이와 맞춰서 설명해주는지. 성인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용어를 아이에게 내뱉으면서 있어 보이는 척을 하지는 않는지. 차라리 저렴해 보일지라도 알아듣기 쉬운 용어들을 써가며 강습생을 배려해주는 강사가 더 낫다. 이런 세세한 것들을 강습생이 느꼈을 때 그 감정이 스키의 재미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스키의 재미를 붙여주는 강사를 만나야 한다. 자녀가 강습받고 와서 “재밌었다”고 표현한다면, 가르친 강사는 훌륭한 강사다. 그 강사를 놓치지 말자. 억지로 가르치는 것보다 아이가 마음속에서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면 학습태도도 훨씬 나아진다는 것을 아는 강사다. 그 강사에게 배우고 난 후부터는, 부모가 스키를 열심히 배우라고 혼내지 않아도 자녀는 먼저 스키 장비를 착용하고 “강습받고 올게요!”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훌륭한 강사 순위
1) 재미를 붙여주는 강사
2) 잘 가르치는 강사 + 인품이 출중한 강사
3) 스키를 잘 타는 강사
4) 흠집 없는 경력을 보유하고 있는 강사
*딱딱한 스키부츠를 신은 상태에서 무릎 꿇는 것은 여간 귀찮고 힘든 일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강사들이 말로만 설명하며 넘어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