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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밥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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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갤럭시편지 Dec 19. 2023

갑을분식의 떡볶이

feat. 남영역 지하철길


날이 추운데, 하늘은 맑고 공기는 코가 시리게 상쾌해서 밖으로 나왔다. 해남에서 온 김도 엄마집에 가져다주고, 산책도 할 겸 나왔는데, 이건 대외적인 명분에 불과하다. 아직 한참은 써 내려가야 하는 레포트를 (너무) 쓰기 싫어서 (또) 뛰쳐나온 것이다. 은평은 은평대로 매력적이지만, 내가 학교 다니고 친구들과 쏘다니던 활동지는 종로, 중구, 용산이 아니던가. 기분이 좋아서 흥얼거리며 버스를 탔다. 갈월동에서 내려서 걷는 데, 간판이름이 갑을분식. 늘 지나치면서 저렇게 낡은 식당엔 누가 가나 싶었는데, 오늘따라 유심히 보니 가게 안도 깨끗하고 떡볶이는 자글자글 끓고 있었다. 짤랑 종소리를 내며 유리문 열고 들어 가니 노유민을 닮은 사장님이 맞아 준다. “계좌이체 되나요? 떡볶이 하나 주세요.” 하는 주문에 비닐 없는 분식 접시에 떡볶이 1인분과 따끈한 어묵국물이 나온다. 젓가락으로 떡볶이한입 왕 하고 먹는데, 정말 피식 웃음이 나올 맛이었다. 요즘 먹어본 떡볶이 중에 정말 이렇게 대 놓고 달디 단 떡볶이는 오랜만이었다. 마치 떡볶이 양념의 본질은 단맛이라는 점을 주장하는 것처럼 물엿이 듬뿍 들어간 고추장 양념과 반질 반질한 떡, 얇디얇은 어묵, 거기다 파나 양파 같은 야채 따위는 볼 수 없는 솔직함까지. 분식 미니 사기에 담긴 어묵국물이 단맛을 적절히 잡아 주었다. 왜 분식 그릇에 담기면 거의 맛있어지는 걸까. 내가 앉은자리에는 작은 창문이 있었는데, 창으로 보니 남영역 지하철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매번 지나가던 길이랑 김밥 사러 갔던 시장길, 새벽 술친구와 함께 간 동네 횟집이 있는 동네, 그 길가에 놓인 갑을분식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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