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19.
2023년 9월 19일 자 신문을 보면서 깨달았다. 세상 말세다. 세수가 펑크가 나서 나라에 돈이 없는데, 그 주요 원인이 법인세, 종합부동산세 등 부자 감세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발달장애인 활동지원사의 예산은 0원으로 삭감되어서, 고용노동부에 항의하러 간 활동가들이 대거 잡혀갔다. 직원들의 정치 성향, 개인 정보 등을 사찰하여 관리하고자 했던 회사가 고발되었다. 내 마음이 이렇게 힘든데, 한 줄 어디에 남길 곳이 없어 글을 써보자 생각했다.
오랫동안 묵혀 두었다가 간간히 생각날 때만 사용하는 브런치가 생각난 것이다. 그런데 하나의 생각이 둥둥 떠오르면서, 불쾌감이 가득해진다. 몇 달 전 자고 일어나 아침을 챙겨 먹고, 불현듯 떠오른 브런치에 아침 먹은 사진과 나의 오그라들지만 솔직한 아침 기상 감상평을 남겨야지 하고 글을 써 놨었다.
모르는 어떤 이의 댓글로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하는 메시지를 받았다. 이에 불쾌감이 가득하며 ‘일기라는 코너의 뜻을 모르는 건지?’하고 온 공을 받아쳤는데, 그 또한 불쾌감을 투척하며 ‘모르고 달았겠냐?’하고 다시 공이 왔다. 더 이상의 핑퐁 치기는 내 개복치 멘털에도 불가능하여 존댓말로 정중히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곳이니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글을 보지 않으시면 된다는 안내글을 달았다. 그에 다시 지적하는 비난의 글이 올라와 댓글 기능을 정지시키고, 내가 쓴 글을 다시 보았다. 글이 정말 엉망이긴 했다. 속으로는 정말 무슨 말하고 싶었던 거지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댓글에 대한 불쾌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세네 개의 댓글 그리고 좋아요 15개. 지금 단언하건대, 나에게 비난 댓글을 단 유저는 ‘남성’이다. 맨스플레인과 비난의 경계에 가까운 비판적이라는 이름의 무례함이 나에게 그는 사회적인 남성주의를 상징한다. 그래서 생각했다. ‘구조적 성차별’도 없다고 하는 데, 왜 온라인상의 여성 유저들은 본인이 여성인 것을, 그리고 페미니스트인 것을 밝히지 못하는 것일까.
왜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주장이 몇십 년 전 ‘이제 사회는 없다’는 한 시대를 풍미한 정치인의 주장과 같이 귓가를 왱왱 맴도는 것일까. 2023년 9월 19일 자 신문에 나온 차별, 불평등, 노동소외, 정치파탄, 기후위기... 이를 통한 사회적 재난들은 우리 사회의 개별 구성원들이 ‘내가 누구인가’하는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할 때 발생한다. 정체성을 함구하게 함으로써 유지된다.
온라인상 ‘페미냐?’ 논쟁은 꽤나 오래된 것 같다. 잘 몰랐었는데, 내가 자주 보는 여행 유튜브에서도 ‘삐’ 처리한 묵음이 페미냐 아니냐는 논쟁이 있었다. 얼마 전에 유튜브를 시작해서 잘 몰랐는데, 해명 영상이 나와서 다시 보니 묵음 처리의 발화는 페미가 아니라 코르셋이었다. 아무리 영상을 다시 봐도 한 등장인물이 ‘페미냐?’라고 이야기한 것을 주인공이 막자 그 등장인물이 돌려서 ‘코르셋이냐?’하는 그런 상황으로 보였는데, 해명글은 페미라고 한 적이 없고 이게 이렇게 논란이 될지 모르겠다는 글이었다. 그 밑에 온라인 유저 댓글이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러냐’, ‘세상 참 피곤하게 산다’ 같은 응원의 글을 난무했다. 댓글을 달고 싶었지만, 달지 못했다. 댓글을 단 순간 ‘너 페미냐?’하는 비난 댓글을 받고 싶지도 않았고, 그런 댓글에 일일이 나의 입장을 밝힐 에너지나 집념이 나에겐 없었다.
비난과 낙인이 가득한 속에 정체성에 대한 제노사이드는 가득한데, 세련된 척 세상 피곤하다니.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쿨~했다고?
구조는 존재한다. 사회도 존재한다. 우리는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내가 누군인지 선언할 수 없는 것은, 혹은 누군가만 선언할 수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