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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홈 Oct 20. 2021

파리 발(發) 데카당스(Décadence)

[프랑스 교환학생기] 76. 마지막 파리2


밤을 새우고 민박집에 와서 잠을 청했지만 싱숭생숭한 마음 탓에 잠이 오지 않았다. 졸려 죽겠는 몸을 끌고 호텔 코스테(Hotel Costes)에 왔다. 코스테는 빈티지한 인테리어와 멋진 파리지앵들이 몰리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이 호텔의 뮤직 디렉터인 스테판 폼푸냑의 음악 컴필레이션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내가 좋아하던 가수 베니싱의 곡 ‘코코넛’도 호텔 코스테 컴필레이션에 수록됐던 곡이었던 것이다.



파리 발(發) 컴필레이션 중 핫한 곳이 또 있다. 바로 메종 키츠네 컴필레이션. 메종 키츠네에 관해서는 '글렌 체크' 덕에 알게 되었다. 나는 기회가 있어 밴드 클렌 체크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본인이 키츠네 컴필레이션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도 파리에서 머물면서 음악 작곡을 했다고 한다.



호텔 코스테는 조도가 아주 낮은 호텔이었다. 거의 눈이 침침해질 정도로 낮은 조도에 빨간 벽지로 둘러싸인 공간. 호텔 앞 가드가 문을 열어주는 순간 21세기의 파리가 아닌 20세기 파리로 돌아간 것 같은 데카당스적 분위기가 감돈다. 나는 1층 바에 자리를 잡았다. 바로크풍 인테리어와 가구들이 눈에 띈다. 친구들이나 연인과 와서 진탕 마시고 수다 떨기에 완벽한 공간이다. 나는 오후 1시에 방문한 터라 그 공간을 나 혼자 오롯이 누릴 수 있었다. 기분이 묘했다. 가볍게 모히또를 한잔 시켰다. 2만 원에 달하는 다소 사악한 가격이었지만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나쁘진 않았다. 모히또를 다 마시고 유러피안답게 영수증 밑에 유로 지폐를 두고 나왔다. 잔돈은 팁이 되겠지. 나름 꽤 쿨했다 나 지금.



친구가 부탁한 코스테 향수를 사러 매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코스테에서 만든 향수를 비롯한 룸 스프레이 등 향기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었다. 시향 하는 기구가 마치 만개하는 꽃잎처럼 자동적으로 병 입구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데 그것마저 예술작품 같다. 구매 대행이지만 쇼핑을 하니 내가 산 것 같이 기분이 퍽 좋다.



돌이켜보면 여행에 있어서 나에게 좋은 도시의 조건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의 표정, 제스처, 패션, 라이프스타일 이 모든 것들이 내게 지표가 되었다. 파리는 과일가게 옆에 멀버리가 있고 노부부부터 아이들까지 명품 부띠끄 쇼윈도를 구경한다. 스타일 좋은 패션피플들부터 부랑자나 거지도 많았다. 완벽한 분위기의 핫플레이스도 많았지만 오줌 찌린내 나는 지하철도 잊지 못할 것이다



졸음이 머리 끝까지 나를 덮쳐오는 바람에 민박집에서 눈을 조금 붙였다. 눈을 뜨니  10. 어제 만난  친구와 다시 한번 보기로 했다.  미셸에 있는 맥주집이었는데 소박한 라이브 공연도 열리는 곳이었다. 투박하면서도 클래식한 분위기의 술집이 순식간에 활기가 가득한 공연장으로 바뀌었다. 공연이 끝나고 연주자가 본인이 쓰고 있던 깊이가 깊은 중절모로 식당에 있던 사람들에게 수금을 했다. 당황한 나는 난색을 표한   중절모를 거절했지만,  유로라도 주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우리는 불현듯 12시가 넘은 시간에 에펠탑으로 향했다.  12시가 되면 에펠탑은 크리스털 같은 하얀 조명을 반짝이며 하루를 마감한다. 그런데  시간마저 지난 시각. 에펠탑은 흉물스러운 고철의 색깔만을 남긴  어둠 속에서 칙칙하게 서있었다. 나는 거기서 처음으로 남이 찍어주는 나와 에펠탑의 사진을 남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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