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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홈 Jun 14. 2022

내겐 너무 특이한 괌

어찌됐든 또 가고 싶습니다

 년만인지도 모르겠는 인천국제공항. 공항에 와도, 비행기에 탑승을 해도 아직까진 내가 해외에 간다는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가를 포함한 가족이 옆에 앉은 4시간 반의 비행. 대게 옆자리에 아기가 앉으면  비행은 망했다고들 하는데 놀랍게도 내게는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이었다. 울지도 않고 눈을 마주치면 배시시 미소를 짓는 귀여운 아기. 그리고 아기 때문에 화장실을  때마다 연신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던 부부. 비행을 마치고는 수고하셨다고 내게 수줍은 인사까지. 나까지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예쁜 가족이었다.


인터넷으로 접한 괌 입국 심사는 몇 없는 관광객으로 인해 이렇게 쉬워도 되나 싶을 정도로 속전속결이라 하였는데, 지금은 아예 딴판이다. 비행기 네다섯 대가 한꺼번에 착륙한 탓에 장장 한 시간 반을 걸려 입국 심사를 마쳤다. 직원 수는 많지도 않고, 기계는 신통치 않고, 심지어 한 명 한 명과 스몰톡을 나누는 입국 심사 직원들. 한국인 관점에선 속이 터지지만 여행에 와서까지 급할 거 뭐 있냐 싶어서 이내 마음을 편히 가진다.


오전 9시 비행기를 타고 오후 두 시에 괌에 도착해서도 한 시간 반을 지체한 탓에 저녁 시간이 다 되도록 제대로 된 식사도 하지 못했다. LCC 기내에선 추가로 식사 구매를 할 수 있지만 굳이 기내식은 먹고 싶지 않았던 우리. 같이 간 동생 옆자리의 사람들이 기내식에 컵라면까지 추가해 드셔서 동생은 원치 않는 후각 공격을 받기까지 했다. 우리는 겨우 입국 심사를 마치고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드디어 괌에서의 첫 식당에 발을 들였다.


생각해보니 괌도 미국이라고, 미국에서 미국인과 대화해보기는 처음이었다. 한국에서 혹은 해외에서 썼던 영어는 상대방이 알아듣기 쉽게 정제된 영어 혹은 외국인끼리 하는 영어였지만 미국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쓰는 영어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좀 있으면 적응될 단어와 문장들이겠지만 갑자기 맞닥뜨리니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게다가 어디서도 받아보지 못한 친절한 응대와 밝은 서비스. 나까지 텐션을 끓어 올리지 않으면 굉장히 분위기 어색해지는 그런 대화를 나누자니, 아 미국에 왔구나가 실감이 났다. 우리는 크기가 크지 않은 피자 두 판을 시켰고 맛은 짰다.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뛰쳐나온 괌의 대표 해변인 투몬 해변. 해변의 반은 한국인 반은 외국인. 이렇게 명확하게 반으로 나눠지는 구성을 다른 나라에서 또 본 적이 있던가. 너무 생경했다. 이쪽을 보면 한국인들이 햇볕에 절대 타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중무장을 한 채 삼각대까지 활용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고, 저쪽을 보면 또 외국인들이 웃통은 기본으로 내놓은 채 공놀이니 태닝이니 여념이 없다. 마치 외국 해변에 한국인들만 합성해 놓은 것 같다.


한량 같이 할 일이 없던 나는 호텔에 비치된 현지 신문을 집어 들었다. 이 날의 탑 기사는 어젯밤 괌에서 난 차 사고. 그다음 기사는 괌 한국인 관광객 증가 추세에 관한 기사였다. 괌에 방문하는 국가 중 1등은 단연 한국이었고 그다음 일본, 대만 순이란다. 아직 일본은 여행 제한이 풀리지 않았다고. 그래서 이 동네에 현지인 아니면 한국인 뿐이구나. 별 다른 흥미로운 기사는 없었고 괌 대학 졸업식, 각종 광고, 어린이 섹션 등을 훑어보고 정말 몇십 년 만에 틀린 그림 찾기와 스도쿠를 했다. 다른 생각지 않고 흐물흐물한 종이 위에 끄적여가며 몰두하는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오랜만의 해외여행에서 느낀 점 또 한 가지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내가 갖고 있지 못한 것만을 선망한다는 것. 한국에 있을 때는 해외여행 브이로그 보는 것이 낙이었는데, 괌 호텔에 누워 자기 전 핸드폰을 볼 때에는 여행 브이로그만은 손이 가지 않았다. 물론 지금 여행이 너무 좋아서 그런 것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내가 여행에 와있으니 여행 콘텐츠를 보다 보면 여행의 현실적인 문제들이 연상되면서 은근히 이것들이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것. 아 여행과 상관없는 콘텐츠를 보고 싶다는 느낌. 내 성격이 걱정이 많고 예민한 탓일 수도 있겠다만.


운전을 못했던 우리는 괌에서 이동을 할 때 택시를 타야만 했다. 괌은 이렇다 할 대중교통 수단이 없어 다들 여행을 오면 렌터카를 이용하는 듯했다. 하지만 별 수 없었던 우리는 택시비에 꽤 큰돈을 쓸 수밖에 없었다. 특히 괌에서 아름답기로 소문난 리티디안 비치로 가는 한인 택시 왕복 요금으로 150불을 지불했으니... 이전 같았으면 이 돈으로 해외 한번 다녀올 수 있는 금액... 하지만 아쉬운 사람이 지는 이 게임에서 150불 내고 즐겁게 놀다 왔으니 후회는 없었다. 가는 동안 한인 택시를 운영하시는 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본인도 매일 같이 바닷가에 놀 줄 알고 괌에서 사는 남자분께 시집을 왔다가 사람 사는 것 다 똑같다는 것을 느꼈다는 이야기. 괌 인구가 16만 명인데 그중 만 명정도가 한국인이라는 이야기.


괌의 또 다른 구성원 중 하나는 미군이다. 그전에 괌의 역사에 대해 잠깐 살펴보자면 괌은 약 4천 년 전 동남아시아계 인종으로 추측되는 차모로인들이 정착하며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후 피식민지배의 역사가 이어지는데, 1688년 스페인, 1898년 미국, 1941년 일본에 침략 및 지배를 당하다 1944년 미국과 일본의 괌 전투에서 미국의 승리로 인해 현재까지 미국령으로 남게 되었다. 괌은 현재 미군의 대 태평양 군사 전략의 거점으로 미국 입장에선 아주 중요한 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미 해군, 해병대, 공군이 주둔해있어 많은 미군들을 볼 수 있다. 짧게 깎은 머리에 단단한 근육질 몸과 잔뜩 벌게진 몸으로 해변이나 거리를 조깅하는 미군들. 괌 시내 곳곳에 미군들을 환영한다는 안내문도 자주 볼 수 있었다.


미군의 아시아 거점부터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이 사랑하는 휴양지까지 어느 땅의 목적성이 이렇게까지 뚜렷한 것을 내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기는 처음인 듯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토록 괌을 좋아하는 이유를 납득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작열하는 태양빛과 내리쬐는 햇빛의 양에 비례하는 듯한 아름다운 풍경, 수심이 아무리 깊어도 바닷물의 투명함 덕에 물속에 들어가지 않아도 그 속이 훤히 보이는 태평양의 바다.


괌은 깨끗한 산호섬의 바다라고도 불린다. 산호로 이루어진 괌의 지형은 석회암은 물론 화강암, 현무암보다 훨씬 단단하여 지진에 내진성을 가진다고 한다. 리티디안 비치에서 스노클링을 할 때 이런 산호 지형을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노란색, 보라색, 분홍색 등 형형색색의 신비로운 산호들이 내 두 눈을 매혹시킨다. 만져보면 단단하기 그지없는데, 이러한 산호 지형을 바탕으로 여러 생명들이 살아가는 듯했다. 자기만의 색깔을 뽐내는 귀여운 물고기들과 눈싸움을 벌이고, 형광빛을 띠는 아이들을 만났을 때는 그저 마음속으로 감탄을 내뱉는다. 산호에 박혀있는 성게를 살포시 손으로 톡 건드리면 살아있음을 증명하듯 안으로 쏙 숨어버리는 모습까지. 새로운 세상을 탐험하는 일은 그 어떤 즐거움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우월한 즐거움을 주는 듯하다.


하루는 돌고래 투어를 나갔는데 사실 돌고래는 등밖에 보지 못했지만, 배를 타고 멀리 나아간 바다에서 마주한 괌의 여러 지형들이 더욱 감동적이었다. 해안선을 따라 빼곡히 늘어선 야자수들은 당장이라도 쏟아질 기세로 야자수 잎을 늘어뜨리고 있고, 해안선 너머로 펼쳐진 지형은 올록볼록한 혹은 갑자기 깎아져 내려가는 지형들이 이어지는데, 그 위를 덮은 초록의 자연이 강렬한 태양빛을 받으며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또 바닷물은 어찌나 투명한지, 5m가 넘는 수심임에도 배 위에서도 물고기가 어디를 지나가는지 모두 보일 지경이었다. 괌에서 몇 십분 배를 타고 나왔을 때가 이 정도인데, 내가 모르는 자연은 얼마나 방대한지, 그 세계가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미약한 인간으로선 상상조차 쉽지 않다.


괌에서 맞이했던 에메랄드 빛 바다, 아름다운 산호들, 너른 하늘을 수놓는 구름과 태양이 이루는 석양. 보석과 같은 자연이 주는 감동은 왜 괌에 오는지, 왜 괌에 꼭 와봐야만 하는지, 왜 괌에 사는지 너무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바닷가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사람을 구경하다 보면 이곳이 한국인지, 외국인지 헷갈릴 경우가 가끔 있다는 점. 밤바다 산책을 하다가 "Fxxx Asian"이라고 부르짖는 외국인(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다.)을 마주할 수 있다는 점. 다름 아닌 구찌가 괌의 특산물이라는 점. 특히 가족단위 관광객뿐 아니라 태교 여행을 온 임산부들이 정말 많다는 점들은 자꾸만 내게 기이하고 특이하게 다가왔다. 괌의 바다가 다양한 생명들로 가득한 것처럼, 괌의 번영과 지속가능성을 위해 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에서 공존하길 바라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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